오늘은 경향 잡지에 케냐 선교 체험기를 올린 한 수녀님의 글을 봅니다.
혹 이런 노래 들어 보셨나요? “내가 가고픈 나라는 일 년 사시 아름다운 꽃피는 날, 나비가 훨훨 춤을 추며 정답고 즐거운 꿈속의 나라” 수녀원 입회해서 얼마 되지 않아 배우 노래인데 제게는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나라는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1973년에 간호사가 되어 수술실에서 근무하다가 1978년 수녀원에 입회했습니다.
허원을 하고 나서 주로 병원에서 일하다가 1989년 의료 선교 소임을 맡아 아프리카 케냐로 떠났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수녀원으로 가는 길에서 예닐곱 마리의 원숭이 가족이 손뼉을 치며 저를 맞아 주었고, 수녀원에 도착하자 그곳 가족들이 악기들을 치며 괴성을 지르며 열렬하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9월 말 부터 4-5개월간은 모든 나무가 꽃을 피우고, 새들과 꽃 은하수와 별, 구름등 “내가 가고픈 나라”라는 노래에 꼭 맞는 정말 아름답고 화려한 꿈속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자연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배고픈 나라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우리나라의 보건소 같은 곳입니다. 제가 처음 일을 할 때는 직원이 15명 정도 였는데 다를 시계가 없어 근무시작이 보통 30분이 늦어 집니다.
전화도 라디오도, 집주소도 없이 살기에 연락할 길이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처음 휴가를 나와서 돌아갈 때 헌 시계를 30여개 얻어다가 직원들에게 주었는데 멀쩡한 시계의 ㅇ리를 돌로 깨기에 깜짝 놀라며 물었더니, 시계를 차는 사람이 별로 없어 새시계를 차고 다니면 뺏기니까 헌시계처럼 보이려고 그랬답니다.
월급은 청소부 아주머니나 보조 간호사들이 우리 돈으로 10만원, 간호사들이나 별리사들은 20만원 정도를 받는데, 신문값이나 버스비등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여서 그야말로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교육비도 아주 비쌉니다.
케냐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누는데 6-7개월 비가 안 오는 때에는 씻는 것은 감히 엄두도 못내고, 2-3시간 걸어가서 검은 도랑의 물을 파서 길어다가 겨우 입에 풀칠을 합니다. 또 비가 1-2개월 줄기차게 내리는 장마철에는, 그 귀한 비를 저장할 물탱크가 없습니다.
주로 판잣집과 흙집에 사는 이들은 밤낮으로 물 퍼내기가 힘들어 그렇게 기다리던 비를 너무나 싫어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땅에서 잠을 자는데, 염소, 개 고양이 등을 안고 자며 잘 씻지도 못해 여러 피부병이나 인수공동병이 만연해 있습니다.
맨발에다 찢어진 옷을 밎고, 얼굴과 온몸에 파리떼가 붙은 모습으로 구걸하는 수많은 어린이들, 영양실조에 걸려 퀭한 눈빛을 가진 아이들, 피부병, 장티푸스, 결핵, 그리고 에이즈 환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에이즈 환자로 알려지면 직장에서 쫓겨나기에 감추려 애를 쓰고, 그 바람에 에이즈 확산을 막기가 어렵습니다.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우리 수녀들의 많은 조카들, 직원들이 남겨진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무척 시급합니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일을 시켜달라고, 안되면 옥수수가루 한 봉지만이라도 달라고, 하루에도 두서너번씩 주린 배를 채워달라는 이들을 만나고 나면, 빈손뿐인 제 모습이 처량하고 울고만 싶습니다. 빈손일 때 이들을 만나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고역입니다.
진료소 일로 오고 갈 때면 길가에 맥없이 누워있는 사람들을 자주 볼수 있습니다. 제가 점심을 먹으러 가면, 보통 하루 두끼로 배를 채우는 직원들이 잘 다녀오라고 풀밭에 누워서 손을 흔듭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 몰래 어디가서 혼자 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 늘 마음이 불편합니다.
10년이 넘도록 아프리카 케냐에서 살게 해 주신 주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저 자신이 부족함을 많이 느끼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이들과 함께 적은 것이나마 함께 나누며, 삶의 마지막 날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시성 타고르가 예찬한 “동방의 고요한 해 뜨는 나라” , 행복한 조국, 한국에 사시는 교우님들의 도움을 청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르티메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 그가 원하던 바를 충족시켜주시어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시고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아마 주님께서 아프리카에서 탄생하셨더라면 그곳에서도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먹을 것을 주셨을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시고 병든자들을 고쳐 주셨는가?-
그들이 고침을 받음으로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가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하기 위해서
그런데 반대로 부자청년에게는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십니다.
왜 그렇까요? 그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눔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알려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굶주리는 자는 충족시켜 줌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게 하시고
있는 자는 자신의 것을 나눔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주시려 하십니다.
있는자가 아직도 더 달라고 하느님께 청한다면 하느님이 그를 만나 주실까?
이제는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준다면 기특하다고 하느님이 나를 만나 주시지 않을까?
이제 받음으로서 하느님을 알게 되는 초보적인 신앙보다
자신의 것을 나눔으로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됩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