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놀이를 중심으로 협동심을 가르치고, 사랑을 가르치고, 봉사를 가르치려고 오랜 시간동안 준비했다. 그러나 전달과정이 미비함으로써 열심히 준비한 것이 그져 놀이만으로 그쳐진 것이 많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심어주려고 했다.
올해에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이 바뀌었으므로 당연히 내용도 바뀌었다.
선생님의 재랑에 의해서 몇달 전부터 작지만 주일학교를 운영한 것을 종합 정리하여 예수님의 생애와 자신들의 출생, 예수님의 가정과 자신의 가정등을 다루면서 발표하게 하였다.
물론 발표도 잘하고, 재미있어 했다. 이번에 특이한 것은 자신이 행한 결과로 생긴 것은 자신이 뒷처리를 하는 것이었다. 예컨데 밥을 먹고나서 설걷이도 자기들이하고, 청소도 자기들이 할 수 있도록 했다. 보통때 같으면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켜야 할 시간이 아까와서 어른들이 밥을 해주고, 설걷이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었을텐데,, 이번에는 봉사를 가르치는 차원에서도 각자 해결할 수 있도록 해보았다. 물론 아이들이라 잘 안될 것을 예상하고 했지만, 그런대로 잘해 나갔다. 열심히 청소하고 열심히 일하는 아이들이 따로 있고, 계속 뺀질되는 아이들도 따로 있었다. 이런 모습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똑같았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을 잘 기르려면 어려서 부터 봉사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아이들 때에는 봉사하기 보다는 봉사를 받으며 살아온다.
갓난아기야 한시도 부모로부터 봉사를 받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조금씩 커가면서 부모의 봉사가 줄어드는 반면에 자신들이 봉사를 해 나가야 하는데, 아이들이 안쓰럽다고, 하는 일이 답답하다고 커서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봉사한다.
아직도 하녀처럼 아이들의 방을 청소하고, 책가방을 사주죠? 아이들은 아직도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를 받는 것입니다. 계속 봉사를 받으면 마치 자신이 왕이나 된것처럼 전혀 봉사하려하지 않고 봉사 받기만을 바라고, 봉사가 시원치 않으면 도리어 화를 내게 되죠
봉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봉사의 시작은 남의 것을 내가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고 내가 하는 일입니다.
부모는 해라하고 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반대로 시답지 않다고 대신하는 것이아니라, 자녀들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할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법을 가르친다고, 어느 날 갑자기 봉사하러가자 하는 이벤트성 봉사가 아니라 매일의 생활에서 봉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방 청소를 하고, 옷도 빨래통에 잘 넣기도 하고, 가금씩은 설걷이도 하고... 자신으로 생긴것은 자신이 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른들이 해 줄때는 봉사를 받는 것이고, 내것을 내가 하고 조금더 넘어 가족 공동체의 것을 할때에는 봉사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요?
오늘 예수님의 변모 축일입니다.
하느님은 빛이십니다. 오늘 예수님도 제자들 앞에서 빛이 되심으로서 하느님이심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하느님은 빛으로서 사람들의 앞길을 밝게 비추어 주십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다가 오시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다 내어 주시면서까지, 사람을 섬기로 오셨습니다.“나는 섬김을 받으로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나는 봉사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봉사하러 왔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모습이 더 밝게 빛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많아 질때 사회는 밝아지듯이
서로간의 봉사를 통해서 밝은 공동체, 예수님을 닮은 공동체를 만들어 갑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