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순교자들이 20,000여명이나 되는데
불과 대박해가 끝난지 130여년 밖에 지나지 않은 오늘 우리는 까마득한 옛날로 여기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아직 순교자들의 피가 마르지도 않았는데
우리 103위 성인들은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박해에 순교하신 분들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많은 분들이 순교하셨는데 당시 순교 기록을 정리하지 못하여 시성운동을 추진하지 못했다. 이제서야 124위의 순교자중 반이상(67명)이 신유박해(1801)이전에 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은 신유박해시에 순교한 용감한 순교자들중 몇명의 모습을 본다.
정약종 아우구스띠노는 신문을 받는 동안 점잖게 신앙을 고백하고 관리들 앞에서 천주교의 진리를 설명하며,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천주를 배반하는 일은 절대로 없겠다고 분명히 말하였다. 그는 형장으로 끌려갈 때 그의 얼굴은 아주 빛났다. 형구 앞에 앉아 그는 그것을 행복스럽게 들여다보고 나서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높여 외쳤다. “세상을 지어내신 천주님께서 당신들을 창조하셨고, 보존하십니다. 당신들은 모두 회개하여 당신들의 근본으로 돌아와야 하오, 그 근본을 어리석게 멸시와 조소로 삼지 마시오, 당신들이 수치와 모욕으로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영원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땅을 보면서 죽는 것보다 하늘을 보면서 죽게 해달라”고 했고, 망나니는 서투른 칼로 첫 번째 칼질을 하였다. 목이 절반밖에 끊어지지 않자 정약종 아우구스띠노는 일어나, 보라는 듯이 크게 십자성호를 굿고 조용히 다시 첫 번 자세로 돌아가 치명적인 일격을 받았다.
홍락민 루가는 여러 차례 배교 하였으나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지난 날에 한 모든 것은 목숨을 비겁하게 보전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또 매질을 당하고 망신을 당하니,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용감하게 죽고자 합니다. 제가 섬기는 천주는 하늘과 땅에 만물의 주재자 이십니다. 저는 지금 죽음으로써 천주를 위하고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심한 매질로을 당해 살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그는 옥으로 끌려가 매질로 으스러진 상처를 씻으며 그제서야 “이제 나는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하다” 고 했다. 몇 일후 형장에 가기 위해 수레에 올랐을 때 그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다. 그는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도 본명도 알수 없는 이종국이라는 사람은 죽기 전날은 3월 보름께라 달이 환히 밝았는데 그는 밤새껏 옥 문지방에 기대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새벽녘에 동쪽을 쳐다보며 “왜 날이 이렇게도 더디 새느냐”하고 여러번 부르짖었다. 그리고 총소리를 듣고 매우 기뻐하며 “저게 좋은 신호다. 곧 나를 부르러 오겠구나”하고는 더 열심을 배가하여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는 음식을 먹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자 그를 끌어내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곧 일어나서 함께 갇혀있던 교우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나는 천주의 무한하신 자비와 성모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이제 천당 복을 누리러 가오 여러분도 신뢰심을 잃지 말고 나처럼 하시오” 그리고 빛나는 얼굴로 형장에 끌려가 27세의 나이로 참수 당하였다.
이렇게 순교자들은 죽음앞에서도 당당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 앞에서의 생의 마무리를 잘 할수 있었다.
순교자들은 신앙을 받아들인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확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제 1독서 말씀대로 박해자들은 모욕과 고통으로 순교자들을 시험을 했다.
“저들을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수 있을 것이고, 그이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많은 사람들이 배교도 하였지만 또 많은 순교자들은 용감히 신앙을 증거했다.
그들이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계셨고, 그들 자신들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의 어떤 부귀복락보다도 더 좋고, 살을 짓이기고 뼈를 바수는 박해를 빼앗을수 없는 사랑이기에 순교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신앙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도 하느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이 약한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한 신앙이라기보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신앙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서 신앙을 증거했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보다, 교회를 사랑하기보다 사랑받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신앙이 더 약해 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조금 어려운 일만 있으면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 돌보아 주지 않는가 보다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기도도, 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수 없다고 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찾기 보다는 하느님이 나를 찾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신앙이 약한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처럼
이 정신없는 세상안에서도 우리가 먼저 하느님을 찾으려 노력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땀흘려 노력하고, 교회의 형제들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안에서 살아간다면
이 다음에 우리가 늙어 힘이 없을때, 주님께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를 당신의 사랑안으로 데려 가실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힘 있을때 주님을 더 찾고 사랑하며 살다가
늙고 힘이 없을 때 모르는 척 하며 주님의 등에 엎히도록 합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