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환은 조선 최초 영세자인 이승훈의 외숙이 된다.
그는 조선 최초의 회장 이벽이 교를 가르친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천주실의와 7극을 공부했지만 올바른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판단하고 이벽을 설득하러 갔다. 그러나 이벽의 이론에 굴복하고 천주교 서적을 구해다 읽고 연구한 끝에 믿을 것을 결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전교하고,
이벽, 권철신, 정약용,등과 늘 왕래하면서 교회일에 많은 협조를 하였다.
그래서 반대파로부터 사교의 교주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입교했는지 분명하지 않고
1791년 신해박해때 천주교인으로 몰려 체포되었다가 석방되고,
광주부윤이 된 후로는 천주교인을 탄압하는데 앞장을 섰다.
그뒤, 관직이 승진되어 개성부 유수가되었으나 1795년 주문모 신부의 밀입국 사건으로 충주목사로 좌천되었다. -그러니 더 천주교를 탄압하는 데 앞장 설 수밖에 없었다.
이가환은 초기에는 신앙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지식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학문을 전하기 위해 불철주야 했다.
신앙이 온전하지 못할때는 세상을 자꾸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하느님을 버리고 세상을 취하고 세상안에서 명예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그러한 그도 많은 사람들의 의연한 죽음에서, 신앙을 발견한 것 같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때, 이승훈, 홍낙민, 정약용등과 함께 사학의 괴수라는 혐의로 투옥되어
그해 4월 8일(음 2. 26) 60세로 옥사했다.
이가환이 어떻게 회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된바 없지만
1799년 이전에 이미 회개하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섰다는 근거와 함께 어떻게 투옥되는지 살펴본다.
1799년 5월에 주상(정조임금)이 나라에 혹한 가뭄이 들어 그것을 민망히 여겨 직언을 구하기 위하여 상참(常參)을 설치하였는데 대사간 신헌조가 입시하여 계(啓)를 올렸다.
“슬픕니다. 저 서양 오랑캐의 사술에 대하여 운운하고 있습니다. 사학의 소굴은 세상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관리로는 이가환이 있고, 서울 근처에는 권철신, 정약종 무리가 있습니다. 바야흐로 닥쳐오는 근심은 홍수(洪水)와 맹수(猛獸)에 비하여 더욱 심합니다
옛날 제환공이 형 나라를 치려고 군사를 일으켰는데 비가와서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동하여 북채소리보다 더 빨랐다고 합니다. (하늘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이가환을 죽여야한다)
돌아보거네 지금의 한재를 없애는데는 이것이 가장 급선무이오니, 청컨대, 괴수 이가환의 머리를 장안의 거리에 달아서 난리의 근본을 끊게 하시고, 그 나머지 권철신, 정약종의 무리는 법률대로 처단하소서.”
얼마나 슬픈 현실이었던가?
가뭄이 있어났으면 지금같으면 지하수를 파던가 저수지를 미리 만들던가 했으면 되는데....
그 원인을 서양오랑캐, 즉 천주교에 돌렸다는 것이다.
로마 네로 시대에도 그랬다. 로마의 미친 황제 네로는 시에 미쳤고, 예술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래서 로마 시내를 불태우고 사람들이 아우성이는것과 불타는 모습을 보고 예술이랍시고 시를 짓고 감상에 젖었다. 그리고 그 화재에 대한 책임을 천주교 신자들에게 뒤집어 씌우고 죽여야 한다고 당위성을 내걸고 사정없이 박해했다.
예수님 시대도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종교의 관리들은 난국에 대한 책임을 예수님께 돌리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시대에 예언자 가야파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당신들은 그렇게 아둔합니까?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 "
인간들의 계산된 엄청난 잘못이라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것마져도 선으로 이끄시고, 좋은 결과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에 의해 계산된 박해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박해를 신앙의 밑거름으로, 교회를 세우는 초석으로 삼으십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너희는 울며 슬퍼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고, 너희는 근심에 잠길지라도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는 말씀이 맞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에게도 원치 않는 고통도 다가옵니다. 남에 의해서 철저히 계산된 방법으로 신앙을 시험하기도 하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가족에 의해, 때로는 친구에 의해, 때로는 직장에 의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하느님 사랑에서 떼어 놓려고 하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처럼 끝까지 참고 견디면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수많은 순교자들도 정치에 의해 뚜렸한 죽음의 이유없이 고통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박해를 신앙의 꽃으로 바꾸어 주셨고, 기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외적 내적으로 다가오는 고통들을 약삭빠르게 따지거나 피하려 들지말고
때로는 순교자들처럼 묵묵히 받아들인다면 또 다른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순교자들의 삶을 뒤따라 열심히 살아가도록 합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