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하는 모습들을 바라 보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아이들미사에서 헌금하는 모습을 보면 고라리 같은 손으로 정성스럽게 내는 놈, 던지고 가는 놈, 천차 만별입니다.
어떤 사람은 장사를 하면서 들어온 돈 중에서 가장 깨끗한 돈을 골라서 정성스럽게 봉헌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하루하루 장사를 하면서 제일 먼저 온 손님에게 받은 돈의 액수를 따지지 않고 그 돈은 모았다가 교무금, 헌금으로 내시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아무 생각없이 미사에 참석했다가 봉헌 시간이 되자 다급하게 그 앞에서 지갑을 뒤적거리다가 만원짜리는 다 비껴가다가 천원짜리 한장 달랑내는 사람이 있고, 그러다가 잔돈이 없으면 인상을 찡그리며 만원짜리를 내거나, 그냥 지갑을 도로 넣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원짜리를 내 놓고 그 앞에서 거슬러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습니까?
이렇듯이 오늘 예수님도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을 모습을 묵묵히 보고 계셨다.
돈 많은 사람들이 의기양양하게 헌금 궤에 돈을 넣을 것을 아무렇지 않게 보시다가,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쭈삣쭈빗거리며 부끄러워 하며 동전 한 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너 많은 돈을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고 하십니다. 사실상 가난한 과부는 다른 사람보다 제일 적은 돈을 넣었지만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가장 큰 돈을 넣은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돈의 많고 적은 액수를 보시기 보다는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시대에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서 우러나 자신의 재산을 다 처분하여 사도들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그들 부부는 급살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과 교회에 재산을 봉헌했는데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다음 베드로 사도의 말을 들으면 이해가 갑니다. “당신들은 왜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성령을 속이 땅값의 일부를 떼어 놓았소?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 것이었고, 또 팔린 뒤에도 그 돈을 그대 마음대로 할수 있었던 것 아니오?... 그대들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속인 것이요”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예물 속에 담긴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구약 시대에도 그렇게 많은 번제물을 하느님께 봉헌했지만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아라. 이제 제물 타는 냄새에는 구역질이 난다. 몸을 씻어 정결케 하여라. 내 앞에서 악한 행실을 버려라. 깨끗이 악에서 손을 떼어라” 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행동이 변화되지 않고, 무조건 보호해 달라는 뇌물성의 마음없는 제물은 반기지 않으십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의 정성된 제물을 받기십니다.
오늘 제 1독서에서 사렙다 마을의 과부의 말이 예언자 엘리야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하느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 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 그 과부는 마지막 남은 생명과 같은 귀한 음식을 먼저 하느님의 사람에게 드렸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과부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내 놓는 것 같은 마음을 받으시고 가뭄이 끝나는 기간 동안 밀가루도 떨어지지 않고, 기름도 마르지 않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사렙다 과부가 봉헌한 것은 마지막으로 먹고 죽어야 하는 식량을
가난한 과부가 봉헌한 것은 궁핍한 생활 가운데 가진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주 보잘 것 없는 예물이었지만, 그들은 그들에게는 목숨과 같은 소중한 예물을 하느님께 봉헌 하였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마음에 감복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우리도 모든 정성을 다하여 예물을 준비하고, 그 예물에 생명과 같은 마음을 담에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합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