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는 방법

2007. 2. 5. 오전 4:48:44

글자

약 25살 더 많은 6촌 누님에게서 생전 처음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라파엘 신부님! 메주고리에를 가보실려?  현재 성모님께서 발현하시는데 가보시는게 좋을 것 같아서.....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바빠서요...

두어 달 후  또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바빴습니다.

한 달 후 또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 마져 사양을 하고 나면 다시는 부르지 않겠구나

누님 갈께요. 하고 만사를 제쳐 놓고 떠났습니다.

 

공항에서 함께 갈 사람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한결같이 성모님을 만나기 위해서 묵주를 잡고 심각하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성모님께서 부르신다고 생각하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나섰습니다.

메주고리에에 가보니 온통 기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여기저기 저리마다 묵주를 들고 다니는 사람, 농사를 짓는 사람도 묵주를 들고 삽질을 하고 있었고, 순례객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성모님이 발현했다는 십자가 산에 오르기도 하고, 맨발로,  무릎으로 돌산을 오르기도 했습니다.  미사시간 전에는 묵주기도 십 단을 바쳤고, 미사 후에도 묵주기도 5단이나 성체강복을 하였습니다.  모두가 하루 종일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함께 간 순례객들도 성모님을 만나기 위해서 더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날 7명중 한 사람에게 그곳 산에서 발현하신다고 해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성모님이 오신다고 하는 시각까지 4-5시간동안 그 산이 기도소리에 떠나갈듯 울렸습니다.  밤 10시경에 선견자라는 사람이 왔고 한 10분정도 조용히 하라는 소리 섬광이 번쩍이는 등 하더니만 다 끝났다고...

잔뜩 성모님의 발현을 눈으로 보려했던 사람들은 실망이 너무 컸습니다.

성모님이 오라고 해서 왔더니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울었습니다.

  성모님은 사람들에게 당신 얼굴을 보러 오라고 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 얼굴을 보며 오손 도손 함께 살자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아드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전하라고, 즉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메주고리에를 다녀온 사람들이 그 당시 그곳에서는 성모님의 모습을 느끼지 못했지만

다들 집으로 돌아간후 생활을 하면서 성모님을 느꼈다고 합니다.

성모님의 부르심은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생활안에서 복음을 전할때 주님을 느끼고 성모님을 느낄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시몬 베드로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고기잡이하며 하루하루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이 지상에서 영원히 함께 살자고 부르신 것입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에만 안주하지 말고  “

 

  오늘 사도 바오로도 주님께서 칠삭동이 같은 자신도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지만 주님께서 그를 불러 주셨습니다.  왜 사도 바오로를 부르셨습니까? 교회 박해를 그만하도록 부르신 것입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고, 그 구원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도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세례를 받고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왜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주님의 얼굴을 보며 탱자 탱자  뒹굴 뒹굴 지내라고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하고 기적을 보러오라고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어떤 두려움도 없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전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주님을 말씀을 전할 때 그분이 누구신지 더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음식을 먹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살 때에는 그분이 누구신지 잘 몰랐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분의 말씀을 전할 때 그분이 누구신지 더 확실하게 알 수 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얼굴을 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전할 때 더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진을 볼 때보다 부모님이 하시던 일을 할 때 더 느껴지는 법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길 바라십니다.

밖에 물 반 고기반입니다.  집안에만 앉아있지 말고, 세상의 낚시터로 나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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