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동서방은 언어, 인종, 문화 등의 차이가 극샘했었습니다. 거리 문제도 있었지만, 특히 로마 제국은 600년경 모슬렘조속(회교)에 의하여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이 중심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서방 황제들의 정치적 야심으로 인한 간섭과 6세기 말 요한 4세 대주교 같은 주교들의 야심과, 당시 건전치 못한 교황들의 잘못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동서방이 나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요한 4세 대주교는 콘스탄티노플이 제국의 서울이므로 자신을 세계적인 대주교라고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미카엘 첼루라리우스 총주교는 1053년, 성령의 성자로부터의 출발을 부인하고,
빵의 누룩의 유무 논쟁과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의 우위성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 때 교황 레오 9세는 그들을 만류했으나 듣지 않으므로 1054년에 대주교를 제명합니다.
이로써 동방 교회는 서방 교회와 분리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동방교회는 여러 제국에 분리되어 퍼져 나갔으나, 러시아 정교나 희랍 정교의 일부
(약 천만명)는 다시 가톨릭에 귀의하였습니다(동방 가톨릭교회).
동방교회는 베드로의 성좌와는 일치를 이루지 않지만 다시 말하면 교황청과 교계적 친교를 갖지 않았지만,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서품도 유효하며, 성체 성사 등 참된 성사들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또, 귀의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있고, 사도로부터 교부들을 통해 내려오는 소중한 옛 전통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동방 교회에는 현재 1억 5천 만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교회는 동방정교회, 정교회, 하리스트스 정교회 등 여러 이름으로 알려진 교회들의 총칭을 말합니다.
고대 말기 동로마제국의 교회에서 생겨난 많은 민족 교회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 정교회는 고대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등 4개의 총주교
관구에서 갈라져 나온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독자적인 교회 조직을 가지며, 부분적으로 서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정교회가 성립된 순서별로 보면, 시리아, 불가리아(917년), 세르비아(1346년), 러시아(1589년), 그리스(1830년), 루마니아(1925년), 알바니아(1937년)의 순입니다.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에 퍼져 있으며, 그리스도 단성론을 신봉하는 콥트 교회, 아비시니아 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야곱파 교회, 남인도의 말라바르 교회, 한때 페르시아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졌던 네스토리우스파도 모두 동방 정교회의 이단입니다. 이들 교회의 신자는 약3억 정도입니다.
정교회는 5-6세기 그리스도의 위격(位格)을 둘러싸고 동서교회가 분열되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는데, 1054년에는 로마 교황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서로 파문하면서 동서 교회는 결정적으로 분리되었던 것입니다. 서로 그리스도의 참되고 유일한 교회라고 주장하면서 그 뒤 분열의 폭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동방 정교회의 중핵은 러시아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이며, 이들 정교회들은 둘
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떨어져 나온 교회입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에 시작된 러시아 교회는 모스크바 대주교를 독립시켜 총주교로 삼았는데(1589년). 1917년 러시아 혁명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교회는 동방 정교회의 신학과 전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1961년 동방 정교회는 세계교회협회(W.C.C)에 정식으로 가입하였습니다.
동방교회의 특징은 신학과 전례에서 신비주의적인 색채가 농후하며
교회가 각 국민문화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례와 성서는 일찍부터 각국어로 번역되어 사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국민문학이
발흥하였습니다.
동방 정교회의 성직자는 수도생활 지원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을 하며, 성직은 사도전승에 따라 주교, 사제, 부제 등을 두는 고대의 성직제도를 고수하고 있는데,
동방 정교회의 성찬의 전례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이 특색입니다. 교회생활의 중심은 삼위일체의 예배이고, 여기에 성모 마리아와 성인에 대한 공경이 첨가됩니다.
이에 대하여 조금 더 보충 설명을 드리면, 가톨릭과 정교회 사이는 15세기 이후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의 화해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시도되었는데, 500여년 만인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와 정교회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1세가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에서 만났던 것입니다. 양측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화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기로 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기간 동안 정교회 측에서도 참관하여
여러 가지 조언을 하기도 했으며, 1964년 제3차 정교회 회의에 모인 14개 정교회 대표들은
로마와 교회 일치적인 입장에서 계속 대화를 갖기로 합의를 하였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동방 교회에 관한 문제를 관할하는 성(省)을 1917년에 독립시켜 동방교회 성성이라 명명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