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 언급 >
20. 여기에서 종교라고 하는 말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분히 인간으로서 느끼고 고민하는 문제에 대하여 답을 제시하려고 애를 쓰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문제로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여기서 제시하는 문제를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래야만 할 필연성이 없는 거겠죠. 그렇다고 해서 답을 제시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답이 있게 마련입니다. 출제자의 의도에 따라서 그것이 맞는 답이 되는지, 아니면 부족한 답이 되어 새로운 보충을 해야 하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더불어 제가 가톨릭 교회의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제시하는 답을 여러분이 액면 그대로 수용해야 할 필연성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종교와 신앙에 근거한 답을 제시하고 여러분이 수용할 수 있도록 할뿐입니다. 한가지 바란다면, 제가 앞서 제시한 것과 같은 문제를 여러분이 떠올리신다면 적어도 제가 제시하는 답이 한가지 응답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21. 종교와 신앙이라는 것의 특성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갖고 고민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답이 될 수가 없죠. 사람이 겪는 문제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하는 그 순간 또 다른 의문의 요소가 바로 그 자리에서 생길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다만, 사람이 갖는 문제와 고민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어주는 것뿐입니다. 어느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나름대로의 대답을 주고 있는 것뿐입니다.
22. 원시종교도 그런 것의 하나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두려운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원시시대라고 하는 때에는 사람 스스로 설 수 있는 토대가 약했기에 ‘인간보다 힘이 센 모든 것’이 다 신(神)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神)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인간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거기에 제사를 지내는가 하면 그가 노여워했다고 화(禍)를 삭혀주려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요즘 현대의 시각(視覺)으로 보면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 것도 상당 수 있습니다.
23. 잘은 모르지만, 불교와 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시자가 인간이다’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 대한 말이고, ‘한가지 윤리규범을 설명하는 것이지 종교는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유교에 대해서 내리는 피상적인 평가요 판단입니다. 이 자리가 불교와 유교에 대해서 설명하는 자리도 아니고, 제가 그것을 설명할 만한 능력도 없는 사람이기에 간단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던 인도 카팔라 왕국의 왕자 석가가 특별한 수행을 거쳐 거기에 덜 집착할 수 있는 수련의 방법으로 제시한데서 시작된 것이 불교입니다. 불자(佛子)라고 해서 인간이 겪는 그런 문제들을 겪지 않고 건너뛰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수도정념(修道情念)하는 것이 스님들의 생활입니다. 승(僧)이 되어 법을 깨치고 석가(=깨달음을 얻은 자)가 되어 해탈하고 열반에 드는 것이 그분들의 목표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잘못 설명했다면, 양해해 주시기를)
24. 유교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바탕으로 하는 삶의 윤리라 합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유교에는 내세라든가 인간 삶의 완성을 목표로 한다는 설명은 따로 없지 않을까 합니다. 다분히 살아있는 사람이 지켜야 할 삶의 규범들을 설명합니다. 살아서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잘못 공경한다면 벌받는다는 것은 좀 단편적이고 과장된 ‘부분인용’일지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