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의 역사 >

2006. 11. 10. 오전 8: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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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역사 >

43.   이 시간에 제가 여러분에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언급하는 목적은, 특별한 목적이 있는 역사언급이요, 역사공부입니다.  우리가 가서 살 나라도 아니고, 개개인의 구체적 생활과 별반 관련도 없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들을 통하여 이루어진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섭리를 우리가 깨닫고 우리 삶의 역사에서 반복하거나 축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찾아보기 위해서 공부한다는 것뿐입니다. 그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목적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우리가 안다고 해서 우리 지식의 면에서 크게 달라질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44. 성서를 보면서 앞서 말씀드린 ‘유형과 무형의 역사’구별과 그 적용은 이렇게 합니다. 구약성서의 첫째 권인 <창세기 1-11장>까지를 무형의 역사로 구분합니다.  그 이후에 나오는 이야기는 흔적이 있는 역사가 될 것입니다. 이 흔적이 있는 역사에 나오는 많은 것들의 바탕에는 물론 무형의 흔적이 자리를 잡습니다.  무형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 뒤에 흔적을 이룬 삶의 기록도 참된 의미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45.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는 기원전 1250년경에 등장합니다.  흔적이 있는 역사의 모습으로서 말입니다. 이때는 우리가 구약성서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출애굽기의 역사가 이루어진 때로 추정합니다.  성서의 역사에도 그렇게 나오고 이집트 역사에도 간략하지만 그 언급이 나옵니다.  시초의 역사란, 이집트에서 고난을 겪던 셈족과 그 후손의 한 부류들이 고난과 압제를 피해서 그곳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느끼기에 그렇게 떠난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었고,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며, 고난과 억압에서 하느님께 부르짖으니 그 하느님이 구원이라는 선물로 응답해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체험은 훗날 그들의 역사를 이루는 근간이 됩니다. 즉 그들은 모든 것의 시작을 하느님과 관련시켜서 생각했고 그분의 섭리와 인도에 따라서 자신들의 삶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들을 향하여 ‘왜 그렇게 옹졸하게 보는지, 그렇게 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할 수는 없는지를 물어도’ 아마 대답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 역사의 시작이고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46.   그렇게 해서 시작한 그들의 역사를 간단하게 시대별로 언급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인 역사가들의 분류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인도에 따라 기원전 1245년 경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그리고 약 40년의 광야생활 후, 요르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의 경계에 도착합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는데(버스를 타고 이집트의 경계에서 이스라엘 땅의 경계까지는 약 9시간이 걸립니다. 대략 400킬로 정도), 그렇게 가까운 거리를 두고 약속의 땅이라는 곳에 들어가기까지 왜 40년을 광야에서 헤매야 했는지는 신앙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관련된 신앙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광야 생활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반항합니다. 그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던 모세마저도 믿지 못하겠다고 덤비며, 결국 시나이 산 아래에서는 하느님을 눈에 보이는 동물의 형상인 ‘금송아지’로 바꾸기까지 합니다. 그 잘못으로 인하여 반항하거나 항거했던 성년(成年)층의 사람들이 모두 죽기까지 40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지난 다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서 가나안 땅에 진입하고 약 100-150여 년에 걸쳐서 그 땅을 조금씩 점령해 나갑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간간이 활동했던 하느님의 대리자들을 가리켜 판관들(또는 사사)라고 합니다. 그들의 이런 인도에 불만을 느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변의 민족을 따라 왕정(王政)을 세웁니다.   이 왕정을 세운 것을 하느님의 예언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싶지 않아서 인간에게 마음이 돌아선 것>이라고 말입니다.  급기야는 이 지도자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의 편의와 생각에 따라 노역, 병역에 동원합니다. 이미 하느님께서 언급하셨던 결과대로 이루어갔다고 성서는 언급합니다.  자세한 역사에 대한 것은 우리가 성서를 읽어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첫 왕이 ‘사울’이었고, 다음 왕이 ‘다윗’이고 그 다음이 ‘솔로몬’이었습니다. 이 솔로몬은 세상에서 그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없었을 만하다고 칭찬을 받은 지혜 있는 왕으로 통합니다.  그가 지혜를 받은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고 열왕기(상권, 3장)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받은 지혜가 끝까지 지켜지지 않았기에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나라는 남과 북으로 기원전 935년에 갈라집니다.  그리고 북쪽의 왕국은 기원전 722/721년에 아시리아라는 국가에 멸망합니다.  <성서는 이 왕국의 멸망을 가리켜, 북쪽 이스라엘 왕과 그 백성들의 마음과 정신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소개합니다.  한 왕국의 흥망성쇠를 그들은 그렇게 신앙을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요즘 역사를 바라보듯이 군사력이 부족해서거나 정치권력자가 부패했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보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에게서 사람들의 마음이 멀어졌기에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멸망할 때까지 북쪽 왕국 이스라엘에는 많은 예언자들이 등장하여 마음을 돌릴 것을 간절하게 호소하지만 그 소리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 되고 맙니다.

그로부터 약 240여 년 후, 남쪽 왕국 유다 역시도 바빌론(기원전 587년)에게 멸망합니다.  그래도 남쪽의 왕국은 나았지만, 그들도 역시 마음과 삶의 정신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졌기에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예언자들은 설명합니다.  국가의 힘이 약했다거나 주변 민족의 힘이 강했다고 하는 것은 순수 역사적인 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판단이고 성서의 역사는 그렇게 기록하지 않습니다.  요즘의 사람들처럼 과학을 우선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성서는 역사 변형의 원인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서는 순수한 역사기록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록한 신앙고백서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멸망했던 남쪽 유다 왕국을 50년 정도 후인, 기원전 538년에  이방인의 왕 고레스의 칙령을 통하여 해방시킵니다. 이것 역시도 고레스라는 페르시아 왕, 이방인의 왕이 한 일이었는데, 성서는 그를 통하여 하느님이 당신의 역사를 준비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방인의 왕, 하느님을 몰랐던 그가 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켰는지는 모릅니다.  성서는 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렇게 시행했다고 적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 역시 현대 시각으로 볼 때 해석할 수 없는 역사의 순환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방되어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흩어지는 운명을 겪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하에, 그리스의 지배하에, 기원전 63년에는 로마의 지배하로 들어가고 맙니다. 이렇게 로마의 지배를 시작으로 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의 이름을 앞세우고 다시 등장한 것은 기원 후 1947년입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난 다음입니다.  약 2000년이 훨씬 지나고 난 다음의 일입니다.  그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그들이 국가를 세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사실은 모릅니다.  다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을 삶의 중심으로 해서 돌아오려고 했기에 그랬다고 적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몇 마디로 구별하면, 순수한 역사는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 안에 일어난 모든 사건과 일에 대해서 그 기원과 잘․잘못의 모든 기준을 하느님께 두었습니다.  그렇게 신앙 중심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바라보았고, 그들은 그 정신에 따라서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았다고는 했지만, 그것은 순수한 역사가 아니라 그들이 역사에 대해서 바라본 시각을 익혔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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