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강림, 성령은 누구인가?>
99.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 드리는 첫 번째 과정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성령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 부분의 이야기는 신약에서 일어난 사건들 가운데서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 다음으로 커다란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인류의 구원을 이루는 출발점이 된 사건이었고, 부활은 하느님이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시어, 의인의 죽음으로 인정하시는 의미에서 예수의 죽음에 대하여 판정승(判定勝)을 내리신 사건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기억하고 우리의 생활가운데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일을 우리가 이루겠다는 자세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이나, 신앙인들이 되고자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라 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중요성을 갖는 것이 성령의 강림이라는 사건이었습니다. 성령의 강림이 이루어지던 때를 기준으로 본다면, 예수의 탄생과 부활은 단 한번으로 끝난 과거의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기억하는 성령의 강림에 대한 것은 유일한 단 한번의 행위로 치부(置簿)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홀로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사람들을 매개체로 해서 하느님의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당신의 삶을 통해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삶의 본보기를 남기긴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한 번으로 끝난 일이고 우리는 새로운 그리스도가 돼야 할 본보기로 남는 것에 비교할 수 있지만, 성령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의무와 역할이 남아있고 새롭게 부여됩니다.
100. 성령이 사도들에게 내려온 것은 오순절에 내려오신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은 지 50일째 되는 날, 그날이 오순절(五旬節)이었습니다. 이 오순절은 단순한 날짜의 셈에 의한 절기라고 하기보다는 ‘유대인의 절기로 따지면, 농작물이었던 밀을 수확하고 난 후, 하느님께 봉헌하는 축제일’ ‘첫 번째 추수일’이었습니다 창세기 처음에 나오는 것처럼, 처음 태어나는 것과 처음 수확하는 것은 하느님의 것(출애굽기 13,2 =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모태를 열고 나온 맏아들은 모두 나에게 바쳐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이며, 이 수확물 가운데서 곡식을 예물로 바치는 축제일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흥겨워 덩실덩실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그런 축제일이었을 것입니다. 이 축제일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성령의 강림이라는 하느님께서 친히 인간에게 복과 기쁨을 내려주시는 선물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전례력에는 부활 대축일부터 계산해서 여덟 번째 되는 주일(1998년의 경우, 5월 31일)입니다.
101. 이 성령이 내려오자 제자들의 삶의 태도가 바뀝니다. 스승 예수가 승천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부활하신 다음 40일만에 그들을 떠난 뒤, 10일 후 성령이 내려오시자 그들은 더 이상 예전의 그 자리에 숨어있지 않고, 현실의 삶에만 만족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갑니다. 그들 앞에 놓여진 현실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복음을 전파합니다. 복음을 선포합니다. 외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나서 사람들이 변화에 동참하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술 취한 사람들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사도행전 2,13),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놀래서 별 말을 하지 못하고 지냅니다. 성령을 받아 이렇게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일 때문에 사도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에게 다가온 선물(?)은 박해와 투옥 그것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에 감정을 보였던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여기 사도행전 2장에서는 ‘불 혀’모양으로 내려오셨다고 전합니다. 혀란 말을 하고자 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로 등장하는 12명의 사도가 말로써 복음선포를 확실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이 성령이 사람들 앞에 보이는 방법은 성서에 몇 가지로 나옵니다. 마르코 복음 1,10에 보면, 예수님의 세례 때에 성령은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옵니다.
또한 창세기 1,1-2에 보면, 성령을 묘사하는 용어로 학자들이 일치된 견해를 보이는 내용이 나옵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여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기운은 말씀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는 힘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기운은 ‘바람, 영, 혼, 얼’이라는 낱말로도 번역이 될 수 있다고 적습니다.
103. 하느님의 기운인 이 성령은 어떤 일을 하셨는가? 하느님의 기운이라고 했으니 하느님의 일, 하느님이 이 세상에 하시고자 작정하신 일들을 하셨을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바로 등장하는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곧바로 인도하죠.(마르코복음 1,12) 40일간의 외로운(?) 고행을 하도록 이끄시는 힘으로 등장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는 힘으로 등장하는 모습이 바로 성령입니다.
마르코복음 3,20-30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악의 힘을 제어(制御)하고 그 악의 확산을 막는 힘으로도 등장합니다. 사람들 사이의 논쟁에서 나타납니다. 사람들의 오해와 질시 속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기적을 행하고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악령의 기수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서 한다는 오해를 받게되자 성령의 역할을 확실히 알아듣고 선언합니다. 한가지 덧붙여 강조하는 내용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을 욕하지 말 것, 그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선언하십니다.
부활 승천 다음에 이어지는 성령의 강림 사건으로서 사도들은 복음전파의 기수가 되게끔 만듭니다.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복음전파에 뛰어듭니다. 대단한 열성이 함께 하던 모습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할입니다.
또한 요한복음서 14장 이후에는 성령의 오셔서 하실 일들에 대하여 길게 설명합니다.
지난 시간에 여러분들에게 읽어보시도록 권한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성령에 대해서 길게 설명하는 부분이 이곳이라고 말씀드리긴 했습니다만, 그것은 성서 내용의 길이에 따른 기준이라고 하기보다는 성령이라는 특별한 주제로 그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말의 설명이라고 할 것입니다.
14,1-14의 내용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신다는 것을 주제로 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비해서, 14,15-26의 말씀은 다른 형태요, 다른 모습인 성령의 강림으로써 드러나게 될 하느님의 모습을 이야기함으로써 돌아오는 내용을 주제로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들으려면 어쩔 수 없이 구별해서 알아들어야만 합니다. 창조주 하느님으로서 성부이신 분, 성자 예수그리스도로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신 분, 이 자리에서 말씀 드리는 영적인 존재로서의 하느님이신 성령으로 나누어서 알아들을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알아들으려면 구별되는 것 같지만, 같은 하느님이시기에 예수님은 자신은 떠나가고 성령은 오시는 일을 말함에 있어서 마치 당신이 그 모습 그대로 오시는 것처럼 말씀을 하십니다. 이렇게 알아듣는 세 분의 역할을 신앙을 설명하는 신학에서는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것을 잠시 후에 말씀드리기는 하겠습니다만, 설명은 어렵습니다.
새로운 형태로 우리에게 오시는 이 ‘협조자<Counsellor> 성령’이 오셔서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성령은 제자들과 함께 머물 것이고, 제자들을 사랑하실 분입니다. 그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가르쳐 알게 해 주실 분(요한 14,26)이십니다. 또한 성령은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실 것(14,29)이라고 하십니다.
105. 사도행전 1,8에는 성령의 역할 한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받게 될 사람들이 ‘예루살렘, 온 유다, 사마리아, 땅 끝에 이르기까지 증인이 되게 하는 역할’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4,31에 나타나는 것처럼,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대담하게 전하게 됩니다.
106. 이 성령은 올바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사도행전 8,9 이하에 보면, 성령을 이용하여 한 몫을 보려는 ‘시몬’이라는 이름의 마술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행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고 나서 돈을 내고(8,18이하) 성령을 주는 힘을 사려고 합니다. 잘못된 행위라고 우리는 판단합니다. 훗날 신앙인이 되면 여러분들도 똑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일이 그것입니다. 내가 하느님께 제물을 많이 바치면 인간의 욕심에 해당하는 선물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겠거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무상으로 내려옵니다. 선물이라는 것은 본래가 내가 무엇을 받겠거니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기분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다가온 선물은 제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좋은 결과를 냅니다. 특히 하느님의 성령은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신앙입니다.
107. 구체적으로 성령이 주시는 선물에 대한 이야기는 고린토 전서 12,8-11(신약성서 328면)과 갈라디아서간 5,22이하(365면)에 나옵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능력, 기적을 행하는 능력,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직책, 성령의 활동을 구별하는 능력,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 그 이상한 언어를 해석하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溫柔), 절제>등으로 나타나는 선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훗날 다루게 될 견진 성사에서는 이 성령을 통하여 <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워함>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내리는 성령의 은사들은 누구 개인의 영광이나 영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그 공동체의 선익(善益)을 위해서 오는 것(1고린토 12,7 = 성서 328면)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즘 볼 수 있는 ‘성령의 은사 체험운동, 부흥회, 성령세미나’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은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런 운동들이 어느 한 사람의 명성을 날리게 하거나, 단순한 기적만을 찾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일이므로 반드시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08. 이렇게 성령이 내려오신 힘을 받은 사도들은 이제 더 이상 의기소침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아 그들은 자신들의 머물고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갑니다......
하지만 이렇게 달려나가는 사도들, 즉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향하여 다가오는 인간의 평가는 실망을 던져 주이게 충분한 것입니다. 그 중에 첫 머리에 등장하는 것이 ‘저 사람들 대낮부터 술에 취했군’(사도행전 2,13)하며 빈정대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묘한 동물 아닌 동물이 돼 놔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파괴해야 직성이 풀리고 험담을 해야만 그 본성이 어느 정도 가라앉는 것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109.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든 간에, 성령의 힘으로 교회는 유지되고 발전합니다.
술에 취한(?) 베드로의 설교로 인하여 첫 날에 3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됩니다(사도행전 2,41).
예수를 죽인 일에 대하여 마음 켕기고 있었던 의회의 사람들은 부활한 예수를 선포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놓고 으르고 협박을 하며 자기들의 규정을 들어 ‘선교행위를 금지’(사도행전 4,7; 4,18)하지만, 그렇게 박해받는 일을 하느님을 전하기에 받는 특권으로 알아듣는 사도들(사도행전 5,41)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사도들을 보면서, 율법교사 한 사람이 편리한 제안을 합니다. 가므리엘의 말(사도행전 5,35-39 = 230면)을 읽어보시면 아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여서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훗날 닥칠지도 모를 재앙을 두려워하여 피하자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되시려고 이 예비자 교리를 듣는 여러분들에게 그런 일은 없으셔야 할 것입니다. 지금 뿐만이 아니라, 훗날 신앙인의 통과 의례인 세례(洗禮)예절을 마친 다음에도 말입니다. 그것은 신앙인의 정신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110. 미사 때에도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는 기도를 합니다. 신자들의 헌금봉헌이 있고 신자들이 일어서고 감사송이라는 부분을 한 다음, 복사들이 종을 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나서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감사기도 2양식)
제물에 대한 기도의 첫 머리에서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하며 기도합니다.
(신앙의 신비여 후 기도에서는)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힘을 통한 일치(一致)하게 하는 힘을 강조합니다.
이상으로서 성령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