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명(使命) >
141. 위에서는 세계 교회의 역사와 한국 교회의 역사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간단하지 않은 역사를 교회라고 하는 무형의 형체가 갖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으로는 이 교회의 사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교회의 사명’을 말씀에 대해 드리기 전에 다시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강조하겠습니다. 짧게 말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를 인류의 구원자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와 성서에 나오는 말을 정리하면,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갖는 교회의 역사가 이제까지 있어왔던 삶의 발자취를 말씀드린 다음, 이제는 그 교회가 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하는 공동체인지를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교회의 사명에 대해서는 ‘초대받은 당신’ 31과(142면이하)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말을 몇 가지로 나눠서 설명하는 것 정도로 하겠습니다. 그 교회의 사명을 표현하는 예언직, 사제직, 왕직으로 말하는 것은 옛날의 분류방식입니다. 의미는 현재의 것으로 번역해서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142. 예언(豫言)직무(職務)는 말 그대로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전하는 임무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사는 그 누구도 성서에 나오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이제는 필요 없다고 할 수도 있고, 사람들이 너무나 현명해졌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듣는 사람들이 없다고 하는 것도 옳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전하는 직무를 가리킵니다. 각자의 개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듣는 방법은 성서를 통해서, 전례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 경청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신앙을 가짐으로 해서 우리가 삶의 활기를 얻었다면, 그것이 우리로만 끝나지 않게 다른 이웃들에게도 널리 퍼져 나갈수 있도록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언은 단순하게 지붕에서 고함을 지르는 말로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행동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행동 방법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과 같은 <협박>이 포함될 자리는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삶의 활기를 주고, 나도 역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삶의 활기를 얻는 방법이 바로 이 예언직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3. 성화의 사제(司祭)직무(職務)는 대충 이야기하면 주교와 신부에게 적용되는 용어로 알아들을 우려가 있습니다. 공동체를 하느님의 뜻에 맞게, 거룩하게 하는 일차적인 임무는 그들에게 있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들 역시도 평신도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성화의 임무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라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봉사라는 임무와 그 역할은 그리스도 신앙인이면 누구나 부르심 받은 역할입니다.
144. 봉사를 실천하는 왕(王)직무(職務)는 구체적인 행동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할에서 이야기하는 왕(王)이라는 말을 흔히 우리가 아는 전제군주 시대의 그 왕(王)과 혼동하면 잘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5천 명을 먹게 하신 기적 다음에는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로부터 왕으로 추대 받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합니다(요한복음 6,15). 마음에 들지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것이 당신이 나가실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정치 권력자로서 예수님을 사형에 처한 폰티우스 지방 출신 빌라도의 고민은 더했을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 15장에 나오는 것처럼 빌라도는 사형선고의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마르 15,2)’라는 질문에 올바른 답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로마에 대한 반역자의 죄목이라면 그것 외에 다른 것이 없었기에 예수님의 사형선고 명패에는 그 말이 적히고 맙니다.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IESUS NAZARENUS REX IUDAIOS)-마태 27,29'이라는 죄명을 쓰고 죽은 예수님에게 적용된 말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왕이었으면 이러한 모습으로 죽으려고 했을까? 모르긴 해도 우리가 왕으로서 직무를 이야기할 때 알아듣는 말의 의미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왕으로서, 12군단이상을 호령할 수 자격을 갖춘 분(마태 26,53)이 무력하게도 그렇게 죽고 맙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에서 갖는 용어와 일상생활에서 갖는 용어의 의미를 구별해서 알아들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이러한 자격을 갖추었던 분이 산 자세가 바로 왕으로서의 직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것을 알아듣는 우리도 올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참된 구원의 길을 알려주시고 당신의 십자가 죽음으로서 참된 삶이요 그 길을 알려주었던 직무를 우리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힘을 서로 잃지 않도록 격려해야 한다는 소리도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