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 제 7 장

2006. 11. 10. 오전 8:08:55

글자

제 4 장 성찬 기도 내용과 구조의 비교

성부와 성자와 성령(성신) ,성사 제정문, 기념하고 봉헌한다, 기념송, 성령(성신)에 의해, 감사하고 봉헌한다,

하느님에 대한 봉사와 종말론적 증거, 공동체의 기도와 전구, 끝맺음과 영송


202. 네 가지의 성찬기도의 내용과 구조를 비교해보면 하느님의 구원사업의 서술은 감사송에서 시작하는데 각 양식이 약간씩 다르다. 일반적인 구원사업을 서술하고 있는 제2양식은 특히 강조하는 교의가 없어 제 3양식이나 제1양식에 언제나 사용할 수 있다.

모든 성찬기도는 그 구조가 성부께로 향하여 있고 지금 바치는 것을 성스럽게 변화시켜 줄 것을 비는 구조로 되어 있다. 성찬기도의 시작은 먼저 주 하느님을 부르고 나서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과 성령(성신)을 기념한다.

그 다음 성변화로 넘어간다. 성변화로 넘어가는 과정이 제2양식은 아주 간단하지만 제1양식은 로마양식의 전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매우 길다. 예수님이 협조자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셨고 우리는 성령(성신)의 힘으로 무엇이나 할 수 있으므로 우리가 미사 전례에서 특히 성변화에서 성령(성신)의 작용을 빌고 있다.

성령(성신)의 힘을 청하는 기도는 중요한 요소이다 모든 성찬기도는 성부를 향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가 바치는 예물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이 되도록 기도하는 점에서 같다.


203. 성사 제정문은 예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과월절 식사를 하시며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의식을 제정하시고 빵과 포도주의 표지로써 새 계약의 봉헌 형식을 제정하셨는데 성찬 기도문은 네 가지 복음서와 바울로의 고린토 서간에 의거하고 있다. 성찬의 기도문과 그 발췌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4. 루가와 바울로에게서는‘감사하고’라는 말이나 마태오와 마르코에서 ‘축복하고’라는 말과, 또 어디에서나 사용하는 ‘나누어’라는 말은, 바울로 서간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주며’라는 말을 ‘받아먹으라’는 마태오와 바오로에서, 소위 성변화의 말씀인 ‘이것은 내 몸이다’, ‘그들에게 주시며’는 마태로와 마르코에서 ‘잔’이란 말은 루가와 바울로에서, 루가에서‘너희를 위하여’를 각각 취하였다.  로마 전문<1양식>은 분명 이 네 가지 성서의 부분에서 모든 말을 하나로 엮어 만든 것이다.


20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 전날 저녁에, 거룩하시고 존엄하신 당신 손에 잔을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전능하신 천주 성부께 사례하신 후 축복하시어 ,당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하여 흘릴 피니라. 너희는 이 예식을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


206.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의 영광으로 넘어간 구원사업의 중심인 빠스카를 우리는 미사의 중심인 성찬의 기도에서(모든 성찬 기도에서) 다시 생각하고 기념하고 있다. 제4양식에서는 특히 ‘봉헌하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단순한 기념이 아닌 주님의 빠스카 기념의식을 함께 지냄으로써 그리스도의 봉헌이 전례의 신비를 통해 현존하게 되고 우리자신도 봉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주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전하며 주의 부활하심을 굳세게 믿나이다ꡕ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끊임없이 내림하고 있다는 긴박감과 우리가 그 신앙에 살고, 죽으심을 전하며 부활하심을 찬양하면서 살겠다는 신앙이 나타나 있고 증거하고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성령(성신)의 작용은 중요한 것이다. 기도문 전체에서 성령(성신)의 작용을 두 번 청하고 있다. 먼저 성변화 전에 나오는 성령(성신)의 작용을 청하는 기도 때이다.  네 가지 기도문은 우리가 드리는 제물 (빵과 포도주)를 성령(성신)의 힘으로 거룩하게 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이 되게 기도하고 있다. 성변화를 위하여 성령(성신)의 힘을 비는 때 인 것이다. 다음은 영성체를 위해 성령(성신)에 의한 일치를 기원하는 때이다. 그리스도의 몸에 함께 참여하는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해주기를 기도하는 때인 것이다. 각각 성찬의 기도는 각기 강조점이 있으나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기념, 봉헌, 감사이고 여기에 덧붙여 하느님께 대한 봉사 ,하늘나라의 대망(大望), 그리스도의죽음을 전하는 선교와 선언과 같은 성격도 포함되어 있다. 그 다음 공동체의 기도와 전구를 한다.


207. 우선 널리 펴져 있는 교회와 주의 백성, 우리를 인도하시는 교황, 주교, 사제, 모든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있고, 죽은 이들을 위하여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죽은 이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함께 누리도록 기도한다. 짧은 기도로 성찬의 기도를 끝맺으면서 영송으로 이어진다.


208. 제 2양식에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를 찬미하고 주께 영광을 드릴 수 있게 하소서”라 하였으나 3,4양식에서는 “주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온갖 좋은 것을 다 주시니” 되어 있어 부활과 더불어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다 주신다고 하며 마치고 있다. 이어서 영송이 있는데 각 위격의 고유한 작용을 상기시켜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성령(성신)과 더불어”라는 말은 성령(성신)은 성부와 성자의 나눔인데 성부, 성자, 성령(성신)이 삼위일체로서 하나의 위치에 놓고 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나눔 안에 받아들여져 동참하고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하나가 되어 하느님께 모든 영예와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다.  성령(성신)을 통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 모든 신자가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이것과 더불어 교우들을 대표하려 사제가 한 신앙고백에 교우들의 찬동을 나타내는 외침인 ‘아멘’으로써 끝을 맺는다.


재 5 장 나눔의 의식(성찬식)

주님의 기도(전문, 본문, 부문), 교회를 위한 평화의 기도, 평화의 인사, 평화의 찬가, 영성체의 노래와 행렬,

영성체 전 신앙고백, 영성체 후 기도


209.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 전에 사제는 “주의 가르침을 지키고 말씀을 따르면서 삼가 주님의 기도를 바칩시다.”라고 하며 기도로 초대하지만 아버지를 떠난 탕자처럼 하느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구원사업 덕분으로 감히 주님을 하느님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아야한다.  또 이것을 감사하고 주님의 기도를 소중히 여기며 주님의 자녀 되었음을 상기하면서 이 기도를 바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10. 주의 기도의 본문은 마태오 복음에서 취한 것으로 이 기도의 주제는‘주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바라는 사상에 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에서 사용한 ‘이름’에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본질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 나라가 임하시며’라는 말이나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주의 기도의 후반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악에서 구하소서’의 네 가지는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 주님의 기도가 영성체 전에 바치게 된 것은 매일미사가 거행되기 훨씬 이전부터의 관습이다. 주일날 받은 영성체를 전부 영하지 않고 집에 가지고 가서 매일 아침 주의 기도를 바치고 영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잘못한 일을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면서 하느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주님의 기도가 끝나면 사제는 주님의 기도의 부문을 바친다.  하느님 아버지에게 향한 기도인 부문은 현재의 것은 최후의 기원인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말을 이어받아 그 사상을 부연한 것이다. 여기에 주의 기도 전체의 주제인 ‘하느님 나라가 임하시며’라는 사상을 첨가하였다. 이러한 하느님 나라를 바라는 종말론은 기대의 응답으로 “우리 주 천주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세세에 있나이다”하고 답한다. 여기 나라는 정치적인 국가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하느님의 내세적인 나라라는 뜻도 담겨 있다.


211. 다음의 교회를 위한 평화의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로 시작되는 그리스도를 향해 교회를 위해 평화를 청하는 기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하며 평화를 약속하셨다. “우리 죄를 보지 마시고 오직 성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성교회로 하여금 주의 뜻대로 화목하여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라 하신 주의 약속으로 하느님이 교회에 평화와 일치를 주시도록 다시 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212. 다음의 순서는 평화의 인사인데 본당의 교회 안에서 서로의 평화와 일치를 나타내고 확인하는 기도이며 인사이다. 사제는 그리스도가 현존하시고 지배하고 있음을 다시 상기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신자 상호간의 인사는 옛날에는 ‘신자들의 기도’라는 공동 기원 다음에 행하여 진 것으로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16,16)나 베드로 의 첫째 편지(5,14)에 나오는 “사랑의 입맞춤”이란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스티노나 히폴리토에 의하면, 그것은 말씀의 전례를 끝맺는 기도의 ‘봉인’이며 성찬의 전례에 들어가기 전에 신자들만이 서로 교환하는 인사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서로를 용서하는 것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 평화의 인사가 영성체 전의 이 순서로 옮겨진 것은 그레고리오 1세 교황에 의해서였다.

213. “하느님의 어린양 ”으로 시작되는 평화의 찬가는 세르지오 1세에 의해 7세기 말경부터 미사에 도입된 찬가이다.“하느님의 어린양”은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을 때 한 말인 것처럼 하느님의 아들을 부른 말이고 하느님의 아들을 찬미하게 하는 노래이다. 

성체를 영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만이 아니라 영성체를 전후하여 모두 함께 노래하는 것으로 하느님께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에 의의가 있다. 행렬은 순번을 기다리기 위한 단순한 줄서기가 아니고 주의 만찬 석상에 동참하고 주의 부활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모두가 그러한 마음으로 즐겁게 함께 노래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성체전의 신앙고백은 성체를 보이며 묵시록(19,9) 에 나오는 “하느님 어린양의 식탁”이란 상징적인 요한의 말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완성 때의 영원한 잔치를 나타내는 주의 식탁으로 신자들을 초대한다.


214. 다음은 루가복음 7,6-7에서 백부장의 겸허(謙虛)한 신앙 고백을 인용하여 겸허한 신앙심을 일으키도록 되어 있다. 사제는 영성체 할 때 각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성변화의 말이 그 말 안에 포함되어있고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시고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겠다는 결의를 표명하는 행위이므로 신자는 “아멘”이라고 대답하면서 받아 모시는데 똑똑하게 “아멘”이라고 대답해야 하고 영성체 전의 “그리스도의 몸”과 “아멘”은 생략되어서는 안된다. 영성체가 끝난 다음 영성체 후 기도는 본기도나 봉헌기도와 같이 미사의 세 가지 공식기도의 하나로 나눔의 의식과 성찬의식 전체를 끝맺는 기도이다. 그 내용은 그 날의 그리스도 구원의 신비가 그리스도인에게 작용하여 우리들의 생활에 풍성한 결실을 맞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제 6 장   폐회식

215. 알림 ,파견의 축복과 폐회 인사

본래 교회라 함은 집회를 개최하는 예배 공동체이지 건물은 것이 아니었다. 폐회식은 사회로 향한다는 의미로서 공지사항을 통해 교회공동체를 위해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그밖에 필요한 뉴스, 활동보고, 당면한 과제들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그리스도고 신자로서 행동으로 여러 상황에서 주님을 증거 할 수 있다. 꼭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그러한 방법으로 복음 전파가 가능 한 것이다. 여기에 힘을 주기 위해서 폐회 인사에서도 폐회 선언의 말에 파견의 말이 덧붙여 있는 것이다. 



제 7 장 미사를 노래로 하기

그레고리안 성가의 전통과 전례의 국어화(國語化) 대화구와 행동적 참가


216. 전례에 있어 감사의 의식을 거행할 때 노래하는 것은 찬미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다. 노래함으로써 말을 더 잘 표현하게 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서로에게 자극이 되며 신앙의 증거가 되어 일치를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 전례헌장 116조에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전통을 교회음악의 귀중한 유산으로 소중히 여기도록 권하고 있다. 그레고리안 성가의 가장 뛰어난 보편적 가치는 가사를 살리기 위한 선율이요 연주법이라는 사실에 있다. 가사의 내용이 살아나고 풍부히 표현되므로 깊이 음미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되어있는 것이 장점이다. 신자들이 미사에 행동적으로 참가하기 위하여 신자들이 할 부분인 응송이나 답송을 노래로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같은 형식은 그리스도의 현존의식을 높이는 말이고 이에 답하는 신자들의 말인 “또한 사제와 함께”는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고 계시다는 신앙의 표현이 되었다. 사제는 신자들이 응답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성가대 가 모범을 보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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