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부 : 삶의 완성을 위해- <그리스도인의 죽음, 모든 사람의 완성>

2006. 11. 10. 오전 8:04:26

글자

제 4 부 : 삶의 완성을 위해

<그리스도인의 죽음, 모든 사람의 완성>  

266. 이 부분은 우리의 신자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은 적은 부분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이야기할 때, 신앙인으로서의 완성은 하느님과의 일치로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일치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과 결합할 때, 즉 죽음으로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음에 대해서 자신있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경험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대하여>

267. 죽음의 문제

인간은 누구나 죽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가리켜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도 합니다.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지만, 그 역할은 나를 대신해서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 걸까?  그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옛날 중국의 진시황도 죽지 않으려고 별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가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신비 속에 머물러 있는 죽음이라는 실체.  이 신비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는 거부나 반항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반성의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268.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구약성서에 의하면 죽음은 ‘죄의 결과’(창세기 3,19-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입니다.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교만과 불순종, 하느님을 향한 반역 때문에 죽음으로 결말을 맺은 많은 경우를 우리는 성서에서 볼 수 있다.

이사야 25,7-8에 ‘하느님이 머무시는 산에서 잔치를 벌리시고 백성들의 얼굴을 가리웠던 너울을 찢으시며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리라’고 약속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또한 호세아 13,14에는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빼내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1고린 15,54-55에 ‘이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을 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라는 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요한 11,25-26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이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죽고 땅에 묻히신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신앙은 가르치고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만일 이렇게 다시 살아난다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전하는 예수의 가르침은 헛된 것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그 분의 편지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신앙에서는 새로운 삶의 본보기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이며, 그분의 삶을 우리가 이 땅에서 실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고,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一致)를 이루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269.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뒤섞여 범람하고 있습니다.  악(惡)이 선(善)의 이름으로 위장하기도 하고, 선이 악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러한 모순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설 때, 숨김없이 드러나서 잘한 일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은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태오 복음서 25장 최후심판의 비유).  하느님의 그 판정에 따라서 우리는 천국과 지옥과 연옥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들게된다.


270. 천국과 지옥과 연옥

1)천국 : 하느님이 계시는 곳.  축복 받은 자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며 영원한 생명의 나라(마태 25,31-46참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오른쪽의 강도에게 약속하신 곳(루가 23,43참조).   하느님과 함께 사랑으로 일치되어 충만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

2)지옥 : 천국과는 상반되는 곳. 하느님과 분리되고 단절된 상태, 무자비하고 게으르며 저주받은 자들이 가야 할 곳(마태 25,31-46참조).  루가복음서 16장 19-31에 나오는 표현에 따르면, 부자가 고통을 받고 있는 곳이며, 다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배제된 곳을 가리킨다.  이 곳에 가야 할 판정을 받는 이들은 누구이겠는가?  루가 복음서 이 부분에서는 사랑의 실천을 하지 않은 대상을 지칭하고 있다.

3)연옥 : 성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개념.  사람의 아들을 모독한 이는 용서받을 수는 있다(마태 12,32)는 말을 하심.  교회는 초기부터 기도와 미사로써 연옥에 있는 영혼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가르쳤으며,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과 서로 통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기도한다.(사도행전의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을 믿으며’와 ‘우리가 훌륭했지만 이미 죽은 이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도 같은 이치)


271.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분이다. 이것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산다.  실제로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느님 앞에 설 때 완전하게 자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사랑이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안에서 결실을 얻을 때까지 충실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272. 세상의 완성(=종말)

예수님은 여러 번 세상의 완성과 그 날의 분위기에 대해서 복음서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한 사실의 묘사라고 하기보다는 신앙의 위기와 시대적인 위기를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세상의 완성(사도행전 1,7=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주실 때가 지금인가?)에 대해서 묻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아버지께서 결정하셨으니 알 바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다.  분명히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변해가고 달라지겠고 사라져 버리겠지만(1고린 7,31) 착한 행위와 그 업적은 영원히 남는다.


273. 그리스도의 재림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사(救世史)의 목표이며 출발점이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재림과 세상의 완성에 대한 많은 가르침들의 목적은 ‘선과 악이 혼돈되어 있는 현재의 역사가 끝나고,  眞, 善, 美 자체이신 하느님과 그분을 따르는 이들이 승리할 것이며, 구원의 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이의 구세주이시며 주님이심이 만방에 밝혀질 거라는 가르침’이다.


274. 육체의 부활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다시 살 것이라고 가르쳐왔다(요한 11,25).  이런 가르침을 따라서 교회는 세상이 완성되는 날에 모든 인간이 부활하여 하느님 앞에 서게 될 것임을 믿고 가르쳤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선인이든 악인이든 부활 할 것이다(1고린 15,13-14). 예수님은 육신을 지니고 부활 승천하셨지만 생명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가셨다.  육체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교회의 가르침의 의도는 ‘인간이 단순히 영혼만의 존재가 아니며, 영과 육이 결합된 존재로서 그 육체는 소중한 것이며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살도록 부르심 받았다’는 점에서 전인간이 변형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275. 공심판(公審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모든 이들이 부활할 때에 사람각자는 있는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그때는 아버지의 나라가 해와 같이 빛날 것이며(마태13,43), 밀과 가라지가 분리되고,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가 구별된다.   즉 공심판은 모든 것이 완성되고 마무리짓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심판기준은 마태 25장처럼, 이웃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사랑했는가?’이다.

공심판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희망을 주는 것이며, 그때를 올바로 맞고 현세 생활을 윤택하게 해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생활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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