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양심에 대하여>
인간은 선한 것을 식별하고 그것을 바라고 살아간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인간다운 행위를 함으로써 자아를 성취하고 책임을 진다. 인간은 자기존재의 근원인 하느님에게서만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처신해야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안다. 또한 우주는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설정한 질서(신법)에 의해 지배된다. 인간은 이러한 하느님의 진리를 알아듣고 책임을 지고 지켜나가게 되어있다. 이것이 이성의 규범이다.
인간은 윤리행위를 위한 객관적인 규범(법)외에 이것에 호응하는 내부의 기능이 있어서 구체적인 윤리행위를 하도록 이끈다. 이것이 양심이다. 이는 행위의 주체자에게만 소속되는 것으로 주관적 규범이라 한다. 양심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안방이요, 하느님이 계시는 지성소이며 그분의 법의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이 법의 소리는 인간에게 언제나 선을 사랑하고 행하고 악을 피하라고 한다. 인간은 양심에 순종해야 하며, 양심(良心)과 인정법(人定法)이 충돌될 때에는 양심을 먼저 따라야한다고 가르친다.
인간은 자아를 성취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자기 실존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거부하며 저항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아담이 행한 의도적인 어김이며(외적인 행동), 하느님과 같아지고자 하느님과 경쟁하고자 하는 태도로 생각한 것이다.(내적인 행동) 결국 하느님을 거부하였고 자신을 선과 악의 판단 기준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죄란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그 분의 계명과 질서와 조화를 깨뜨리며 그 분의 초대를 거절하고 그 분과 대등해지려고 하며 그 분께 용납될 수 없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아닌 피조물에 자신을 내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는 내적인 자세와 외적인 행동이 다 문제되는 것이다.
죄는 하느님의 계명을 거스르는 행위를 그릇된 줄 알면서도 자유로이 의도적으로 행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대죄와 소죄로 나누기는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죄(死罪)와 용서받을 수 있는 죄로 구별한다.
죄의 결과로 인간은 하느님과의 친분관계를 잃었고 낙원에서 추방되었으며 인간사이의 갈등도 생겼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도 보내주셨다. 죄인을 구원하러 그리스도는 오셨으며(마태 9,13), 죄가 없으신 분(요한 8,46)으로서 죄를 없애고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셨다.
인간이 이 하느님의 사랑을 수용할 때에 비로소 구원이 될 수 있다. 죄가 자유의지의 소산이듯이 하느님의 사랑 역시 인간의 자유의지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표시로서, 인간은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려야 하며,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행해야 한다. 주님의 초대에 응하는 것이 구원이다. 이 초대에 응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바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생활이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초대에 인간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응답하는 것이다. 믿음의 대상은 하느님과 그 분의 구원계획이다. 이 믿음은 감상적인 것이 아니다. 확실히 내용을 알고 맡기고 동의하는 것이며 자신을 의탁하는 사랑의 행위이다.
세례를 받을 때 주어지는 믿음은 내가 어떻게 키워 가느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진다. 믿음의 대상과 내용을 더 잘 알도록 성서를 읽고 기도하며 성사생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믿음에 따라 우리의 행위가 달라져야만 참되게 살아있는 믿음이 된다.
희망은 우리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며, 이는 믿음에서 나온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이 희망은 때때로 실패로 끝나는 인간의 희망과는 다른 것이다.
하느님께 바라는 이 희망은 미래에 올 추상적이고 공허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 하느님 나라의 상속, 영원한 생명, 현세에서 기쁨과 행복이라는 구체적인 것이며, 결국에는 세상 종말에 이루어질 모든 사람들의 완성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의 일에서 쉽게 실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느님께 희망을 두지 않고 인간의 현실에만 집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느님께 대한 희망의 포기는 커다란 잘못이며 이는 믿음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희망의 비결은 믿음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지만, 그 분은 목숨을 바쳐가면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찾아오신다. 이에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느님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응답은 역시 사랑의 실천이다.
하느님은 한때 우리를 사랑하시고 정지하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안에 살아계시며 사랑을 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284. 믿음, 희망, 사랑의 생활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윈리이다.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고 하느님의 구원약속에 굳은 희망을 갖게되며 마침내 그 분을 사랑하고 따르게 된다. 믿음을 뿌리로 하고 희망을 줄기와 가지로 한 나무가 되어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 사랑은 실제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의 사랑으로 구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