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聖事). SACRAMENT>

2006. 11. 10. 오전 8:12:30

글자

<성사(聖事). SACRAMENT>

162. 오늘부터 시작하여 다루게 될 성사에 관한 이야기는 쉽고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쉽다는 뜻은 예비자 교리에 임하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당장 적용되는 부분이 많지 않기에 길게 이야기드릴 성격이 아니라는 뜻에서 쉽다는 것이고, 어렵다는 이야기는 표현이나 말은 분명 사람의 말을 쓰지만, 인간사(人間事)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어렵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본래 그렇게 아리송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성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63. 먼저 ‘성사’라는 말의 뜻부터 말씀드리고 나서 이 부분을 시작하겠습니다.  가톨릭 대사전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사(聖事)’란, ‘감각적 상징을 통해 효율적인 은총을 낳게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것’ 또는 ‘외적행위로 나타나는 증표로 인간의 감각이 도달할 수 없는 감추어진 하느님의 은총이 감각적인 형태를 통해 전달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감각적 상징이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거나 다른 기관으로 느낄 수 있는 행위들을 가리킵니다.


164. 이렇게 사람의 일이지만,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는 특별한 일, 즉 성사에 가톨릭 교회는 일곱 가지를 정하고 설명합니다.  이 성사라는 통로(通路)를 통하여 사람은 하느님께 보다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얻게 됩니다.  예비자 교리서에도 나오겠지만, 순서라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요하니까 여러분들이 외우지는 않더라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세례성사, 고해성사(화해성사), 성체성사, 견진성사, 혼인성사, 신품성사, 병자성사의 일곱 가지 입니다.  이 일곱 가지의 성사에는 앞서 말씀드린 사전에 나오는 말대로, 사람의 행동과 더불어 교회에서 정한 방법에 따라서 진행되는 예절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린 일곱 가지 말고도 ‘성사’라는 용어가 붙는 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준성사, 판공성사, 등의 말은 이 예비자 교리의 ‘하느님의 성총을 얻는 방법’편에 나오는 성사는 아닙니다.  다만 비슷한 성격이나 뜻은 있습니다. 훗날 말씀드릴 기회가 따로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165. 세례성사는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는 성사입니다. <BAPTISMUS>

이렇게 태어난다고 하는 의미에는 상속자가 된다는 것도 포함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고 자라면서 하느님을 ‘호주(戶主)’로 모신다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따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만, 세례성사는 하느님과 한 가족이 된다는 의미가 있는 성사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한가족이 되기 위해서 여러분은 이 예비자 교리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린아이들<=초등부 2년 학생이전>에게는 여러분들처럼 이렇게 하는 예비자교리를 거치지 않고 먼저 세례를 주기도 합니다.  물론 적당히 성장한 후<3학년이후>에 기초에 해당하는 교육을 받는다는 조건이기도 하고, 부모님들에게 부탁드리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린이에게 조건부 형식(?)으로 세례성사를 주는 것은 여러분이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자녀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습니다.

이 세례성사를 이루는 예절에 대해서 간단히 말하면, 전례예식 가운데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에게 세례를 줍니다’하며 축성한 물을 이마에 붓고, 십자표를 세 번 긋습니다.  물론 집전자는 사제입니다. 이 예절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며,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세례성사를 가톨릭 교회의 입문(入門)성사(聖事)라고도 합니다.


이 세례성사를 표시하는 구약성서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역사를 가리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모세의 인도를 받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 죽음의 위협에서 생명의 땅으로 들어섭니다.  물을 가르고 바다를 건넜고 그렇게 물을 건넌 것이 생명으로 건너가게 된 것임을 의미하는 의미로 이마에 물을 붓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례성사는 예수님이 세우신 것이라고 하며,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기원을 두 군데에서 정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5의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야한다는 것, 요한복음 19,34의 ‘군인하나가 창으로 그(=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를 말합니다.

마태오 복음서 3,11-14에 보면, 세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가장 먼저 세례를 베푼 사람은 요한이었지만, 그는 파견을 받고 온 사람으로서 세례의 원천이 예수라고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십니까?”

이 세례성사를 통하여 각 신자의 이마에는 인호(印號)가 새겨진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지워지지 않는(=세례를 물릴 수 없는) 하느님의 표식을 가리킵니다.  이 세례성사를 통하여 신자가 된 이들은 훗날의 다른 성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최초로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166. <우리의 신앙을 굳게 해주는 견진성사> <SACRAMENTUM CONFIRMATIONIS>

두 번째로 초대받은 당신에 기록되어 있는 성사는 견진성사입니다.  이 성사도 입문성사로 분류하곤 했습니다만, 지금은 그 의미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견진성사의 의미를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고, 따로 교육할 내용들을 분리하지 않았기에 일반적으로 세례성사를 거행하면서 함께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분리합니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에게 성령과 그의 선물을 주어 신앙을 성숙시키고 증거하게 하는 성사’입니다.  이 견진성사의 의미는 신앙을 성숙시키고 증거하게 한다는 의미 말고도 ‘신앙인으로서 성인(成人)이 되게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성인(成人)이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이라야만 신앙인의 성인이 되고 세례받은 사람들의 대부(代父), 대모(代母)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춥니다.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성령의 선물은 ‘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워함’입니다.  이것을 견진성사의 일곱가지 은혜라고 합니다.  또한 성서에 나와있는 성령의 선물들로는, 갈라디아서5,22<365면>에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를 이야기합니다.

성서에 나오는 견진성사의 모습 한가지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의 강림’사건입니다.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혀 모양을 가진 불’이 내려오고 제자들 삶의 형태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사건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모습이 사도행전 2장 이후에 잘 나옵니다.

현재, 교회에서는 세례성사를 받은지 1년 혹은 2년 사이에 견진성사를 받도록 권유합니다.  물론 견진성사를 받기 위해서 준비가 필요합니다.  짧게는 한달, 길게는 6개월 정도의 지속적인 교육을 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을 통하여 신앙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나는 그 의미를 삶에서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그 방법들을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봅니다.

견진성사는 일반적으로 교구에 계시는 주교님이 오셔서 본당 주임신부와 함께 공동으로 집전합니다.  견진성사의 특징은, 기름을 이마에 바르면서 “****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 평화가 그대와 함께....”하는 예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67. 틀어졌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용서와 화해의 성사<SACRAMENTUM POENITENTIAE: 뉘우침,화해>

고해성사<=화해의 성사>는 ‘자신의 삶을 뉘우치는 사람과 하느님 사이의 원만한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성사’입니다. 말은 간단하지만, 이것처럼 많은 반대를 받은 성사가 드문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신부가 뭔데 죄를 용서해 주는가하는 질문과 반대에 끊임없이 부딪힌 성사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질문의 전부는 개신교의 고명(高名)하신 목사님들과 골수 신자들에게서 오는 질문들입니다.

그 질문에 응답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이 말에 대해서 응답을 할 필요는 있습니다.

이스라엘 과거 역사(=구약의 역사)에서 하느님 모독은 죽을죄에 해당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를 용서한다고 선언하자 그 하느님의 말씀(=구약의 율법)을 연구해온 율법 학자들이 반발합니다.  마태오 복음서 9,3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다가온 중풍병자에게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사람에게 병이 생긴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구약의 사상이었습니다.  <민수기 12,1-16: 하느님이 모세에게만 이야기하시고 우리에게는 아무말도 하시지 않는줄 아느냐? 아론과 미리암이 이렇게 항의하자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생긴다.-->하느님께 반항해서 병이 생긴다. 모세의 기도로 하느님께서는 그 병이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다--진지 밖에 7일간 거주 >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죄용서라는 말로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견지(繭紙)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양도하십니다.(마태오 18,18 --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이러한 권한을 행사하셨던 예수님이 선택한 제자들에게 그 권한을 맡기고, 그렇게 받아들인 권한과 의무가 많은 세월을 지내면서 교회에 의하여 선택된 사제가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고해성사를 집전합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죄의 용서를 위한 절차는 교회에 의해서 다소 복잡하게 변형되었습니다. 예비자 교리를 하는 여러분들에게 따로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용서 청하고 용서받으려면 일정한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교회가 정한 방법은 이 화해의 성사를 집전하는 방법을 다섯 가지 단계로 설명합니다.  성찰, 통회, 정개, 고백, 보속의 다섯 가지 단계입니다.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단계인 통회입니다.  사실상 통회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다른 것은 그저 통과하는 의례일 뿐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되 좋은 것을 먹고 내 몸이 건강하다면, 그것의 소화흡수와 더불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내가 힘을 쓰게 되는지 몰라도 좋은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죄의 용서를 선언하는 사제의 말은 다만 교회의 선언일 뿐입니다.  이 교회증인의 선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고백자(告白者)의 마음 준비이고, 그것을 가리켜 통회의 자세라 칭합니다.

이런 과정을 겪는 교회에서 정한 화해의 성사를 단계별로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1)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행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성찰(省察)이고,

2) 진정으로 반성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통회(痛悔)이며,

3) 잘못으로 인정한 것을 최대한 노력으로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고치기로 정하는 것이 정개(定改)이며,

4) 교회를 통하여 죄를 용서해주는 사제 앞에 들어가서 그 잘못한 것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고백(告白)이며,

5) 사제의 판단에 따라 정하여 주신 일을 실천하여 죄를 용서받는 대가로 행하는 것이 보속(補贖)입니다.


이런 정도로만 말씀드리고 훗날 고백에 대한 단계를 따로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또한 아주 부수적인 일이겠지만, 신자들은 대단히 크게 생각하는 예절에 대한 연습은 따로 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 교리의 이론적인 것이 대부분 끝난 다음, 실제 연습할 시간을 따로 만들기로 하겠습니다.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인간의 죄를 씻는 방법이 목욕하는데 있습니다.  자와할랄 네루가 쓴 세계사 편력 1권의 52면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마흐멜라<힌두력 마흐달의 축제> 첫 번째 축제일인 산크란티 날에, 수천명의 순례자들이 떼를 지어 갠지스 강과 줌나 강이 만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라바스티 강도 합류한다는 산감에서 아침 목욕을 하기 위해 간다.  이런 내용을 소개하면서 힌두인들의 신앙에 대해서 네루는 기록하고 있다)


168. 예수님의 몸이 있게 하고 우리가 받아 모실 수 있게 하는 성체성사 (----->미사에서 따로 설명한다)

이 부분은 미사에 대한 것으로 합쳐서, 맨 끝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신앙인들에게 생명을 주는 예수님의 몸을 이 세상에 있게 하고, 그 몸을 우리가 준비된 마음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성사입니다.  하지만, 이 성사는 단순하게 우리의 입으로 성체(聖體)를 받아 모시는 일로 끝나는 것은 아니고 더 깊은 의미가 있는 성사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모든 성사의 기본으로, 모든 전례의 중심과 바탕으로 정하는 성사가 바로 이 성체성사입니다. 이 성체성사에 대해서는 성사 뒤에 분리해서 따로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169.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들의 부분을 할 수 있게 하는 신품성사<SACRAMENTUM ORDINIS>

신품성사(神品聖事)는 이 지상의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신권(神權)을 주는 성사를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 신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히 교회의 일 안에 제한됩니다.  이제까지 말씀드린 성사를 집행하는 권한과 의무를 말합니다.  즉 세례성사, 고해성사, 성체성사인 미사, 그리고 조금 있다가 말씀드릴 교회혼인 성사의 증인역할, 병자성사등 입니다.  그 각각의 세부사항은 따로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 성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남자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서울 교구의 경우에는 미혼남자, 나이 28세이하,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자가 교구의 몇 가지 규정에 의거, 선발되어 교구 신학교에서 7년 또는 10년간의 교육을 마친 다음 사제로 서품됩니다.  말로는 간단하게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을 간단하게 요약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사제로 서품되는 사람들의 활동 분야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수도회 소속으로 움직이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교구소속으로 움직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자세한 구별이야 여러분에게는 필요하지 않겠지만, 각 본당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교구소속의 사제들과 그 역할이고, 병원과 교육기관등 몇 종류의 특수분야에서 주로 활동하는 분들이 수도회 소속의 사제들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실 수 있는 수녀님들은 이러한 수도회 소속에서 여성들의 활동분야입니다.


170.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이어나가는 혼인성사<SACRAMENTUM MATRIMONII>

‘남편과 아내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관계를 성화(聖化)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설정한 성사’가 혼인성사입니다.  이 혼인성사는 단순하게 살아야 할 의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 행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창조사업을 계승, 유지,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19,1-12에 보면 혼인성사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하여 구약의 율법을 잘 알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묻습니다. ‘무엇이든지 이유가 닿기만 하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이러한 질문은 철저하게 왜곡된 사회, 남자들만을 중심으로 살던 세계에서 잘못된 삶의 습성이기도 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요구하는 질문에 고지식하게 답하는 것은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인정하는 율법을 무시하거나<--아내를 버려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자기 멋대로 하느님의 율법을 해석하는 사람으로 판단받을 수 있는 함정을 파놓고 그들은 예수가 그 함정에 빠지기를 그들은 기다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법을 제정하게 된 정신에 대해서 먼저 묻습니다.   왜 그런 법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법은 엄격하게 해석해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교회에서 인정하는 혼인에 대한 정신이 나옵니다.

혼인하면 남자와 여자는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한 몸이라는 것<5절>, 혼인은 하느님이 짝지워 주시는 일이라는 것<6절>, 한 남자는 한 여자와 결혼해야한다는 것<어기면 간음><10절>, 결혼하거나 하지 않을 수 선택은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11절>을 말씀하십니다.

이런 내용과 관련하여, 여러분들에게 예비자 교리를 시작하면서 혼인에 관한 이야기를 드렸던 것입니다.  열심히 예비자 교리에 다 나오셔도 만일 이러한 혼인에 관해서 규정된 법에 위배되는 생활을 여러분들이 현재상태 하고 있다면 세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는 별 사항 없었습니다.  따로 제가 시간을 내어 개별적으로 면담을 하겠습니다. 그때라도 확인되면, 애석하지만 세례성사를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정한 혼인은 복잡합니다.  다른 성사를 설명할 때와 혼인성사를 설명할 때는 주체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성사는 신자들이 전부 대상이지만, 이 혼인성사에 대해서는 혼인 당사자가 주체(主體)입니다.  또한 교회의 사제는 단순히 ‘교회의 증인’ 역할 이상을 맡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정한 혼인 예절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양쪽 당사자의 동의(同意)입니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겠는가? 그것을 모인 하객들 앞에서 큰 소리로 자신의 견해를 표현합니다. 그 동의로써 혼인은 성사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 혼인제도만큼이나 복잡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매번 혼인 때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여 잘못된 일이 없도록 몇 차례 강조합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가질법한 내용 한가지만을 말씀드리고 혼인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혼인제도에는 ‘이혼은 없습니다’.  교회에서 정한 법 규정에 따르면, 혼인 무효<나는 혼인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혼인이 아니었다>는 있을지언정, 결코 이혼이라는 것은 없고, 또한 조건부 혼인도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계약결혼과 같은 모습도 없다는 것입니다.  기타 혼인에 관련된 다른 내용들은 따로 다루어야 하겠습니다.


171. 앓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함께 있음을 알려주는 병자성사<sacramentum unctionis(도유) infirmatiorum>

‘교회가 고통받으시고 영광 받으신 주님께 죽음의 위험에 처한 환자를 맡겨드려 주께서 그를 구원해주시도록 하는 성사’.  예전에는 이 성사를 종부(終傅)성사라고도 했습니다. 그 의미는 죽기 직전에 기름을 바르고 구원을 빌어준다고 했던 데서 기인하며, 마치 이 성사를 받고 나면 죽어야 할 것으로 사람들이 알아들었던 과거의 역사가 있기에 그렇게 불렸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용어입니다.

요즘에는 병자성사를 꼭 죽을 위험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병이나 노쇠함으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는 신자에게 먼저 영신적인 목적을 위하여, 다음으로 육신 건강을 위하여 베푸는 성사’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단순하게 사제가 찾아가서 기름을 바르는 행위로써 기적을 일으키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잘 생각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병자성사에 앞서서 고해성사를 집전하기도 합니다.  병자 본인이 말하기 어렵다면 말없이 이루어지는 ‘전대사’라는 것도 있습니다.

병자성사에 대해서 성서에서 기록하는 부분은 야고보 사도의 서간 5,14-16(447면)에 나옵니다.  서간의 이 부분에 해당하는 ‘원로’는 교회의 직책에 따라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교리교안 32조목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