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서 -- 초대받은 당신 17 과 >
52. 성서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성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성서는 우리가 한자로 聖書라고 씁니다. ‘거룩한 책’이라는 한자의 뜻을 빌어서 씁니다. 왜 거룩하다고 이름을 붙이는가?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바라보는 뜻이며 설명에 따라서 달라집니다만, ‘하느님의 뜻을 담은 글’이기에 그렇다고 먼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내용이 다 거룩한가? 라고 우리는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각각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보다는 왜 그런 용어를 쓰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성서는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는 성서가 지금의 형태로 자리잡는 데에 꽤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단편적이긴 합니다만, 글로 남겨지지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최소한 3400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지금의 형태로 차츰차츰 자리잡은 것은 기원전 900년경 전쯤으로 일반적으로 정합니다. 이 시대는 솔로몬 왕정시대입니다. 물론 이 시대에 완성된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때부터 모세 오경부터 시작하여 글로 하나씩 둘씩 쓰여지기 시작합니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역사적인 구별에 의한 것입니다. 구약성서 중에서 가장 늦게 글로 남은 것은 <마카베오서 상하권>정도로 일반적인 구별을 합니다. 역사의 배경을 보면, 기원전 140년 전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53. 성서는 단순한 역사의 기록은 아닙니다. 성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자기 백성들은 하느님의 선민(選民)이라는 의식을 갖고 살았던 사람들이 기록한 ‘반성과 삶의 회고록’이라고 하는 편이 아마도 더 올바른 표현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영광스러운 일은 물론이고, 사람이면 숨기고 싶을 만한 개인적인 일들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서는 믿음의 고백서라고 하는 표현도 가능할 것입니다. 자신들 민족의 기원과 그 흥망성쇠를 적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역사와 흔적을 맞출 수 없는 ‘원역사’도 거기에는 적혀 있습니다. 이 원역사는 다른 말로 하면. ‘신화(神話)’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 원역사의 부분은 창세기 1-11장까지를 지칭합니다.
54. 성서는 또한 하느님의 계시를 적어놓은 책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몇 가지의 의미 외에도, 성서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알리는 이야기, 말씀, 예언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 직접 들었기에 쓴 내용은 아닙니다. 지금 말씀드린 몇 가지의 뜻을 담아서 짧게 이야기하면, ‘성서는 믿음의 기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내용에 따라서, 역사서, 예언서, 묵시록, 복음서, 서간서, 교훈서, 시편 분야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이야기만을 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자신들에 관한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하느님의 뜻과 비교하고 그 반성들을 기록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세상에 남겨있는 그 어떤 역사서보다도 많이 읽히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비교하는 것은 성서에 비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55. 이 성서는 분명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언어로 쓰여졌습니다. 최초의 기록단계는 이스라엘 말인 ‘히브리어’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이 국가가 시간이 흐르면서 멸망하고, 그 민족의 백성들은 세계의 여러 곳으로 흩어집니다. 유배이후에는 다시 잠시 모이기도 합니다만, 그네들 민족이 분산되는 결과에 따라 기원 전 300년경에는 그리스말인 ‘희랍어’로도 번역이 됩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히브리어로 쓰여졌던 성서가 그리스말로 번역되는데는 72명의 학자들이 72일간에 걸쳐서 번역했다고 하여 이것을 약칭하여 ‘70인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70인 역(譯)은 구약성서의 제 1 경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개신교에서는 제 1 경전만을 구약성서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천주교에서는 훗날 희랍어로 쓰여진 7권까지를 포함하여 성서로 인정합니다. 훗날 희랍어로 쓰여진 구약성서는 제 2 경전이라고 분류하여 부릅니다. 간단히 성서는 이렇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제 1경전=39권, 제 2 경전(외경)=7권, 합계 46권이 구약, 신약은 27권으로 구별합니다.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해서 구별합니다.
56. 이렇게 사람의 언어로 쓰여졌지만, 교회에서 이야기할 때 이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靈感 : INSPIRATION)'을 받아서 기록되었다고 규정합니다. 순수한 인간의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우리가 거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하느님의 힘, 영감은 단순히 인간을 그저 ’로보트‘로 만든 것은 아니라는 것이 영감을 이해하는 참의미가 됩니다. 인간의 말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57. 이 성서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많은 논란거리였습니다. 성서를 누가 해석할 수 있고, 누가 읽을 수 있는지 하는 문제가 커다란 논란거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가톨릭에서 일반 신자들이 성서를 쉽게, 자신들의 언어로 대할 수 있도록 한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잘못 해석되고 그 가르침이 잘못 적용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오류가 컸음을 알아보고 그랬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에 비교해서 가톨릭의 미사에서 ‘말씀의 전례’ 부분만을 강조하는 개신교에서는 일찍부터 성서를 자의적으로 번역해왔고 마음대로 적용시켜 왔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이 완벽하게 해석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성서를 해석하기 시작하고 알아들으려고 노력한 것이 약 2000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지금도 새롭게 번역되고 새롭게 해석을 시도하는 글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성서를 해석하고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권리와 책임은 ‘교회의 교도권(敎道權)’에만 인정돼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성서를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뜻은 하느님의 뜻을 정확히 알아들으려면 교회가 제시하는 가르침과 규정을 준수하면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58. 우리가 성서를 대하는 자세도 거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구원역사를 담고 있는 것,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에서 빗나가기만 하는 인간들을 향하여 당신의 뜻을 전하고 있는 것이 성서라고 생각할 때, 우리가 성서를 올바로 대하는 방법은 그 성서를 통하여 하느님을 대하듯이, 하느님을 만나듯이, 하느님의 말씀을 내가 지금 이 순간 다시 듣는 마음과 자세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아들을 때 인간에게는 구원이라는 선물과 삶을 바르게 이끌어갈 수 있는 지혜를 거기에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