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이 자식에게 물려준 유산

2009. 3. 30. 오전 6:09:19

글자

           다산의 생가인 여유당(與猶堂)은 현재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馬峴)마을에 있다.
           당시는 광주군 초부방 마현리였는데 지금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75의 1번지로 변경되어 있다.
           여유당은 지금은 팔당 호숫가의 외딴 집으로 남아 있지만 다산 당년에는 그윽한 강마을의 저택이었다.
           이곳을 그 옛날에는 소내(苕川) 또는 두릉(杜陵)이라고 했고 다산의 5대조부터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
           유적지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다산의 생가인 여유당이 고졸한 자태로 은근히 나그네를 유혹하지만
           정작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는 곳은 여유당의 오른편을 돌아 뒤편 동산의 다산묘소이다. 다산은 여기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 집 뒷산에 묻혔다. 모진 비바람에도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박한 護石의
           보호아래 부인 풍산 홍씨와 함께 조용히 누워 있는 다산 선생은 여유당을 휘감고 도는 한강의 여유로운
           흐름을 관망한다.
 
 
 

   다산의 청렴 정신은 자신에게 그리고 자식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격했다. 항상 검소한

   생활을 강조했고, 재물은 베풀었을 때 그 가치가 있음을 역설했다.


   무릇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 두는 방법은 남에게 베풀어버리는 방법보다 더 좋은 게 없다.

   베풀어버리면 도적에게 빼앗길 걱정이 없고 불이 나서 타버릴 걱정이 없고 소나 말로

   운반  하는 수고도 없다.

   그리하여 자기가 죽은 후 꽃다운 이름을 천 년 뒤까지 남길 수도 있어 자기 몸에 늘

   재화를  지니고 다니는 격이니 세상에 이처럼 큰 이익이 있겠는가? 더욱 꽉 쥐면 쥘수록

   더욱 미끄러운 게 재물이니 재물이야말로 메기 같은 물고기라고나 할까?

 


   다산이 재물을 모았을 리 없다. 자식들에게 남길 변변한 유산이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다산은 두 아들에게 놀라운 유산을 남긴다.


   내가 벼슬하여 너희들에게 물려 줄 밭뙈기 정도도 장만하지 못했으니 오직 정신적인

   부적  두 글자를 마음에 지녀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말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옮긴 글)

 

   회개(정화)와 보속(자선)을 실천하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은총의 사순시기에

   우리는 자식에게 무엇을 물려 줄 것인지? 우리의 삶을 잠시 돌아봅니다.

 

 

 

 

댓글 2

  • 2009년 4월 1일 오전 5:12

    <center><img src=http://club.catholic.or.kr/capsule/blog/readImg.asp?userid=817486&filenm=14%2Ejpg&directory=D%3A%5C%BF%A3%C3%A4%B3%CE%C0%DB%BE%F7%5CGNArchives%5Ccapsule%5C8%5C1%5C817486%5CLinkImg%5C width=350>

  • 2009년 4월 9일 오후 12:32

    바실리아 형님 만나서 반가워요 갑자기 노원까페가 환하게 피어 있는 꽃 처럼 봄냄새가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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