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춥고 시리던 세월이 다 지나가고
목련의 가슴 깊은 곳까지 봄이 들어섰나 보다.
겨우내 찬 바람에 씻긴 거무튀튀한 가지 끝에서는
애기 젖살 같은 하얀 빛의 꽃송이가
보송보송한 솜털에 싸인 두툼한 각질을 열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픔 속에 꿈꾸던 따스하고 눈부신 세상을 마주하는
참으로 눈물겨운 환희의 순간이다.
아직은 목련 나뭇가지 사이를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봄바람이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 텅 빈 여백이
오히려 꽃봉오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어릴 적부터 자주 접해보지 못해서인지
봄마다 마주하는 목련꽃은 지금도 늘 생경하다.
시골 동네 골목에 노랗게 피어있는 개나리나
꽃밭 한쪽에서 분홍빛 꽃으로 환하게 봄을 알리던 진달래는
봄이 오면 우리와 늘 함께 살던 꽃이었다.
그러나 목련꽃은 그렇지 못했다.
먼 발치에서 기와집 울타리 너머로 볼 수 있고
국민학교 교실 앞 화단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아주 드문 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친근감도 덜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 꽃을 보는 눈길이 다른 꽃과 비교해도 유별나다.
활짝 핀 목련꽃보다 모자라는
탐스러운 꽃봉오리가 숨 멎도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점도 그렇고
그와는 반대로 그 백옥 같이 하얀 꽃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누렇게 빛바랜 보기 흉한 모습으로 져야 하는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점도 그렇다.
꽃샘 추위로 잔뜩 웅크리고 있던 목련꽃,
그 눈부신 꽃을 바라보니
선입견인지는 모르지만
말 건네기조차 어렵게 높은 가지 끝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고고한 모습이
땅에 뒹굴던 동네 개구쟁이 같은 개나리꽃과
얼굴 붉히며 비켜가는 시골처녀 같은 진달래꽃과는
풍기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호불호의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개나리나 진달래 그 꽃들의 해맑은 순수함과는 달리
비단결 같이 부드러운 꽃잎의 질감이나
정성들여 빚어낸 티없이 맑은 하얀 빛깔
그리고 절제하고 있는 듯한 고운 자태에
가까이 다가설 수 없을 것 같은 고상함이 있으며
지체 높은 집안의 귀부인 같은 기품이 엿보인다.
아직 철이 이른지
짝을 찾는 새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수락산에도 중랑천변에도
여기저기 사방에서 봄을 맞이하는 꽃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제 시절을 만난 꽃들이
그 동안 깊이 간직해온 꿈들을 이제 하늘 높이 마음껏 펼치리라.
개나리꽃이 노랗게 핀 울타리를 따라 걷다가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는 목련꽃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혼자 있어도 도리에 맞지않는 몸가짐이나 언행을 삼가한다는
愼獨이란 말이 떠오른다.
집 앞의
양지 바른 곳에 외롭게 서 있는 목련도
그 봄의 열정 속으로 조용히 빠져들고 있다.
반짝이는 햇살이 가득한 화창한 봄날이다.
이상원이레네오.
목련꽃.
2009. 3. 28. 오후 3: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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