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오는 길목에서.
겨우내 움츠렸던 산수유 나뭇가지에
작은 꽃 봉오리가 하나 둘 터지고 있다.
가느다란 노오란 빛이 참으로 맑고 밝다.
기인 긴 기다림의 끝에서
수액처럼 차오르는 삶의 희열로
연두빛 잎보다 먼저 봄을 곱게 채색하는 산수유 꽃이다.
멀리서 그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겨울산의 침묵처럼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다.
고향에도 이 봄이 왔을까.
아마도 아버지 계신 청산의 진달래는
제 수줍은 가슴을 분홍빛으로 물들일 준비를 하고
산 벚나무도 제 삶을 노래할 꽃망울을 만들고 있을 것이며
을씨년스런 고향 강변에서도
살랑대는 봄바람이 깊이 잠든 갈대를 흔들어 깨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홀로 계신 어머니는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앞산 위의 파란 하늘에
자식들 얼굴을 하나씩 그려보고 있으리라.
나이가 들어서인지
매년 느낌이 다르게 찾아오는 봄에는
화사한 꽃 뿐만 아니라
잊혀진 그리움도 함께 피어나는 듯하다.
기다리던 봄,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늘 길게 느껴지듯
크게 춥지 않았던 지난 겨울이었지만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매우 길었던 날들이었다.
그 겨울을 지나 봄이 찾아왔다는 것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이가 흔들리는
기실 그 만큼의 세월이 흘러갔음에 다름아니지만
해놓은 일도 없어 아쉬움만 남는
나이듦에도 불구하고
밤새 꽃 봉오리 톡톡 터뜨리는
이 봄을 큰 기쁨으로 맞이하려 한다.
아무리 고되고 아파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길거리의 밝아진 사람들의 옷차림과
개나리 울타리에 묻어나는 봄 향기들
그리고 따스한 햇살이 분수처럼 쏟아지는
그 봄 오는 길목에 서서,
굳게 닫힌 창문 열어 봄 맞이 대청소하듯
미처 털어내지 못한 먼지처럼
내 안에 쌓여있는 칙칙하고 어두운 말들을 걷어내어
눈부신 봄 햇살이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비춰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 노오란 꽃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春來不似春이 아닌 진정한 그 봄 햇살을.
이상원이레네오.
봄 오는 길목에서.
2009. 3. 21. 오후 1: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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