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오 7,13~14)
우리들 대부분은 삶 안에서 좁고 작은 길 보다는 크고 넓은 길을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멸망의 길과 생명의 길로 나누어 말씀 하셨듯이 우리 삶의 길은
언제나 두 갈래 길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는 생명에 이르는 좁은 문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 좁은 문은 작음의 신비를 이야기 합니다.
작음의 신비 몇가지 일례를 들어봅니다.
TV 아침 마당에서 맛벌이 부부가 출현하여 서로의 고충을 이야기합니다.
남편이 퇴근하면 양말을 목욕탕에 매번 던져 놓자 부인은 어느날 쓰레기통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그뒤로 남편은 귀찮고 힘들지만 양말을 빨아놓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부인의 합리적,이성적 방법을 보게 되며, 남편이 양말을 목욕탕에 던지는
행위는 넓고 쉬운 행위지만, 힘들고 귀찮게 양말을 빨아놓는 행위는 좁은문에 비유됩니다.
성당이나 건물의 비유를 들어보면 천정을 지탱하여 주는 기둥의 역할은 작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둥이 천장을 떠바치어 우리가 미사를 보고, 건물 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기둥을 통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작음의 신비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위장에 좋다고 갈아먹는 마의 예를 들어 봅니다.
마의 겉은 색깔이 연한 흙 색깔에 가깝지만 속은 하얗습니다. 얇은 껍질을 사이로
안과 밖이 완전히 다른 것 안에서 작음의 신비를 보게 됩니다.
제가 외국에서 공부 하던중 아버지의 위급한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두달간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위하여 언제나 애쓰시던 아버지께서
폐렴으로 고통을 겪으시다 결국 돌아 가셨지만, 매일같이 아버지 병 수발을
하면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깨닫게 되었고, 아버지와의 영적인 관계 안에서 기쁘게
아버지를 돌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의 사례 안에서 작음의 신비를 보게 됩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하느님의 신비를 보지 못함을 죄로 보았습니다
작음의 신비는 삼라만상 자연의 세계 안에서도 널려 있습니다.
우리가 좁은 문을 바라볼 수 있는 눈만 있다면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을 겪으시고 부활 하셨듯이 우리도 삶 안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삶의 고통, 고난이 신비체의 양념(재료)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 안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은혜로운
사순절 되시길 기원합니다.
- 고계영(바오로) 신부님 피정 강의 중에서 -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