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창세기 3,9~13)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따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열매를 따먹고 나서 여자는 뱀이 꾀어서 따먹었다고
변명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계십니다.
하나는 생명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죽음의 길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짓고나서 진실로 뉘우치고 방향을
돌리면 생명의 길이지만, 자신의 죄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고 변명하며 다른이에게
책임을 전가 시키려 한다면 그사람은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창세기의 말씀 안에서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의지 안에서 어느 길을 걷고 있는지?
우리는 세상 살아가면서 욕심을 지닐 수는 있습니다. 욕심은 때로는 자기발전의 계기가
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할 부분은 탐욕입니다. 탐욕은 우리의 삶을
죽음의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한예로 가정안에서 내가 능력이 있다하여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가족 구성원을 등한시 한다면 그 가정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삶의 행복은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남용하지 않고 절제하며 탐욕을 갖지 않음에 있습니다.
이길은 나를 살리는 길이며, 남을 살리는 생명의 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죽음의 길을 뒤로하고 생명의 길을 향하여 머나먼 삶의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길을 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이성운 미카엘 신부님의 강론말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