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지나간다

2008. 9. 9. 오전 7:19:28

글자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해가 거듭할수록 여름 무더위는 맹위를 떨친다. 따라서 나같이 더위를 못견뎌하는
 
하는 사람에게는 여름이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하루 종일 뜨거운 태양빛으로
 
달구어진 수도원은 말 그대로 불가마였다. 그래서 비지땀을 흘리며 부체를 달고 살
 
았다. 신선한 바람을 공급해주는 부체는 여름동안 나에게 적잖은 위안이 되어주었
 
지만 더위가 절정에 치달을 때는 부체도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런 날이 계속되어 하루 이틀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갈수록 몸은 만신창이가 되
 
어갔고, 잠 못 이루는 밤은 결국 무서움이 되어 찾아왔다.
 
그때 내 마음속에 청량제와 같은 한 말씀이 찾아 왔으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나에게 커다란 위안
 
과 평화를 주는 기쁜 소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8월 15일 성모승천 축일이 지나자
 
더위는 한풀 꺾여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서늘해졌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당신
 
의 시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그 무엇에도 너 마음 설레지 말라
 
그 무엇도 너 무서워하지 말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임만이 가시지 않나니
 
 인내함이 모두를 얻느니라
 
 임을 모시는 이
 
아쉬울 무엇이 없나니
 
 임 하나시면 흐뭇할 따름이니라.


 사람들은 인생길에서 끊임없이 좌절하고 또 끊임없이 일어선다.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시상대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더없이 행복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들이 그렇
 
게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수없이 좌절하고 수없이 일어서며, 인고
 
의 그림자를 거둬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행로에 수없이 찾아오는
 
고난 앞에서 꺾이지 않고 끊임없이 인내하며, 자신이 달려야할 길을 최선을 다해서
 
다 달렸기 때문에 그들의 기쁨은 그들에게만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올림픽의 어느 경기가 그렇지 않았을까마는 8전 전승으로 쿠바와 결승전을 치루 
 
었던 야구 경기는 참으로 환상의 드라마였다. 홈런 3방을 주고받으며 9회초까지 한국은 쿠바를
 
3대 2라는 조금은 불안한 점수 차로 이기고 있었다. 그런데 9회말 마지막 공격을 하던 쿠바팀
 
은 순식간에 1사에 말루베이스를 채웠다. 안타 하나면 순서가 바뀔 수 있는 참으로 절박한 상
 
황이었다. 이렇게 서로가 극도로 애민해져 있던 순간에 한국 야구팀의 포수였던 강민호 선수는
 
심판에게 “스트럭을 왜 볼로 처리하느냐?”고 항의를 했다. 그때 심판은 강민호 선수를 불손
 
하게 보았던지 즉각  퇴장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부상중이던 진갑용 선수가 포수 마스크를 썼
 
고, 투수는 유현진 선수에서 정대현 선수로 바뀌었다.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다. 위급한 상황
 
에서 마운드에 오른 정대현 선수는 그런 와중에도 침착하게 2개의 스트럭을 던지고 세 번째 공
 
을 낮게 던졌는데 상대선수 5번 타자 구리엘은 그만 땅볼을 쳤다. 그러자 유격수 박진만은 재
 
빨리 공을 잡아 2루수 고영민에게 던졌고, 고영민은 다시 1루수 이승엽에게 던져서 더블플레이
 
가 되는 순간 온 국민은 열렬히 환호하였다. 한국팀이 극적으로 우승하는 순간이었고 어렵게
 
이긴 만큼 감동도 컸다. 운동에는 문외한인 나이지만 그날 밤은 벅찬 감동 때문이었던지 마음
 
이 설래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지나갔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내 마음속에 불타올랐
 
던 어제의 감동은 이제 많이 누구러져 있었다. 벌써 시간이 흐르고 나의 마음은 일
 
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올림픽 잔치는 모두 끝났고, 선수도 관중도 모두 제자
 
리로 돌아가서 각자의 소임에 충실해야할 시간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고통의 순간
 
도 많지만 기쁘고 즐거운 순간도 많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지나가고 순환하고
 
반복할 뿐이다. 우리의 인생이 그 가운데에 있다. 그러니 자유롭게 살고 싶으면 어
 
느 것에나 집착을 보이면 안 된다. 오는 것을 맞이하고 가는 것을 보내주면 그뿐인
 
것이다.
 

 삶이 힘들어서 수도원에 찾아와 간혹 상담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털어 놓는 이
 
야기를 듣다보면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경우가 많다. 세상 사람이 뉘라서 상처 없고,
 
그늘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다만 상처가 오래 머물지 않게 하는 것 외에 무슨 다
 
른 도리가 있겠는가?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라고 강요하거나 윽박지르는 사람도 없
 
는데, 우리는 왜 상처를 끌어않고 앉아서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이제
 
그만 상처를 내려 놓아야할 때가 되었다.
 

 흐르는 강물을 보라. 지금 흐르는 물은 어제의 물이 아니다. 물이 고여 있으면 썩
 
듯이 사람이 상처에 붙잡혀 있으면 마음이 황폐해지고 육신이 메말라 간다. 강물
 
따라 세월도 흘러가고, 고통도 슬픔도, 기쁨도 즐거움도 모두가 흘러가는데 왜 나
 
는 상처를 붙잡고 놓아주지 못하는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상처
 
를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고 하느님이 내안에 살 수 있다.
 

 공자는 당신이 살던 세상에 한줄기 빛과 한 줄기의 물을 공급해주기 위해 오랜 세
 
월을 떠돌아다니며 주유천하를 해야만 했다. 그는 어느 날 문득 강가에 서서 이렇
 
게 탄식 했다고 한다. “가는 것이 흐르는 물과 같다. 밤낮없이 쉬지 않는구나!"
 
(『논어』,「자한」16)          오수록 프란치스코(수사. 작은형제회)
 
                                    

댓글 1

  • 2008년 9월 9일 오후 3:07

    좋은글 감사합니다.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날 되시기를~~~

좋은글나누기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