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구약성서에 이미 예언된 메시야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이다. 하느님의 자녀는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를 사랑한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즉, 신앙인은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그 계명은 결코 무겁지 않다(마태 11,30).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4,19) 우리로 하여금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설사 우리가 사랑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지 못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은총으로 용서해주시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명을 지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과 교회를 적대하는 세상과의 투쟁에서 승리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고(요한16,33; 19,30),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는 힘과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요한 16,33)를 우리가 믿고 고백할 때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세상을 이긴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창조하시되, 당신의 모습을 닮게 창조하셨다. 사람은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본질인 사랑을 마음속에 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며 살도록 창조되었다. 사랑은 삶의 본질이며, 우리는 그 사랑을 행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참된 삶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사랑이 없는 듯이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로는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갈라 5,17)라고 말한다. 인간의 육정이 성령을 거스르기 때문에 사랑을 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육정에 사로잡힌 사람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이익만을 구하며, 육정을 채우려고만 한다. 그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기에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한다고 말할지라도, 그 사랑은 자신의 육정과 이익을 구하는 것일 뿐 결코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듯이 느껴진다. “육정이 빚어내는 일은 명백하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이다.”(갈라 5,17.19-21) 이 안에는 사랑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믿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주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며,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습대로 돌려놓으시어, 우리로 하여금 사랑의 삶을 살도록 하신다. 또한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이다.”(갈라 5,22-23)
그러므로 주님을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자. 당신 외아들까지 바치는 그 깊은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자. 그리하여 우리 안에 성령께서 머무르시고,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를 가슴에 담아 사랑과 기쁨, 평화와 친절, 진실과 온유의 삶을 살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