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소중한 것(1/5)

2005. 1. 6. 오후 7: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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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5일 주님 공현 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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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요한 1서 4,11-18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게 되었으니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심판 날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복음 마르꼬 6,45-52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후,]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 베싸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혼자서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그들을 보내시고 나서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셨다.
날이 저물었을 때에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고 예수께서는 혼자 육지에 계셨다. 제자들은 마침 역풍을 만나 배를 젓느라고 몹시 애를 쓰고 있었다.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 쪽으로 오시다가 그들 곁을 지나쳐 가시려고 하였다. 그것은 새벽 네 시쯤이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줄 알고 비명을 질렀다. 그를 보고 모두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곧 제자들을 향하여 "나다. 겁내지 말고 안심하여라." 하시며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마음이 무디어서 군중에게 빵을 먹이신 기적도 아직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저는 요즘 이냐시오 영신수련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1시에 있는 성지 미사가 끝난 뒤에는 곧바로 신학교로 향합니다. 그리고 오후부터 저녁까지 신학교에서 영신수련을 하고 있는 신학생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학생들과 면담을 하고 또한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 중에 힘든 것은 거의 없는데요. 정말로 힘든 것이 하나 생겼답니다. 그것은 성체조배실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니, 어떻게 성체조배실에서 기도하는 것을 힘들어해하지? 신부 맞아?’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기도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성체조배실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다는 것입니다. 즉, 성체조배실의 온도가 너무나 높아서 견디기가 힘들더군요.

사실 지금 현재(새벽 3시) 제 방의 온도는 영상 7도입니다. 약간 쌀쌀하지요. 하지만 평소에도 이 정도의 온도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못 견딜 정도로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히려 따뜻한 곳에서는 생활하기 힘들어하는 체질이 되고 말았네요.

물론 작년 초에 지금 있는 갑곶 성지에 왔을 때, 이 정도의 온도가 너무나 추워서 제발 따뜻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추운 방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마음도 가득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이렇게 추운 방을 가장 사랑하는 제가 되었네요.

작년 초만 해도 추운 것이 저의 분심꺼리였는데요, 이제는 반대로 그토록 원했던 따뜻한 것이 저의 분심꺼리가 되더군요. 그렇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꼭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지는 아픔과 상처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안일한 마음을 품게 만드는 편하고 안락한 생활이 오히려 내게 주어지는 또 다른 고통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이처럼 어떤 것이 내게 더 유익한 것인지를 제대로 판단내리기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인 것이지요. 그런데도 고정관념을 가지고 인간적인 기준으로 판단을 내렸던 적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리고 그 인간적인 고정관념이 정말로 중요한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왜 모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는 “유령이다”라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토록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그들이, 또한 예수님과 몇 날 며칠을 함께했던 그들이 스승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를 못하고 겁에 질려서 소리를 지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습니다. 이 고정관념으로 인해서 역풍을 만나서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보고서 바쁘게 물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이는 것이지요.

지금 나를 어리석음으로 이끄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특히 내게 다가오는 고통과 힘듬을 나의 조그만 잣대로 주님을 판단하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고정관념으로 주님을 잘못보고 소리를 지른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주님께 원망하지 맙시다.



정말 소중한 것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숫자로 셈할 수도 없고 영원히 우리 곁에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마치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라고 설파했던 미국의 유명한 노만 필 박사에게 사업에 실패한 초로의 남자가 찾아온 적이 있다.

그는 '나이 50에 있는 자산을 다 날려버렸기 때문에 살 희망이 전혀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묵묵히 듣고 있던 필 박사는 종이와 연필을 가져와서 아직도 남아 있는 재산을 찾아보자고 했다. 적을 재산이 전혀 없다는 실패한 사업가에게 필 목사가 물었다.

"부인은 아직 살아계시지요?"

"네"

"움직일 건강은 있지요?"...

한참을 적어나가던 필목사가 종이에 쓴 것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①훌륭한 아내②사랑스러운 자식들 셋③의리 있는 친구④정직⑤양호한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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