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인생의 바다(1/5)

2005. 1. 6. 오후 6:59:18

글자
‘누구든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으로 남을 판단하는 생각을 품거나 나를 스스로 판단하여 비관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오히려 이 말씀은 오늘 복음으로 완성되는 희망의 편지글임을 새겨봅시다.
어떤 이들은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나 같은 인간은 구제불능이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제자들이 탄 배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하늘나라로 가는 삶의 여정을 뜻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늘나라를 배우는 여정에는 이미 올랐지만 하늘나라의 신비,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히 젖어드는데는 아직 다다르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가 흔히 범하는 결정적인 실수와 하느님의 사랑이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시라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도 흔히 범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성서를 통해서 이미 알게된 추상적인 잣대로 그에 못 미치는 사람들, 부족한 사람들, 잘못하는 사람들,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심판하는 실수...
오늘 듣게 되는 제자들의 부족함을 보고서 우리는 그 당시의 제자들은 물론 지금 내 눈에 비치는 모든 사람들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생각을 지적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성서 이곳 저곳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데,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주겠다고 하기 전에 먼저 네 눈에 든 들보부터 빼내어라.’ ‘봉사가 봉사를 인도하게 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성서를 접하는 순간 그 말씀은 다른 이들을 향해 마구 휘두르라고 주시는 잣대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자신 안에 완성시킨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감히 하느님의 뜻으로 자신의 모든 생애를 그분께 오롯이 봉헌했다고 자신할 사람이 있습니까?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어떤 천재지변이나 전쟁의 소식들과 세상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모든 부조리함을 보고 두려움, 분노, 원망, 시기, 싸움에서 초연한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온통 하느님의 사랑에 젖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님을 참 사람이시며 참 하느님으로 온전히 고백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자신의 모든 판단과 의지와 욕구를 주님께 봉헌할 때에야 비로소 느끼는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제자들의 두려움에 떠는 모습은 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하늘나라를 향한 여정에 있는 나그네일 뿐입니다. 또한 이 여정에서 하느님께 버림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은 우리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서있느냐를 따지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다만 나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아 주시는 사랑 지극한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미 나는 구원받았다고 기쁨을 노래하는 모습도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친 나머지 자신이 마치 예수님이 된 양 다른 이들을 심판하는 사람은 오늘 선악과 열매를 따먹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아담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나는 구제불능이야 하는 사람은, 하느님은 사랑을 나에게도 공평하게 주신다는 것을 불신하며 스스로 목을 매는 오늘의 유다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은 지금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향해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저울질하며 내 앞에 서 계시는 심판주이기보다는 내가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애원하시며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멘.

지좌본당 하상범(바르나바)주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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