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2/31)

2004. 12. 31. 오전 10:14:52

글자

2004년 12월 31일 성탄 팔일 축제 내 7일
재생 클릭!!


제1독서 요한 1서 2,18-21
어린 자녀들이여, 마지막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적이 오리라는 말을 들어 왔는데 벌써 그리스도의 적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때가 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자들은 본래 우리의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의 사람들이었다면 우리와 함께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그것으로 그들이 우리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거룩하신 분에게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두 참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여러분에게 편지를 써 보내는 것은 여러분이 진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고 진리로부터 거짓말이 결코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 요한 1,1-18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증언을 듣고 믿게 하려고 온 것이다. 그는 빛이 아니라 다만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 그 빛이 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느 특권을 주셨다. 그들은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치기를 "그분은 내 뒤에 오시지만 사실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 때문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분을 두고 한 말이다." 하였다.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 또 받았다. 모세에게서는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





지금 제 방에는 난로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일명 화목 난로라고 하는데요. 즉, 나무를 연료로 쓰는 난로입니다. 이 앞에 있으면 얼마나 분위기가 좋은지 모릅니다. 나무 타는 냄새와 함께, 나무가 타면서 나는 소리를 들으면서 분위기를 한껏 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고구마나 감자도 구워 먹을 수 있습니다(학창시절에 했었던, 난로위에 도시락을 얹어서 먹는 것이 올 겨울의 목표인데 아직도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난로를 피우고 있으면 상당히 훈훈합니다. 또한 비싼 연료가 아닌, 버려진 나무들을 주워서 쓰고 있으니 경제적으로도 유익합니다.

그런데 단점은 없을까요? 단 하나의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난로에 넣을 수 있는 크기로 나무를 잘라야 한다는, 즉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톱질은 물론 도끼질까지 해야지 따뜻한 겨울밤을 방에서 보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도 어제부터는 일이 훨씬 쉬워졌답니다. 사실 요 며칠 동안은 성지의 엔진 톱이 고장 나서 직접 톱질을 해야만 했었거든요. 하지만 어제 전기톱을 하나 구입을 해서 손쉽게 나무를 자를 수 있었고, 그래서 상당히 많은 나무들을 잘라놓을 수 있었습니다.

많이 쌓여져 있는 이 나무들을 보면서 무척이나 흐뭇하더군요. 그저께만 해도 나무를 자르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을 해야 겨우 하루정도만 따뜻하게 보낼 수가 있는데, 어제는 전기톱 하나를 통해서 세 배 이상의 작업을 해 놓으니 얼마나 기쁘던지요.

바로 전기톱 하나를 통해서 이렇게 편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 싶네요. 즉, 주님께 대한 믿음 하나만을 통해서 편하게 그리고 기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믿음이 없어서 스스로 어렵게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오늘은 12월 31일. 2004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 2004년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우리들은 내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주님께서 주신 이 멋진 세상을 얼마나 충실하게 보내면서 기쁘고 편안하게 잘 보냈는가를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 복음사가는 한 처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요. 이 한 해의 마지막에 선 지금, 한 처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한 처음과 그 끝은 매우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네요.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면 언제나 시작과 마침은 항상 같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이 지금 자기가 하고 있었던 프로젝트를 모두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만약 이런 사람이 우리 주위에 있으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마 “제 왜 이래? 뭐 잘못 먹었나?” 라는 말을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약간의 휴식은 있을 수 있겠지만, 영원한 휴식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시작과 마침이 함께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주님께서는 더욱 더 열심히 살라는 의미로 2004년의 마지막 날에 오늘 복음의 말씀, 즉 한 처음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더욱 더 기쁜 2005년을 맞이하기 위해 잘 정리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 해의 마무리를 멋지게 해봅시다.



마음으로 가꾸는 얼굴('좋은 생각' 중에서)

가면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평생 해 온 일을 그만 두었다. 그가 만든 가면이 사람들 얼굴에 붙어 진짜 얼굴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먼 나라에까지 소문이 퍼지자 오히려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모두들 얼굴을 더 아름답게 바꾸려는 사람들 이었다. 그들은 돈은 원하는 대로 줄 테니 근사한 가면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임금이 그 소문을 듣고 그를 궁으로 불렀다

"내게 위엄 있는 가면을 만들어 달라"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임금님은 이미 가면을 쓰고 계십니다. 상황에 따라 마음과는 반대로 얼굴 표정을 짓지 않으십니까?"

"뭐라고? 내가 가면을 쓰고 있다고?"

처음에 임금은 버럭 화를 냈지만 껄껄 웃으며 대꾸했다.

"네 말이 옳다. 그렇다면 너는 누구나 마음에 지닌 걸 파는 사기꾼이구나!"

가면 기술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가면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가면을 쓰고 싶다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삼년을 산 뒤 다시 오라고 말합니다.. 삼년 뒤 그 사람이 다시 찾아오면 저는 이미 아름다워진 얼굴에 가면 씌우는 흉내만 냅니다. 그리고 꼭 한마디 덧붙이죠. '조금이라도 나쁜 마음이 있으면 가면을 쓰기전보다 더 흉하게 변합니다.'하고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묵상 강론 매일미사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