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Ⅰ독서: 집회 3,3-7.14-17ㄱ. Ⅱ독서: 골로 3,12-21.
복음: 마태 2,13-15.19-23.
†찬미예수님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성가정 축일은 나자렛 성가정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 신심을 본받기 위해 교회가 제정한 축일로서, 1921년에 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969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탄 대축일 바로 다음 주일을 성가정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모두 가정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1독서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2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께서 부부간의 관계에 대해 서로 해야 할 바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나자렛 성가정이 어땠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성가정이라하면, 뭔가 사랑이 넘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여야 할 텐데,
오늘 복음의 내용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가정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한마디로 제목을 붙여본다면 성가정 피난사입니다. 성가정 수난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를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나자렛의 성가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가정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거리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한 집안이 망해가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됩니다.
성모님의 입장에서 나자렛 성가정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을 잉태할 것이라고 예고한 순간부터 성모님의 삶은 편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성모님은 처녀가 임신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겨우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삭이 다 되었을 때는 호적등록 때문에 고향으로 가다가 길거리에서 겨우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기를 낳아 떳떳하게 살만하니까, 헤로데가 이스라엘 안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합니다. 이에 아이를 낳자마자 이집트로 피난을 가는 운명에 처합니다. 이제 박해도 끝나고 다시 고향에 돌아온 성모님, 좀 살만해지니까 12살 된 소년 예수는 가출을 해 부모님의 마음을 애태우게 합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요셉성인을 먼저 떠나보내게 되고 과부의 삶을 살게 됩니다. 과부로서 사내아이를 키우는 일이 쉬울리 없습니다. 여성의 사회생활이 막혀 있던 이스라엘에서 그녀는 먹고 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 나이 서른, 사회적으로 어른인 아들이 과부인 어머니를 부양했다면 키운 보람이라도 있었을 것을 아들은 그해에 완전히 집을 나가버립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직후부터, 성모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 소문에 아들을 찾아 나선 성모님은 예수님으로부터 누가 내 어머니이며 형제들이냐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3년 후 성모님께서는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됩니다. 자기가 낳은 아들이 자기보다 먼저 죽는 모습을 말입니다.
이런 기구한 팔자의 여인은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려고 해도 찾기 어려울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정을 우리는 성가정이라고 하며 오늘 축일을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을 던져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러한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부르며 공경을 하겠습니까?
그것은 성모님이나 요셉성인이나 예수님이나 언제나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성당에 다니기 때문에 가정이 화목해 지는 것이 아니라 성당에 다님으로써, 그리고 주님을 알아보고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것이 성가정인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가정의 화목과 평화를 원하지만,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정의 위기라는 말을 신문이나 방송매체를 통해서 자주 듣게 되는 것은 그만큼 흔들리고 깨지는 가정이 많다는 말일 것입니다. 가정의 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광범위해지는 상황 앞에서 모두들 '큰일이다'라고 걱정을 하고, 또 전문가 집단에서는 이런 저런 현실 분석을 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나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10여 여 년 전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평균 이혼율은 30퍼센트를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교회나 성당에 나가는 사람의 경우에는 51명 중 한 명이 이혼을 하였고, 매일 가정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1,011명 중 한 명이 이혼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통계는 부부와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고 하겠습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하느님 앞에서 먼저 자신을 살펴보게 됩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내가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자식으로서 해야 할 본분을 다했는가? 나를 앞세우기 전에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는가를 하느님 앞에서 솔직히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에 한번, 적어도 일주일에 두, 세 번 만이라도 이렇게 자신을 반성해보면, 가정생활이 원만하게 될 것입니다. 부부싸움의 원인은 대개 상대편을 자신의 생각과 바램에 꿰어 맞추려는 데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리 부부라 하더라도 상대편은 나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대를 억지로 내게 맞추려 하니까 의견다툼이 날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기도를 통해서 이런 것을 반성하고 고쳐나가려 한다면, 부부싸움의 원인은 자연히 없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가정 기도는 부부와 가정의 화목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성가정 축일을 지내는 이번 주간은 가정성화 주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기도 바치는 기회를 자주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부부 간에 다툼이 있었다고 해도, 함께 앉아서 남편과 아내가 부부의 기도를 바친다면, 양심이 폭폭 찔려서 좀 더 빨리 화해하지 않을까요? 또 부모 자식 간에 불편한 일이 있었다면, 부모가 자식 앞에서 그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자식이 부모 앞에서 부모를 위한 기도를 바친다면, 거북살스러워서라도 서로 간에 얼른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바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자기 건강을 위해서 자기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밤잠을 안자고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부부와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더 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사실 그렇게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하루에 단 15분이라도 기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멘!
※ 본당 홈페이지 행당동사랑방에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