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림 제4주간 화요일 (2004-12-21) |
| 독서 : 아가 2,8-14 또는 스바 3,14-17 복음 : 루가 1,39-45 |
며칠 뒤에 |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서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
| ◆처녀로서의 삶,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한 여성의 삶을 내려놓고 주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고백한 이후 며칠간. 그 며칠간이 참 궁금했다.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니, 누가 알게 될 경우에 당할 일들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자신과 정혼한 요셉의 반응이 궁금하지는 않았을까? 복음은 침묵한다. 다만 며칠 뒤의 그녀의 행적만을 말해줄 뿐이다. 마리아는 자기의 삶의 자리를 떠나 엘리사벳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은 도울 줄 안다.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은 사랑할 줄 안다. 지금 자신이 하느님의 종으로 살기 위해 어디에 있어야 할지 아는 여인 마리아의 지혜를 만난다. 두 여인이 만나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답고 가슴 따스해진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 엄청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하느님의 뜻과 하나 됨을 선택한 여인들은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 복된 여인들을 보는 내 안에 슬픔이 올라온다. 결혼하지 않은 채 나이 마흔을 훌쩍 뛰어넘어 오십을 바라보는 길에 들어서 있는 내가 보여서일까? 아직도 몸으로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나를 마리아의 태중에 계신 주님이 바라보신다. “네가 내 눈동자 안에 있듯, 나 네 안에 있는데….” 아, 주님이 내 안에 계셨습니다. 내가 알지 못함은 처녀로 있고 싶은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담보로 처녀로 있고 싶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종으로 나 있을 때, 이미 내 안에 잉태되어 계심을 믿습니다. 아멘. |
| 박후임 목사(새터 교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