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2/21)

2004. 12. 21. 오전 9: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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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1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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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아가 2,18-24
사랑하는 이의 소리, 산 너머, 언덕 너머 노루같이, 날랜 사슴같이 껑충껑충 뛰어오는 소리. 담 밖에 서서 창 틈으로 기웃거리며, 살창 틈으로 훔쳐보며 나의 임이 속삭이는 소리.
"나의 귀여운 이여, 어서 일어나오. 나의 어여쁜 이여, 이리 나와요. 자, 겨울은 지나가고 장마는 활짝 걷혔소. 산과 들엔 꽃이 피고 나무는 접붙이는 때, 비둘기 꾸르륵 우는 우리 세상이 되었소. 파란 무화과 열리고 포도꽃 향기가 풍기는 철이오.
나의 귀여운 이여, 어서 나와요. 나의 어여쁜 이여, 이리 나와요. 바위 틈에 숨은 나의 비둘기여! 벼랑에 몸을 숨긴 비둘기여, 모습 좀 보여 줘요. 목소리 좀 들려줘요. 그 고운 목소리를, 그 사랑스런 모습을."


복음 루가 1,39-45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서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계속 월요일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는데, 어제 맞이한 월요일은 올 해 중에서 가장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낮에 목욕탕을 갔습니다. 여유가 있으니까 오랫동안 목욕을 할 예정이었지요. 그런데 느낌이 이상해요. 글쎄 목욕탕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저처럼 젊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긴 생각해보니 이렇게 할아버지들만 있는 것도 당연한 것 같더군요. 그 시간에 일해야지 누가 목욕탕에서 여유 있게 때를 밀고 있겠습니까?

그래도 뻔뻔한 이 빠다킹 신부는 그 많은 할아버지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1시간 이상을 목욕탕에서 보내고 나왔답니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오늘 저녁 식사는 우아하게 좀 먹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이제까지는 혼자 식사를 하니까 설거지하기 귀찮아서 큰 접시에다가 반찬을 다 담아서 식사를 하던가, 아니면 있는 반찬들을 다 넣고 비벼 먹는 것이 보통 저의 식사 풍경이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여유도 있으니까 식사다운 식사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우선 찌개는 순두부찌개로 결정한 뒤, 그 안에 갖은 양념을 넣어서 정성껏 끓였습니다. 또한 찌개가 끓는 동안, 반찬들을 냉장고에서 꺼내어서 각기 그릇에 정성껏 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식사 준비 완료.

밥상에 찌개와 반찬들을 올려놓은 뒤에 밥을 담기위해서 밥솥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밥솥 안에는 밥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점심 때 조금 남기는 것이 아깝다고 박박 긁어서 먹은 것이 그때서야 기억나네요.

저는 부랴부랴 쌀을 씻고 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이제 밥이 다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저녁에 인터넷 방송 CJ(Cyber Jackey)를 하는데, 방송 시간이 다 된 것입니다. 결국 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반찬들을 모두 큰 그릇에 넣은 뒤에 비벼서 먹었습니다(그래도 아주 맛있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경험은 누구나 다 한번쯤은 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자기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남과의 비교를 하면서, ‘남들은 다 자기 마음먹은 대로 잘 되는데 나는 이게 뭐야?’라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남들과 나는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모든 것이 잘 되는 것 같지만, 그 사람 역시 이런 불평 섞은 말을 던지고 있거든요.

“저 사람은 하는 일마다 다 잘 될까? 부럽다…….”

남과 똑같아지려는 마음에서 우리들은 힘든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의 차이를 인정할 때 더욱 더 빨리 행복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엘리사벳과 성모님을 보십시오. 우선 엘리사벳은 분명히 성모님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접 받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성모님께 대한 깊은 존경을 표시합니다.

성모님도 마찬가지지요. 하느님의 아드님이며 메시아를 잉태하신 분이십니다. 이렇다면 교만해질 수도 있으련만, 오히려 엘리사벳을 직접 찾아가시는 겸손을 보여주십니다.

이렇게 타인을 인정하고 받아주는 마음에서 그들은 큰 기쁨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역시 이런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원망만 하기 보다는 더 좋은 쪽으로 이끌어주시는 주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면서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을 간직했으면 합니다.

이게 행복의 길이니까요…….


대접 받으려고 하지 맙시다.



좋은 욕심(‘행복한 동행’ 중에서)

‘욕심’ 이라는 단어가 ‘지나치다’는 의미일 때 욕심 중에 좋은 욕심도 있을까?

음악을 많이 듣고 싶은 욕심,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고 싶은 욕심,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은 욕심…. 희망, 지혜, 용기, 행복의 욕심….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지나치면 힘이 드니 좋은 것이라도 그것이 욕심이 되면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사랑만은 그렇지 않다.

사랑만은 아무리 지나쳐도, 욕심을 부려도 부작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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