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2/16)

2004. 12. 16. 오전 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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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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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야 54,1-10
환성을 올려라. 아기를 낳아 보지못한 여인들아! 기뻐 목청껏 소리쳐라. 산고를 겪어 본 적이 없는 여자야! 너 소박맞은 여인의 아들이, 유부녀의 아들보다 더 많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천막 칠 자리를 넓혀라. 천막 휘장을 한껏 펴라.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네가 좌우로 퍼져 나가리라. 네 후손은 뭇 민족을 거느리고, 무너졌던 도시들을 재건하리라.
두려워 말라. 네가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수줍어 말라. 다시는 창피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너는 처녀 때의 수치를 잊을 것이요, 과부 때의 창피를 결코 되씹지 아니하리라. 너의 창조주께서 너의 남편이 아니시냐?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의 구세주 아니시냐? 그분은 전 세계의 하느님이라 불리신다.
그렇다, 버림받은 여자, 가슴에 상처를 입은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조강지처는 버림받지 않는다."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잠깐 너를 내버려 두었었지만, 큰 자비를 기울여 너를 다시 거두어들이리라. 내가 분이 복받쳐, 내 얼굴을 잠깐 너에게서 숨겼었지만, 이제 영원한 사랑으로 너에게 자비를 베풀리라." 너를 건지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또다시 노아 시대에서처럼 맹세한다. 노아의 홍수가 다시는 세상을 휩쓸지 못하게 하리라고 맹세했듯이 나 이제 또다시 맹세한다. 내가 다시는 홧김에 너를 혼내 주지 아니하리라.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이 무너져도, 나의 사랑은 결코 너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주는 평화의 계약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너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복음 루가 7,24-30
예수께서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간 뒤에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었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었느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스럽게 사는 사람들은 왕궁에 있다. 그렇다면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었느냐? 예언자냐? 그렇다. 그러나 사실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았다.
성서에, '너를 보내기에 앞서 내 일꾼을 먼저 보낸다.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 놓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사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 크다."
모든 백성들은 물론 세리들까지도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으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고 자기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의 특징을 하나 고른다고 하면 아마 그 첫 번째 자리를 ‘서두름’이 차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운전하게 되다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횡단보도 앞에서 출발을 서두르는 차들을 보십시오. 신호가 바뀌자마자 앞으로 튀어 가려는 차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만약 신호가 바뀐 뒤 몇 초가 지났어도 움직이지 않으면 뒤에서 빨리 가라고 경적을 신나게 울릴 것입니다. 또한 지하철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까? 빠르게 걷는 사람은 그래도 양반입니다. 뛰어다니는 사람도 많이 목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지하철 안의 모습입니다.

사실 이렇게 횡단보도 앞에서 서두르는 차가 빨리 가는 것도 아니고요, 또한 지하철 안에서 뛰어다닌다고 해도 남들보다 아주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서로들 잘 알면서도 그 서두름을 멈추지 않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또 하나의 나약함은 아닐까 싶네요.

이밖에도 많은 ‘서두름’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정치판에서도, 경제에서도, 문화 속에서도 ‘서두름’을 가지고서 속성으로 처리하려는 흔적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데 그 모습이 바로 교회 안에서도 보이고 있습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고 말하는 사람들, 잠깐의 기도로 무엇인가를 다 얻을 수 있다는 착각(그래서 이루어지지 않음을 가지고 주님께서는 불공평하다고 말하지요), 실천은 하나도 없이 말로만 그렇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하긴 2000년 전에도 이렇게 바쁨을 핑계로 예수님을 괴롭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심을 간절하게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메시아 상과는 너무나 달랐지요. 그들은 지금 당장 악인들을 처벌하는 엄격하고 무서운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보여주신 메시아 상은 악인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특히 소외받고 버림받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한없이 부드러운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분명히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성의 지도자라고 말하는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는 몇 번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을 그대로 단죄하고 맙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이상형과 예수님이 다르다는 이유로 더 이상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철저하게 매달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과연 어떤가요? 너무나 바쁘게 살고 있지 않나요? 너무나 서두르고 있지 않나요? 혹시 사소한 일들에까지 시간을 뺏기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버려도 될 일들을 너무나 소중한 듯이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제 이런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왜 이렇게 바쁜 걸음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요. 그리고 이제는 주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참 메시아라는 사실을…….


바쁘다 바뻐’를 외치지 말고, 대신 여유있는 생활을 합시다.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
수없이 많고 많은 사람들
그들 중에는 왠지 마음에 두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출근길에 스쳐 지나가듯 만나도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 사람도
매일 똑같은 시간에 만나면 서로가 멋쩍어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마주치기 싫어 고개를 푹 숙이고 모른 척 못 본 척 지나쳐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고 싶었지만 말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서로가 마주치면 웃어 버리고
가슴만 뛰던 날도 있었을 것입니다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첫 인상이 멋진 사람 매너가 있는 사람
일의 뒤처리를 잘해주는 사람
늘 무언가를 챙겨주는 사람
보호본능이 강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
모두다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내가 바라볼 때 좋은 인상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처럼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도록 살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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