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12월 9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
|
|
재생 클릭!!
|
제1독서 이사야 41,13-20 "너의 주 하느님인 내가 너의 오른손을 붙들어 주며 이르지 않았느냐?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도와준다.'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걋?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이 말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를 구원하는 이다. 보아라. 내가 너를 날이 선 새 탈곡기로 만들리니, 네가 모든 산을 짓부수어 뭉그러뜨리고, 모든 언덕을 가루로 만들리라. 네가 원수들을 까불어 바람에 날리면, 그들은 거센 바람에 날려 흩어지리라. 그러나 너는 주님 앞에서 기뻐 뛰놀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믿고 뽐내리라. 억눌린 빈민들은 물을 찾아도 얻지 못하여, 목말라 혀마저 바싹 타지마는, 주님인 내가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니, 대머리산에 개울물이 흐르고, 골짜기에서 샘이 터지리라. 마른 땅에서 물이 솟아 나와 사막을 늪으로 만들리라. 사막에 송백과 아카시아와 소귀나무와 올리브나무를 심고, 황무지에 전나무와 느티나무와 회양목을 함께 심으리라." 이것은 주님께서 손수 하신 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루신 일임을 그들에게 깨우쳐 알리시려고, 이 모든 일을 똑똑히 보여 주신 것이다.
복음 마태오 11,11-15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찍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그런데 모든 예언서와 율법이 예언하는 일은 요한에게서 끝난다. 너희가 그 예언을 받아들인다면 다시 오기로 된 엘리야가 바로 그 요한임을 알 것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저는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먹습니다. 특히 많이 먹는 욕은……. 핸드폰을 잘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있다면 문자 메시지에 대한 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요. 물론 문자 메시지 답을 하지 않는 것은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겠지만, 핸드폰을 잘 받지 않는 것 역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리고 싶네요.
예전에 핸드폰 A/S 기사들이 쓰는 방법이라면서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었을 때, 무슨 숫자들을 조합해서 누르면 급속 충전이 된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방법을 수첩에 적어 놓고 다녔지요. 그리고 드디어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었고, 저는 그 방법을 이용해서 숫자들을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숫자들을 누르자마자, 배터리 용량 표시 눈금이 Full로 꽉 차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신기했습니다. 이 방법만 있다면 괜히 충전기를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잠시 뒤, 급속충전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글쎄, 분명히 배터리 용량 표시 눈금이 Full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핸드폰이 꺼지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 숫자들을 조합해서 누르는 일명 ‘급속충전 방식’은 용량 표시 눈금만 Full로 만드는 것이었지요. 그 결과 저는 현재까지도 언제 꺼질지 모르는 핸드폰을 들고 다닙니다. 물론 항상 핸드폰의 액정에서는 배터리 용량이 Full로 차 있지만 말이지요. 더군다나 요즘에는 제 핸드폰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하루도 못가서 핸드폰이 꺼지고요. 그래서 꽤 많은 시간 동안 핸드폰이 꺼진 채 생활하게 된답니다.
아무튼 편하게 ‘급속 충전’한다는 생각에 선택했던 그 방법 때문에 저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욕을 먹고 있습니다. 전화 받지 않는다고…….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편한 방법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그 방법이 좋다고 하면 모두가 몰려듭니다. 하지만 편한 방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때로는 편한 방법을 떠나서 돌아서 가는 방법도 우리들에게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핸드폰을 예를 들었지만, 또 하나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어떤 분이 서로 싸웠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아주 쉽게 생각을 합니다. ‘안 보면 되지 뭐…….’ 맞습니다. 안 보면 됩니다. 하지만 인간 삶이 어디 그렇습니까? 그 사람과 연관된 어떤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생각나게 되고요, 그래서 미움의 감정이 다시금 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우리들임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그래서 어떻게든 화해하라고 하지요. 물론 만나지 않으면 된다는 편한 방법도 있지만, 그 방법으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화해라는 힘든 방법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 세례자 요한이 나옵니다. 그는 편한 삶을 살지 않지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았던 세례자 요한도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보다도 못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잠시의 시간도 제대로 주님을 위해 봉헌하지 못하는 나는 과연 하늘나라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까를 떠올려 보게 됩니다.
편한 것만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세례자 요한도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보다도 못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편한 것만을 추구한 우리들은 어떤 대접을 받겠습니까?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모습. 지금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모습입니다.
쉬운 것만을 쫓아다니지 맙시다.
변화에 필요한 용기 비전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변화의식이고 변화에 필요한 것은 바로 용기입니다.
변화에 필요한 용기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예화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있었던 유태인 “스타니슬라브스키” 사례입니다.
그는 단지 유태인이란 이유로 독일군에게 잡혀 죽음의 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그 죽음의 수용소는 유태인들을 잡아다가 샤워를 시킨다고 거짓말을 하여 포로들의 옷을 벗기고 샤워실에 집어넣고는 수도꼭지에서는 독가스를 살포하여 사람들을 죽였던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스타니슬라브스키” 는 동료들이 죽어가는 수용소에서 남들처럼 죽음의 날만 기다리지 않고 살 궁리, 탈출할 기회를 엿보게 됩니다. 어느 날 밤 옷을 벗고 죽은 시체들 속에 몰래 들어갑니다. 다음날 간수들이 보는 가운데 시체들은 커다란 덤프트럭에 실려 수용소 밖에 있는 매립장으로 가게 됩니다. 시체 썩는 악취를 참아가며 밤이 오길 기다렸다가 “스타니슬라브스키”는 옷을 벗은 채 36 마일을 뛰어 결국 탈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최초의 변화를 이루어 내는 사람들은 모두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을 때 아직 성공한 사례도 없는 것에 과감한 용기를 내어 도전할 때, 그리고 그것이 성취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가치를 더 높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변화에 필요한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스타니슬라브스키” 사례를 생각하며 용기를 불태우시기 바랍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