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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4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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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야 30,19-21.23-26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 사는 시온 백성들아, 너희가 다시는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너희가 소리내어 부르짖으면 주께서는 너희를 가엾게 보시어 듣자마자 곧 이루어 주시리라. 주께서 너희에게 겨우 연명할 빵과 가까스로 목을 축일 물밖에 주지 않으셨지만, 그는 너희 스승이 되어 다시는 너희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니 너희가 그들 스승으로서 눈 앞에 항상 모시게 되리라. 그리하여 너희가 오른편으로나 왼편으로나 빗나가려 하면 그가 뒤에서 너희 귀에 속삭여 주시리라. '이것이 네가 가야 할 길이다. 이 길을 따라가거라.' 그러면 그가 비를 내리시어, 너희가 밭에 뿌린 씨로 하여금 나서 자라게 하시고, 밭에서 영글고 기름진 곡식을 거두게 하시리라. 또 그날 너희 가축은 넓은 목장에서 풀을 뜯으리라. 밭일을 거드는 황소와 나귀도, 키와 풍구로 부쳐낸 고운 겨에 간을 맞추어 만든 사료를 먹으리라. 요새의 탑들이 무너지고 적이 섬멸되는 날, 높은 산, 높은 언덕 어디에서나 시냇물이 흐르리라. 그때 달빛은 햇빛처럼 밝아지고, 햇빛은 일곱 배로 밝아져, 이레 동안 비추는 빛을 한데 모은 것처럼 되리라. 그날이 오면,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고 그 터진 곳을 치료해 주시리라."
복음 마태오 9,35-10.1,6-8 그때에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또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악령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파견하시며 분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 중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사람은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 주어라. 나병 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 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사람들은 별 것을 가지고 다 부러워합니다.
글쎄 저보고 컴퓨터를 잘해서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씀을 하십니다. 물론 편한 것은 있겠지요. 하지만 좋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이 정도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투자한 많은 시간들. 그 결과 약간의 실력을 키울 수 있었지만, 눈도 안 좋아지고 손목도 아픈 증세를 보이는 등 단점이 더 많답니다.
또, 제게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에서 그리고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지내니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보일러 없는 곳에서 찬물로 설거지를 하면서 생활해보세요. 아무리 아름다운 경관과 좋은 공기라 할지라도, 때로는 따뜻한 방과 따뜻한 물이 나오는 도시가 그립기도 합니다.
또, 제게 글을 잘 쓰고 말을 잘 해서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러나 말 잘한다고 각종 강의 부탁을 받아야 하고요, 글 잘 쓴다고 계속 원고 청탁으로 인해서 피곤함만 늘어날 뿐입니다. 강의를 하러가지 않아도 그리고 글을 쓰지 않아도, 한 명의 가톨릭 신부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인데요.
부양가족 없이 혼자 살아서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씀도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허리 아파서 파스 부칠 때 얼마나 처량한지를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등이 가려울 때, 긁어줄 사람도 긁을 도구도 없어서 마치 곰처럼 벽에 등을 기대서 위 아래로 다리 운동을 해야 하는 심정을 떠올려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혼자 궁상맞게 밥 먹고 있는 모습은 어떨까요? 이래도 혼자 사는 것이 보기 좋은가요?
어쩌면 우리들은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정말로 부러워해야 하는 것은 주님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리면서 생활하는 것인데, 엉뚱한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부러워하는 어리석은 나는 아니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에게 악령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악령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고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런 능력이 여러분에게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신날 것 같지 않습니까? 세상의 아픈 사람들을 모두 낫게 하고, 그럼으로써 주님을 더욱 더 찬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제게 하나의 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병원에 가면 너무나도 많은 환자들이 고통 속에서 시름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모두가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여러분 앞으로 찾아온다면 어떨까요? 아마 단 한순간도 쉬는 시간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능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책임도 많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많은 능력을 주시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즉, 능력이 없음은 그만큼 내가 짊어질 짐도 적다는 의미가 되니까요.
능력이 많고 적음을 가지고 부러움의 판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얼마나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느냐 안 머무르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남의 능력 많음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행복한 동행’ 중에서) 사람이든, 식물이든, 물건이든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위치와 각도가 있습니다.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추하게 보이기도 하며, 날카롭거나 부드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무 한 그루도 보기에 좋은 위치와 각도를 잡아 심는데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그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을 텐데, 그것은 찾아보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방향, 시각으로만 바라보면서 미워하거나 무시합니다.
사람은 그가 누구냐 인 것 보다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중요도와 의미가 크게 달라집니다.
오늘은 그를 어제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사람마다 다른 성격과 습관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새롭고 놀라운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