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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4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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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요한 묵시록 15,1-4 나 요한은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각각 한 가지 재난을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재난은 최후의 재난으로서 하느님의 분노의 마지막 표현입니다. 나는 또 불이 섞인 수정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수정 바다 위에는 그 짐승과 그의 우상과 숫자를 가지고 이름을 나타냈던 그자를 이긴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거문고를 타며 하느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이렇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주께서 하시는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만민의 왕이시여, 주님의 길은 바르고 참되십니다. 주님,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가 누구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주님만이 홀로 거룩하시니, 모든 민족이 주님 앞에 와서 경배할 것입니다. 주님의 심판이 공정하게 내려졌습니다."
복음 루가 21,12-19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가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며 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야말로 너희가 나의 복음을 증언할 때이다. 이 말을 명심하여라. 그때 어떻게 항변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 너희의 적수들이 아무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주겠다. 너희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잡아 넘겨서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일 년에 딱 한번, 그러니까 성탄 밤 미사 때에만 성당에 나오는 교우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성탄 밤 미사에 와보니 성당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그야말로 초만원이어서 미사 시간 내내 서 있지 않으면 안 되었지요.
그래도 그 긴 미사를 끝까지 참석한 그는 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소파에 풀썩 주저앉으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러한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하네요.
“그 교우들은 불친절하기 짝이 없어! 그래, 일 년에 딱 한번 성당에 간 사람한테 자리 하나 좀 양보하면 어디가 덧나나? 자기들은 일 년 내내 실컷 앉았고 또 앞으로도 앉을 텐데 말야. 도대체가 불친절하단 말씀이야!”
이분의 푸념에 대해서 공감을 하십니까? 공감이 전혀 되지 않지요? 그런데 어쩌면 우리들은 이렇게 공감도 가지 않는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마음속에 품으면서 주님께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만 봐주지 말고, 저도 잘 좀 살게 힘 좀 써주십시오.’
‘제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번 한 번만은 걸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다음부터는 안하겠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능력이 부족합니까? 저에게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할 만한 풍부한 능력을 주십시오.’
‘제 자식이 이번에 수능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노력을 하지 않아서인지 시험을 망쳤습니다. 하지만 꼭 대학에는 합격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분명히 대학가면 잘할 겁니다.’
이러한 식의 기도를 우리들은 너무나도 많이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도가 정말로 공감이 가는 기도가 될까요? 다른 사람 위에 올라타려는 기도. 특별한 사랑을 자기 자신과 자기와 친한 사람들만 받으려는 기도.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 등등……. 그러면서도 주님께 대한 원망은 또 얼마나 많이 하는지요.
한 중년신사가 어느 시골 주점에서 햇 포도주 한 잔을 시켜 맛보고서 이렇게 투덜댔습니다.
“아이고, 시어라! 무슨 포도주가 이리도 시어빠질 수 있지?”
그랬더니 그 주점주인이 이 소리를 듣고 즉시 대꾸했습니다.
“올해 포도주가 신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 책임입니다.”
그 다음 해에 그 중년신사가 다시 그 주점에 들러 햇 포도주를 시켜 마시고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포도주라면 이쯤은 돼야지! 아주 맛이 좋구먼!”
이 얘기를 들은 그 집주인이 가슴을 펴고 자신만만하게 얘기했습니다.
“손님, 이 포도주는 전적으로 제 작품입니다.”
잘되면 자기 탓, 안되면 남의 탓을 외치는 것이 어쩌면 내 자신의 못된 습관처럼 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런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을 기억할 때, 어쩌면 내 자신도 예수님을 저렇게 십자가에 계속해서 못 박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못된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사랑 가득한 위로의 말씀도 해주시네요.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에 희망을 걸면서, 오늘 우리 곁에 다가오는 모든 고통과 시련들을 이겨낼 것을 다짐해 봅시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남의 탓’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잘되면 주님 탓, 안되면 내 탓’을 외치는 오늘이 됩시다.
사막과 보석(‘행복한 동행’ 중에서) 사막을 건너 먼 이웃 나라에 가서 보석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잠시 오아시스에서 짐을 풀고 쉬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자신의 보석을 집어 들면서 자랑했다.
“이것을 보게. 이만큼 값이 나가는 보석은 몇 개 없을 거야.”
그러자 다른 상인도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보석은 나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려면 내 것 정도는 돼야지.”
서로 보석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는 두 상인을 보면서 어느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이보게들, 내 얘기를 들려주지. 나도 젊었을 때 자네들처럼 보석상이었네. 그런데 어느 날 사막에서 큰 모래 폭풍을 만났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동료와 낙타들은 모두 죽어 있었고, 나는 곧 목이 말라 물을 찾아 헤맸지. 그러나 땅에 쓰러져 있는 낙타 등에 물병 같은 게 보이는 거야. 탈진해 있던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곳에 가서 병을 열었지. 그런데 병이 들어 있는 것은 물이 아니라 보석이었네. 그리고 깨달았지. 보석이 일상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물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사실을 말일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