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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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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요한 묵시록 1,1-4.5;,1-5ㄱ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느님께서 곧 일어날 일들을 당신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리스도에게 계시하셨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당신의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려 주셨습니다.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언하신 것, 곧 내가 본 모든 것을 그대로 증언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 일들이 성취될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지금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그분과 그분의 옥좌 앞에 있는 일곱 영신께서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에페소 교회 천사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내어라. 오른손에 일곱별을 쥐시고 일곱 황금 등경 사이를 거니시는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잘 알고 있다.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할 수 없었으며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를 사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허위를 가려낸 일도 잘 알고 있다. 너는 잘 참고 내 이름을 위해서 견디어 냈으며 낙심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빗나갔는지를 생각하여 뉘우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복음 루가 18,35-43 예수께서 예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의 일이었다. 어떤 소경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나자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고 하자 그 소경은 곧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앞서 가던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며 떠들지 말라고 일렀으나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 소경을 데려오라고 하셨다. 소경이 가까이 오자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셨다.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그가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자,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소경은 곧 보게 되어 하느님께 감사하며 예수를 따랐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지난 토요일, 제가 있는 이곳 갑곶성지에 서울 신학교 총장신부님과 서울교구의 새 신부 30여명이 방문했었습니다. 제가 신학생 때 만났던 분들이라 너무나 반가웠지요. 그러면서 예전 저의 모습들을 떠올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선 제가 신학교를 들어가서 장차 신부가 된다고 했을 때, 저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네가 신부가 되면 가톨릭 망한다.”
그런데 제가 신부가 된 지 6년째가 되고 있지만 아직도 가톨릭이 망하지 않고 건재한 것을 보면, 제가 신부가 되고 안 되는 것으로 가톨릭이 망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신학교 들어가서는 글 쓰는 재주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지요. 그리고 남들 앞에만 서면 너무나 떨려서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가지고 신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군대를 마친 뒤에는 이런 저의 모습 때문에 성소에 대한 갈등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에게 제가 원래 말도 못하고 글재주도 없었다고 말하면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책도 2권이나 출판했고,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으니까요.
과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지금 하고 있는 제 모습에서 주님의 역사하심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저 역시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심에도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아무튼 우리 인간들의 판단과 하느님의 판단은 너무나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판단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것도 하느님의 판단으로는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데도 자기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박박 우기고 있는 우리들의 한심한 모습들이 하느님의 눈에는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길을 지나가는 예수님을 향해서 한 소경이 큰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자 사람들이 꾸짖으면서 떠들지 말라고 이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런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 큰 소리로 외치지요. 예수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면 주위의 이런 만류 소리가 얼마나 큰 부담이 될 수 있을까요? 주눅이 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큰 소리로 다시 예수님께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아니면 자기에게 이런 기회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소경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데 방해하고 만류하는 주변의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고 있었겠지요. 거룩한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판단, 하찮은 소경 한 사람의 외침 때문에 방해가 된다는 판단, 나중에 예수님께서 한가할 때 만나도 되지 않겠냐 라는 판단. 이런 판단으로 인해서 그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나아가고자 했던 소경의 앞길을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이렇게 예수님 앞에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정말로 예수님 밖에 나를 구원할 분이 없다고 예수님 앞에 힘들게 나아가고 있는데, 이기적인 나의 판단들로 그들의 앞에 커다란 벽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내 판단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대신 주님의 판단을 내 가슴에 새기고, 사람들에게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내가 되길 이 아침에 기도해봅니다.
내 판단이 언제나 옳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립시다.
등잔 하나의 자부심(홍성중, ‘행복을 나르는 배달부 ’ 중에서) 인도의 한 사원에는 100여 개의 등잔을 올려놓을 수 있는 커다란 놋쇠 등잔받침이 있다. 저녁이 되면 깜깜한 사원 안으로 사람들이 등잔을 하나씩 들고 모여들곤 한다. 시간이 지나서 마침내 사람들이 완전히 모여들면 사원 안은 대낮같이 밝아진다.
예배가 끝나면 신도들은 신의 은총 외에 또 하나의 선물을 얻고 서원을 떠난다. 그것은 자기가 가져온 등잔 하나가 사원을 대낮같이 밝히는 데 일조를 했다는 든든한 자부심이다.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힘이 되었을 때의 자부심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큽니다. 혹, 이기적인 마음이 들려 할 떄, 바로 그 '자부심'을 생각하십시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