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2/5)

2004. 12. 5. 오전 8: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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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5일 대림 제2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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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야 11,1-10
그날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주님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지혜와 슬기를 주는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주님을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린다.
그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 겉만 보고 재판하지 아니하고,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아니하리라.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정당하게 해 주고, 흙에 묻혀 사는 천민의 시비를 바로 가려 주리라. 그의 말은 몽치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의 입김은 무도한 자를 죽이리라.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이고, 성실로 띠를 띠리라.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품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모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 뗀 어린 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으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주님을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그날, 이새의 뿌리에서 돋아난 새싹은, 만민이 쳐다볼 깃발이 되리라. 모든 민족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가 있는 곳에서 영광이 빛나리라.


제2독서 로마서 15,4-9
형제 여러분, 성서 말씀은 모두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서에서 인내를 배우고 격려를 받아서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아무쪼록 인내와 격려를 주시는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뜻을 따라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여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진실성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할례 받은 사람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고 이방인들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성서에도, "그러므로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주께 찬양을 드리며 주님의 이름을 찬미하리라."하였습니다.


복음 마태오 3,1-12
그 무렵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 하고 선포하였다. 이 사람을 두고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들린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요한은 낙타털 옷을 이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그때에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유다 각 지방과 요르단 강 부근의 사람들이 다 요르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서 자기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많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가두사이파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그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 그리고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 하는 말은 아예 할 생각도 마라. 사실 하느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를 만드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그분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그분은 손에 키를 드시고 타작 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어떤 배의 선장과 항해사는 늘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출항할 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항의했지만 그들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요. 선장은 둘 중에 하나가 그만두기 전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만 둘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항해사를 쫓아낼 방법을 궁리합니다.

바로 그 순간, 선장은 항해사가 비번인 날에 가끔 술에 취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항해사가 해고당하도록 하기 위해 그의 술 먹는 습관을 이용해서 항해 일지에 이렇게 적었지요.

“XX년 XX월 XX일, 오늘 항해사가 술에 취했다.”

다음 날 선장의 항해 일지에 자신이 술에 취했다는 내용을 발견한 항해사는 선장을 찾아가 그 기록을 삭제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선장은 사실을 기록한 것이기에 절대로 삭제할 수 없다고 했지요.

그리고 며칠 후 선장은 항해 일지에 항해사가 자신에 대해 기록한 글을 발견했습니다.

“XX년 XX월 XX일, 오늘은 선장이 술에 취하지 않았다.”

이 기록을 발견한 선장은 항해사를 찾아가서 항해 기록을 당장 삭제하라고 소리쳤지요. 하지만 항해사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 지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내용은 내가 늘 술에 취해 있다가 이날 하루만 술을 먹지 않은 것처럼 보이잖아.”하고 선장이 따져 물었지만 항해사는 “다른 날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날 분명히 선장님은 술에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을 기록한 것뿐입니다. 절대 지울 수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 두 사람은 귀항하자마자 모두 해고당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진실은 분명히 좋은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의 의견 차이를 보일 때 우리는 종종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이야.”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선 이야기에서처럼, 사람의 말은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진실이 거짓보다 더 악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힘껏 외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분명한 사실이며 진리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말을 죄인이 외치고 있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자기부터 회개할 것이지.’라면서 콧방귀만 뀔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는 많은 이가 동의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말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즉, 본인 스스로 광야에 나가 속죄의 마음을 갖고 고행했기에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이 사실을 다시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

말은 아무리 분명한 진리라 할지라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악으로 변할 소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말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서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직접적인 선한 행동이 바로 2000년 전 세례자 요한이 행했던 주님의 길을 닦고 그분의 길을 고르게 하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말만 하지 맙시다.



좋은 남편

어느 고등학교의 글짓기 시간. ‘좋은 남편’에 대한 한 남학생의 생각을 적은 글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경찰관이다. 지난 몇 년간 외식을 한 적이 없고 어머니와 나의 생일을 기억해 준 적도 없다. 아버지의 시간은 대부분 식구들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쓰여 진다. 좋은 남편이란 무엇일까? 설거지를 거들어 주는 남자, 가족들을 데리고 나가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남자, 그런 남자를 좋은 남편이라고 한다면 나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남편일 것이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며, 대부분의 일에서 아내에게 조언을 청하며, 그러면서도 남을 위해 자신의 일을 철저히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은 남편이라면 나의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편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는 아내와 자식의 지지를 받는 사람입니다. 몇 번의 가족 외출과 몇 번의 집안 청소로 가족의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없는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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