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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6일 대림 제2주간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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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야 35,1-10 메마른 땅과 사막아, 기뻐하여라. 황무지야, 내 기쁨을 꽃피워라. 아네모네처럼 활짝 피워라. 기뻐 뛰며 환성을 올려라. 황무지도 레바논의 영광으로 빛나고, 가르멜과 사론처럼 아름다워져,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리라. 우리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 늘어진 두 팔에 힘을 주어라. 휘청거리는 두 무릎을 꼿꼿이 세워라. 겁에 질린 자들을 격려하여라. "용기를 내어라. 무서워하지 마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원수 갚으러 오신다. 하느님께서 오시어 보복하시고 너희를 구원하신다." 그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며,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 사막에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 냇물이 흐리리라.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메마른 곳은 샘터가 되며, 승냥이가 살던 곳에 갈대와 왕골이 무성하리라. 그곳에 크고 정결한 길이 훤하게 트여, '거룩한 길'이라 불리리라. 부정한 사람은 그리로 지나가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서성거리지도 못하리라. 사자가 얼씬도 못하고, 맹수가 돌아다니지 못하는 길, 건짐 받은 사람만이 거닐 수 있는 길, 주님께서 되찾으신 사람이 이 길을 걸어, 시온 산으로 돌아오며 흥겨운 노래를 부르리라. 그들의 머리 위에선 끝없는 행복이 활짝 피어나고, 온몸은 기쁨과 즐거움에 젖어들어, 아픔과 한숨은 간데없이 스러지리라.
복음 루가 5,17-26 하루는 예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거기에 갈릴래아와 유다의 여러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이 앉아 있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고쳐 주기도 하셨는데 그때 사람들이 중풍 들린 사람을 침상에 눕혀 가지고 와서 예수 앞에 데리고 가려 하였으나 사람들이 많아서 병자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구멍을 내고 병자를 요에 눕힌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예수 앞에 내려 보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을 보시고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들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저 사람이 누구인데 저런 말을 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가? 하느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는냐?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그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셨다. 그러자 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깔고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면서도 마음은 두려움에 싸여 "우리는 오늘 참으로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그는 학교에서 매일 낙제하는 학생으로 통했었습니다. 수학, 영어 모두 낙제였고, 물리는 늘 빵점을 맞는 것으로 유명했지요.
그는 운동에도 소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속해 있는 팀은 항상 그 때문에 패하곤 했지요.
또 대인 관계도 잘 맺지 못해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답니다. 게다가 데이트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청춘을 보내야했던 불행한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그런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평범하게 살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잘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지요.
어느 날, 그는 용기를 내어 월트디즈니에 자신의 그림을 보냈습니다. 정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려 보냈지요. 그리고 월트디즈니에서 기다리던 연락이 왔습니다.
“미안합니다…….”
또 실패한 것이었지요. 그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붙잡을 재능이라고는 그림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것마저도 거절을 당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자신처럼 메마른 인생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자서전을 만화로 그렸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항상 지기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떠한 일을 해도 안 되고,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활을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그 만화의 주인공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찰리 브라운’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은 ‘스누피, 찰리 브라운, 라이너스, 루시’ 등을 그린 ‘찰스 슐츠’였습니다.
사실 ‘찰스 슐츠’는 자신의 타고난 개성을 인정하기 싫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너무나도 싫어하는 그 모습을 다른 사람 역시 모두 외면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기를 늘 기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세상에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냈을 때에야 비로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오늘 예수님 앞에 한 중풍병자가 치유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치유는 어떤 식이었나요? 바로 예수님 앞에 섰을 때 가능했던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에 있었기에 예수님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지요. 바로 친구들의 도움으로 지붕의 기와를 벗겨 구멍을 내고서 예수 앞에 나아갑니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예수님 앞에 나아갔기에 치유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가요? 나를 숨기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위선과 거짓을 행하고 있었는지요?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심지어 내가 숨기고 싶어 하는 죄까지도…….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친구 덕분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친구가 되도록 합시다.
진정한 용기(인터넷에서 퍼옴) 영국인들은 항해 중 재난을 당했을 때 서로 상대방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다고 합니다.
'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
이야기는 18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해군의 자랑스러운 수송선 '버큰헤이드 호'가 사병들과 그 가족들을 태우고 항해 중,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으로부터 약 66km 떨어진 곳에서 암초에 부딪쳤습니다. 새벽 2시, 그 배엔 130여 명의 부녀자를 포함해 630여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습니다.
놀라서 잠을 깬 승객들은 커다란 공포 속으로 휘말려갔습니다. 완전히 허리가 끊긴 배에는 3척의 구명정이 있었지만 1척당 60명, 전부 합해야 180명밖에 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그곳은 사나운 상어떼가 우글거리는 곳,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풍랑은 더욱 심해져 승객들의 죽음을 앞둔 공포심은 더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전 병사들에게 갑판 위로 집합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병사들은 명령에 따라 훈련 시처럼 민첩하게 집합하여 부동자세를 취했습니다. 그 동안 한쪽에서는 횃불을 밝히고 부녀자들을 3척의 구명정으로 옮겨 태웠으나, 마지막 구명정이 떠날 때까지 갑판 위의 사병들은 마치 열병식을 하는 것처럼 미동도 없이 서있었습니다.
구명정에서 '버큰헤이드 호'를 바라보고 있던 부녀자들은 갑판 위에 의연한 자세로 서 있는 그 병사들을 향해 흐느꼈습니다. 잠시 후 병사들의 머리가 모두 낙엽처럼 물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세튼 대령도 함께였습니다.
겨우 판자에 매달려 목숨을 건진 한 장교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되 뇌이며 울먹였습니다.
'모든 병사들의 의연한 태도는 최선의 훈련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기대효과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누구나 명령대로 움직였고 누구 하나 불평 한 마디 없었다. 그 명령이 곧 죽음이라는 것을 잘 알았으면서도 마치 승선명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에 따랐다.' `
'여자와 어린이 먼저'라는 훌륭한 전통이 세워진 것은 바로 이 사건 이후부터였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