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2/7)

2004. 12. 7. 오후 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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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7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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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야 40,1-11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시민에게 다정스레 일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났다고, 그만하면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고, 주님의 손에서 죄벌을 곱절이나 받았다고 외쳐라."
한 소리 있어 외친다. "주님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벌판에 큰길을 훤히 닦아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 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 영화를 뵈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약속하셨다."
한 소리 있어 명하신다. "외쳐라." "무엇을 외칠까요?" 하고 나는 물었다. "모든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화는 들에핀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진다, 스쳐 가는 주님의 입김에. 백성이란 실로 풀과 같은 존재이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너, 시온아. 높은 산에 올라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너, 예루살렘아. 힘껏 외쳐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질러라. 유다의 모든 도시에 알려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저기 오신다. 주 하느님께서 저기 권능을 떨치시며 오신다. 팔을 휘둘러 정복하시고, 승리하신 보람으로 찾은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수고하신 양 떼에게 풀을 뜯기시며, 새끼 양들을 두 팔로 안아 가슴에 품으시고, 젖먹이 딸린 어미 양을 곱게 몰고 오신다.


복음 마태오 18,12-14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어제는 인천교구 사제 인사이동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천의 많은 성당에서는 헤어짐의 아쉬움과 새로운 신부님을 맞이하는 환영의 기쁨이 함께 교차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저는 인사이동 없이 이곳 갑곶성지에 그냥 눌러 있지만, 제 동창 신부 5명이 이동을 했기에 이번 인사이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제까지 주님께서 제게 주신 사랑을 다시금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사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짐을 싸서 이사를 갈 일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서울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한 후에 2년 만에 짐을 싸들고 군대 가기 위해서 휴학을 했습니다. 3년간의 군 생활을 다시 마치고 다시 서울 신학교에 복학한 후에 2년 정도 다니니까 이번에는 수원 가톨릭대학교로 가랍니다. 그래서 다시 짐을 싸들고 수원에서 대학원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2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마치자, 이번에는 인천 가톨릭대학교로 가랍니다. 다시 짐을 싸들고 인천에서 부제 생활을 했습니다. 1년간의 부제 생활을 강화도에 있는 인천 신학교에서 한 뒤에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신부가 된 후에는 어떨까요? 이사 갈 일이 없을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네요. 거의 매년을 짐을 싸들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제게 계속됩니다.

이러한 저를 보고서 사람들은 그렇게 이사를 많이 해서 힘들겠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하지만 이것도 어쩌면 주님의 배려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즉,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안이한 마음이 들 때 쯤 되면, 다른 곳으로 가게 만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하긴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생각해보세요. 그 역시 친척과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서 현재의 환경에서 안이한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아브라함에게 주님께서는 친척과 가족들을 떠나, 당신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가라고 하지요.

말이야 쉽지요. 지금처럼 교통이 편한 시대도 아니었고요, 더군다나 그곳에 대한 어떤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환경도 갖춰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곳을 찾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긴장될까요?

사실 주님의 능력이라면 지금 있는 환경을 얼마든지 당신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만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직접 찾아가게끔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아브라함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닐까요? 즉 편하고 안이한 삶을 버리고, 긴장 안에서 늘 깨어있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지요. 또한 바로 그러한 생활이 아브라함 자신을 위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맞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고통처럼 보이는 시련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우리들의 몫은 분명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 안일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 늘 깨어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를 하는 시기가 바로 이 대림시기가 아닐까요?


내가 지금 고통스럽다고 한탄하지 맙시다. 이것 역시 주님의 사랑일 수 있어요.



시간이 많은 사람이 받는 유혹

어떤 시골 사람이 커다란 말벌을 산채로 잡는 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길고 가느다란 유리병에 약간 달콤한 물을 넣어 둡니다. 그러면, 개으름뱅이 말벌이 지나가다가 그 달콤한 냄새를 맡고서 미끈 빠져들어 죽게 됩니다.

꿀벌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바쁜 꿀벌은 냄새를 맡기 위해 잠시 멈추었을 뿐 그 속에 빠져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꿀벌은 자기 스스로 만든 꿀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한가로이 날아다니던 그 쓸모없는 말벌만 병 속으로 들어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생활을 짜임새 있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아무 계획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치밀하게 자기 시간을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TV를 이리저리 틀며 저녁시간을 헤매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유혹은 시간이 많은 사람들을 먼저 넘어뜨립니다. 작은 꿀벌도 걸리지 않는 유혹에 커다란 말벌은 여지없이 걸려든 것과 같습니다. 악마는 한가로운 그리스도인을 낚아채는 일을 미루는 법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나태한 믿음을 던져버리고 더욱 더 열심히 한 해를, 그리고 오늘을 삽시다. 교회와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부지런한 그리스도인으로 삽시다. 흔들림 없는 믿음을 세우고 내일을 준비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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