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2/11)

2004. 12. 11. 오후 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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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1일 대림 제2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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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집회서 48,1-4.9-11
그 무렵 예언자 엘리야가 불과 같이 일어났으니,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그는 백성들을 징벌하려는 열정에서, 기근의 벌을 내리게 하여 많은 사람을 굶어 죽게 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받들어 하늘의 문을 닫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렸다. 엘리야, 신기한 일을 많이 보인 당신의 큰 영광이여! 누가 당신의 자랑스러움과 견줄 수 있으리이까.
당신은 불마차를 타고, 불소용돌이 속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당신이 심판날에 와서, 하느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 분노의 불을 끄고,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을 본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하며, 당신과 사랑으로 맺어진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복음 마태오 17,10-13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시는 길에 제자들이 "율법 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 엘리야는 벌써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사람의 아들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비로소 제자들은 이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어제 저녁, 저는 너무나 피곤했습니다. 서울에 방송 녹음을 하고 와서 그런지 거의 녹초가 된 상태였지요. 이 상태에서 밥을 해먹고 나니 피곤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더군요. 그래도 밥 먹고 그냥 자면 살찐다는 이야기에 잠을 자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건만, 신체의 나약함으로 인해 책상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전화 벨소리…….

“여보세요. 갑곶순교성지입니다.”(전혀 안 졸리운 목소리로...)

“신부님이세요? 저는 XXX라고 합니다.”

“네, 말씀하세요.”

그 다음 쏟아지는 공격적인 말들……. 잠결에 받은 전화인데, 바로 정신이 번쩍 나더군요. 아무튼 이 분께서는 저에게 가톨릭이 지금 큰 위기이며, 사제들은 모두 당장 회개해야 한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은 제가 방송하는 ‘아침 창가에서’라는 프로그램에서, 저의 어렸을 때의 삶을 말하면서 친구들이 ‘네가 신부되면 가톨릭이 망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아직까지 가톨릭이 망하지 않고 있다는 식의 농담을 가지고 하시는 말씀이더군요.

화가 났습니다. 제 글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도 기분이 나빴지만, 더군다나 가톨릭 신부 모두가 한 명도 예외 없이 주님 앞에 엄청나게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더 이상 참기가 어렵더군요(물론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죄인이지요). 결국 저는 몇 마디를 던지고 먼저 전화를 끊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니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지요. 사실 그분의 이러한 불신도 어떻게 보면 불쌍한 모습이 될 수도 있는데, 제게 싫은 소리를 한다고 화를 내면서 무작정 끊어버린 내 자신이 경솔했구나 라는 반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 더 깊이 되더군요. 그럴싸한 말을 하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 저 역시 바리사이파나 율법학자들처럼 위선과 교만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지요.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남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물론 감추어져서 미쳐 못 보던 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늘 예수님께 대한 비방만을 일삼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떠올려 봅니다. 이러한 비방으로 그들은 예수님도 세례자 요한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구원의 길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게 상처를 준다고 똑같이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대신 그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 기도는 오히려 내게 큰 이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화를 내지 맙시다.



고민을 넣어두는 상자

아더 팽크라는 영국의 실업가는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항상 불안했습니다.

많은 염려 가운데 살던 그는 "염려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는 매주 수요일을 염려의 날로 정하고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걱정하다가 생긴 날짜와 내용들을 적어 상자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수요일 날, 그는 상자 속의 메모지를 살펴보다가 문득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자에 넣을 당시만 해도 큰 문젯거리였던 그것이 훗날 다시 읽을 즈음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상자를 계속 활용하면서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이 살면서 크게 고민하며 염려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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