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2/13)

2004. 12. 13. 오후 1: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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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3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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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민수기 24,2-7.15-17
그 무렵 발람의 눈에 이스라엘 백성이 지파별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 그는 푸념하듯이 이렇게 읊었다.
“브올의 아들 발람의 말이다. 천리안을 가진 사내의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는 말이다. 전능하신 하느님을 환상으로 뵙고, 엎어지며 눈이 열려 하는 말이다.
야곱아, 너의 천막들이 과연 좋구나! 이스라엘아, 네가 머문 곳이 참으로 좋구나! 굽이굽이 뻗은 계곡과 같고, 강물을 끼고 꾸며진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손수 심으신 느티나무와 같고, 물가에서 자라는 송백 같구나. 물통에서는 물이 넘쳐 나와 땅에 뿌린 씨가 물을 듬뿍 먹는구나. 임금은 아각을 누르리니 국위를 널리 떨치겠구나.”
그러고 나서 그는 푸념하듯이 읊었다.
“브올의 아들 발람의 말이다. 천리안을 가진 사내의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는 말이다. 지존하신 이의 생각을 깨치고 하는 말이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환상을 뵙고, 엎어지며 눈이 열려 하는 말이다.
이 눈에 한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그러나 당장에 있을 일은 아니다. 그 모습이 환히 보이는구나. 그러나 눈앞에 다가온 일은 아니다. 야곱에게서 한 별이 솟는구나. 이스라엘에게서 한 왕권이 일어나는구나. 그가 모압 사람들의 관자놀이를 부수고, 셋의 후손의 정수리를 모조리 부수리라.”


복음 마태오 21,23-27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도 한 가지 물어 보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 일을 하는지 말하겠다.
요한은 누구에게서 권한을 받아 세례를 베풀었느냐? 하늘이 준 것이냐? 사람이 준 것이냐?” 하고 반문하시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그 권한을 하늘이 주었다고 하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할 것이고 사람이 주었다고 하면 모두들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으니 군중이 가만있지 않을 테지?” 하고 의논한 끝에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어떤 젊은 여자가 병원에 찾아와서 자기 뱃속에 있는 개구리를 꺼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사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왜 그런 말씀을 하느냐고 그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몇 달 전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너무 목이 말라 웅덩이에 고인 물을 손바닥으로 움켜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일어서다 보니 그 웅덩이에는 올챙이들이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요즈음 그 여인은 심각할 정도로 복통이 가끔 일어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때 몸속으로 들어간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어 몸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아하~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말씀하실 분이 있을까요? 아마 단 한 분도 그럴 분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말도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 본인에게는 매우 심각했던 일이었지요. 그래서 의사가 아무리 그 여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설명을 해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줘도, 또 어떤 의학적인 검사를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의사는 수술을 하는 척 하면서 미리 준비해둔 개구리를 한 마리 보여주면서 당신의 뱃속에서 꺼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제야 그 여인은 기뻐하면서 돌아갔다고 하네요. 그런데 몇 달 뒤, 이 여인이 다시 병원을 찾아와서 또 개구리를 꺼내달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수술할 때 개구리를 꺼냈지만, 그 개구리가 낳은 알이 몸속에 남아 있어서 그 알이 부화했다는 것이었지요.

이 여인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의심으로 인해서 의사도 못 믿고, 또 주변의 충고를 하는 사람들의 말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심이 스스로를 가장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그들 역시 이러한 의심을 간직합니다.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로 병자와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빵과 물고기 몇 개로도 수천 명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기적도 행했답니다. 또한 그분의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메시아라고 불리는 사람의 출신을 보니 영 아닙니다. ‘나자렛’이라는 촌동네 사람으로 율법학교에서 고등교육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하찮은 목수 출신이랍니다.

이런 사람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의심을 품으면서 말합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습니까?”

예수님을 직접 보았으나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 이 어리석음은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판단과 그에 따른 의심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이런 의심으로 주님의 말씀을 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기쁘게 살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를 의심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으면서 힘들게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의심을 품지 말고 그대로 실천합시다.



그 때(이규경의 ‘온 가족이 읽는 짧은 동화 긴 생각’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그 때 참았더라면
그 때 잘 했더라면

그 때 알았더라면
그 때 조심했더라면

훗날엔 지금이 바로
그 때가 되는데

지금은 아무렇게나
보내면서 자꾸
그 때만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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