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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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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창세기 49,1-2.8-10 그 무렵 야곱은 유언을 남기려고 아들들을 불렀다. "모두들 모여라. 훗날 너희에게 일어날 일을 내가 일러 주리라. 야곱의 아들들아, 모여와 들어라. 너희의 아비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 유다, 너는 네 형제들의 찬양을 받으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멱살을 잡겠고, 네 아비의 자식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유다는 사자 새끼, 아들아, 너야말로 짐승을 덮쳐 뜯어 먹고는, 배를 깔고 엎드린 수사자라 할까? 왕의 지팡이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지휘봉이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참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분이 와서, 만백성이 그에게 순종하게 되리라."
복음 마태오 1,1-17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은 야곱을,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았으며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제라를 낳았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헤스론은 람을, 람은 암미나답을,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았으며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아비야는 아삽을, 아삽은 여호사밧을, 여호사밧은 요람을, 요람은 우찌야를, 우찌야는 요담을, 요담은 아하즈를,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므나쎄는 아모스를, 아모스는 요시야를 낳았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으로 끌려갈 무렵에 요시야는 여고니야와 그의 동생을 낳았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다음 여고니야는 스알디엘을 낳았고 스알디엘은 즈루빠벨을,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아비훗은 엘리아킴을, 엘리아킴은 아졸을, 아졸은 사독을, 사독은 아힘을, 아힘은 엘리훗을, 엘리훗은 엘르아잘을, 엘르아잘은 마딴을, 마딴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는데 이분을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갈 때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으로 끌려간 다음 그리스도까지가 또한 십사 대이다.
오늘은 우아하게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새벽을 열어봅니다.
힘들지 않아서 웃는 게 아니죠(루이스 휘른베르크, ‘울기는 쉽지’에서)
울기는 쉽지, 눈물을 흘리기야 날면서 달아나는 시간만큼이나 쉽지. 하지만 웃기는 어렵지. 찢어지는 가슴속에 웃음을 짓는다는 건 이빨을 잔뜩 악물고 돌과 먼지와 벽돌 조각과 끊임없이 넘쳐나는 눈물의 바다 속에서 웃음 지으며 남을 믿으며 우리가 짓는 집에 방을 만들어 나가면 주위에서도 지옥은 사라진다. 그러나 웃기는 어렵지. 웃음이 삶인데도 그리고 우리의 삶은 그처럼 위대한 것임에도.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우는 것은 얼마나 쉽습니까? 하지만 힘든 생활, 가슴 아픈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족보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책이 족보라고 이야기 하는데요, 왜 오늘 복음에서 족보 이야기를 꺼내고 있을까요? 특히 마태오 복음의 시작 부분에 이 족보를 위치시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힘들고 아픈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즉 희망을 간직하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처럼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 외에는 영화를 누렸던 시기가 없을 정도로 그들은 늘 다른 주변의 강대국들로부터 침략과 약탈을 당하는 상황이었지요. 따라서 늘 아픔과 고통이 가득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 모든 역사가 불행의 역사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이 안에 하느님의 움직이심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들의 구세주 예수님께서 이 역사를 통해서 탄생하셨음을 발견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복음 저자는 마태오 복음의 첫 자리에 역사를 상징하는 족보를 위치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역사 가운데에서도 주님께서는 함께 활동을 하십니다. 따라서 울고 싶은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희망을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희망을 잃지 않고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하심을 간절히 기다렸으면 합니다.
웃어요~~~
동행(용혜원) 인생 길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힘들 때 서로 기댈 수 있고 아플 때 곁에 있어 줄 수 있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으니 서로 위로가 될 것입니다
여행을 떠나도 홀로면 고독할 터인데 서로 눈 맞춰 웃으며 동행하는 이 있으니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사랑은 홀로는 할 수가 없고 맛있는 음식도 홀로는 맛없고 멋진 영화도 홀로는 재미없고 아름다운 옷도 보아줄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독백이 되고 맙니다
인생 길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오늘도 내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