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2/24)

2004. 12. 24. 오전 8: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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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4일 대림 제4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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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사무엘 하권 7,1-5.8ㄴ-12.14ㄱ.16
주님께서 사면의 원수를 다 물리쳐 주셨으므로 다윗 왕은 궁에서 마음놓고 살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왕은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이렇게 송백으로 지은 궁에서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모셔둔 채 그대로 있소.”
나단이 왕에게 아뢰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무엇이든지 뜻대로 하십시오.”
그날 밤, 주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내렸다.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나 주님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일러라.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 내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삼았다. 그리고 나는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들을 네 앞에서 쳐 없애 버렸다. 세상에서 이름난 어떤 위인 못지않게 네 이름을 떨치게 해 주리라.
또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이 머무를 곳을 정해 주어 그 곳에 뿌리를 박고 전처럼 악한들에게 억압당하는 일이 없이 안심하고 살게 하리라. 지난날 내가 위정자들을 시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던 때와는 달리 너희를 모든 원수에게서 구해 내어 평안하게 하리라. 주님인 내가 한 왕조를 일으켜 너희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네가 살 만큼 다 살고 조상들 옆에 누워 잠든 다음, 네 몸에서 난 자식 하나를 후계자로 삼을 터이니 그가 국권을 튼튼히 하고 내가 친히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네 왕조, 네 나라는 내 앞에서 길이 뻗어 나갈 것이며 네 왕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복음 루가 1,67-79
그때에 요한의 아버지 즈가리야는 성령을 가득히 받아 예언의 노래를 불렀다. “찬미하여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당신의 백성을 찾아와 해방시키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 있는 구세주를 당신의 종 다윗의 가문에서 일으키셨다. 예로부터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빌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또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해 주려 하심이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시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대로, 우리를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시어, 떳떳하게 주님을 섬기며 주님 앞에 한평생을 거룩하고 올바르게 살게 하심이라.
아가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예언자 되어, 주님보다 앞서 와서 그의 길을 닦으며,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길을 주의 백성들에게 알리게 되리니, 이것은 우리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의 덕분이라. 하늘 높은 곳에 구원의 태양을 뜨게 하시어,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제가 보좌신부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모시던 주임신부님께서는 제가 처음 가자마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보좌신부 때에 새벽 미사 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힘들어서 안 돼. 그러니까 자네가 새벽 미사 전담을 하고 나는 낮과 저녁 미사를 맡겠네.”

그 성당은 꽤 큰 성당이기에 평일에도 미사가 두 대씩 있었거든요. 아무튼 저는 이런 말을 들은 다음 날 새벽, 성당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신자들이 너무나 없는 것입니다. 최소한 1000명 이상 앉을 수 있는 성당 안을 채우고 있는 신자의 수는 불과 10명. 앞줄만 계시는 신자 분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면서 좀 안 좋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도 ‘내일은 많이 나오시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았습니다.

다음 날 새벽, 신자 분들의 숫자는 15명. 5명이 늘기는 했지만 역시 그 큰 성당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숫자였습니다. 이렇게 텅 빈 성당을 보면서 이런 마음이 들더군요.

‘이렇게 신자도 오지 않는 미사를 굳이 해서는 뭐하나? 그냥 하루에 미사 한 대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이 아닐까?’

지금 저는 갑곶성지에서 매일 11시에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명 정도 오면 많이 왔다고 그러는지 아십니까? 10명만 넘어도 저는 신자 분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은 참 많은 분들이 성지를 방문해주셨네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왜 이런 차이를 보일까요? 미사 참석자의 숫자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왜 어떤 경우에는 신자가 적게 왔다고 실망을 하고, 또 반대로 신자가 많이 왔다고 기뻐할까요?

이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성당의 크기 때문입니다. 보좌신부 때 제가 있었던 성당은 한 500명 이상은 되어야 좀 성당을 채운 것 같지만, 지금 있는 성당은 50명만 들어와도 앉을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이러한 상태에서 10명만 와도 성당이 꽉 차게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이런 것을 보면, 오히려 적게 가진 것이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1,000명이 앉을 수 있는 성당에 900명만 성탄 자정 미사를 참석한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이번 성탄 자정 미사에는 빈자리도 보일 정도로 썰렁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수의 1/10만 갑곶성지에 참석하면 어떨까요? 아마 “우와~~ 성지 미사에 너무나 많은 분들이 오셔서 발 디딜 곳도 없었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900명 참석한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하시는 신부님께서 신나실까요? 아니면 90명 참석한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하는 제가 더 신날까요? 제가 더 신나지 않을까요?

맞아요. 많이 가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게 가져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밤 탄생하실 예수님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분께서 많은 것을 가지고 오셨나요? 아무 것도 없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또한 화려한 곳도 아닌, 너무나도 누추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행복은 장소에 구애받는 것이 아닙니다. 욕심만 없다면, 또한 사랑의 마음만 있다면 행복은 우리와 늘 함께 할 것입니다.

행복과 함께 맞이하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모두 함께 기뻐합시다.


성탄 준비를 잘 합시다.



참 맑고 좋은 생각(퍼온 글)

우리는 남의 단점을 찾으려는
교정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남의 단점을 찾으려는 사람은
누구를 대하든 나쁘게만 보려 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나쁜 면을 갖게 됩니다.

남의 나쁜 면만 말하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도 그 말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남의 좋은 면,
아름다운 면을 보려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진가를 찾으려 애써야 합니다.

그 아름다운 사랑을 보면 감동하며
눈물을 흘리고 싶을 만큼의 맑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남의 좋은 점만 찾다 보면 자신도
언젠가 그 사람을 닮아 갑니다.

남의 좋은 점을 말하면
언젠가 자신도 좋은 말을 듣게 됩니다.

참 맑고 좋은 생각을 가지고
나머지 날들을 수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코 끝이 찡해지는 감격을 가질 수 있는
티 없이 맑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그의 장점을 보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많이 칭찬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할 때마다 좋은 말을 하고,
그 말에 진실만 담는
예쁜 마음 그릇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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