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림 제4주간 수요일 (2004-12-22) |
| 독서 : 1사무 1,24-28 복음 : 루가 1,46-56 |
마리아의 노래 |
그때에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 ◆‘부자 되세요’라는 말로 새해 인사를 하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이 지극히 세속적인 인사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따뜻한 덕담을 제치고 뿌리를 내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만큼 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는, 권력을 휘두르지는 못해도 남의 권력에 휘둘림당하지 않길 바라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는 우리네다. 속된 물이 잔뜩 든 우리에게 마리아의 노래는 우리의 꿈이다. 도대체 마리아는 어떻게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마리아는 평탄한, 안정된 삶을 기꺼이 내려놓고 종의 삶을 선택하였다. 자신을 온전히 비워서 채워진 하늘. 그런 하늘을 품을 수 있었기에 이 노래가 나올 수 있었다. 지금도 마리아의 노래는 유효하다.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나 길거리를 배회하고, 가난 때문에 깨진 가정에서 겪는 아이들의 아픔과 고통이 이 땅을 뒤덮고 있다. 고통 한가운데에서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지금도 예수님을 기다리며 외치고 있다. 눈먼 소경의 외침이 예수님의 발길을 멈추게 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웃의 소리에 발을 멈춰 서서 마리아의 노래를 온몸으로 불러야 한다. 이 땅의 어둠을 볼 때마다 입으로는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종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마리아가 되기에 부족한 우리의 모습을 보며 가슴을 치며 고백해야 한다. 이 땅의 아픔은 예수님을 잉태하지 못하는 내 탓이옵니다. 아멘. |
| 박후임 목사(새터 교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