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 (2004-12-28) |
| 독서 : 1요한 1,5-2,2 복음 : 마태 2,13-18 |
하나 되는 순간 |
박사들이 물러간 뒤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알려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하고 일러주었다. 요셉은 일어나 그 밤으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대중하여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버렸다.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 ‘라마에서 들려오는 소리,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자식 잃고 우는 라헬, 위로마저 마다는구나!’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
| ◆두 살배기 아이들의 이유없는 죽음 앞에서, 위로마저 마다하는 고통 가운데 있는 어머니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한마디로 일축해 버리는 복음사가가 참 싫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복음사가처럼 되어가고 있다. 위로까지 마다 않고 아픔을,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것일까? 아무것도 없다. 어떤 말도, 어떤 몸짓도, 어떤 노래도, 함께하는 울음도 웃음도 위로가 될 수는 없다. 이러는 내가 정말 싫지만 나도 복음사가처럼 말을 한다.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힘들겠지만, 괴롭겠지만 아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돌아간 것인지, 만날 수만 있다면, 그래서 복음사가의 고백이 곧 어머니의 고백일 수만 있다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살아 있는 것이다. 아직도 내 안에 슬픔이나 고통이 있음은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고백이 가슴에서 나오지 않은 때문이다. 충분히 아파하고, 충분히 고통 가운데 있으면 하느님이 나와 함께 아파하면서 기다리고 계심을 만날 수 있다.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하느님과 하나 되는 순간 이루어지는 고백이다. 아멘. |
| 박후임 목사(새터 교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