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4주일]믿으신 분! (루카 1,39-45)

2015. 12. 20. 오전 6: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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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일]믿으신 분! (루카 1,39-45)


오늘은 성탄을 앞둔 마지막 주일인 대림 제4주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받아들이신 성모님을 복되시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가까이 오셨음을 믿고 기다리며, 임박한 성탄을 기쁨으로 준비합시다. 

 

성모 마리아의 부모이신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그리고 어린 마리아~~^*^


미카 예언자는 메시아를 예고한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태어날 것이며, 그가 평화가 되어 백성을 바른길로 인도할 것이다.(미카 5,1-4ㄱ)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제1독서).


'미카''누가 주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미카야'의 단축형이다. 미카의 고향 모레셋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4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었다.

아시리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략할 때 먼저 유다의 평원지대를 침략했으니, 틀림없이 이곳을 거쳐갔을 거라고 본다. 미카는 고향에서 아시리아 침략군의 진군을 보면서 국가적 재난이 예루살렘을 향해서도 다가가고 있음을 확인한다(1,8-16; 3,12). 

미카는 소예언서의 예언자들 가운데 호세아와 아모스와 더불어 8세기에 활동했던 마지막 예언자이다. 열두 소 예언서에서 6번째 책인 미카서는 하느님과의 수직 관계를 강조한 호세아서와 이웃과의 수평 관계를 강조한 아모스서의 메세지를 고루 포함한다. 

 9월 8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미카서 5장 1-4ㄱ절이 독서로 채택된 것새로운 통치자가 베틀레헴에서 탄생하리라는 메시아 신탁 때문이다. 

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영신적 메시아로 오시기 위해 성모님의 살과 피를 취하신,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고는 이 세상에서는 성모님의 탄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너 에프라타의 베틀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5,1~4ㄱ참조) 

이 신탁은 메시아를 다윗 가문과 연결시킨 사무엘서의 전통(1사무16장; 2사무5,2; 7,8)과 동정녀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이사야 예언서의 전통(이사7,10~17)이 합쳐진 형태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것을 예수님의 탄생과 연결한다(마태2,6; 참조: 요한7,42). 

메시아 시대가 오면, 야곱의 남은 자들이 민족 가운데서 크게 성장하여 수많은 민족을 굴복시킬 것이다(미카5,6~8). 그날이 오면, 주님께서 마술사, 점쟁이, 아세라 목상을 비롯하여 온갖 부정한것들을 없애 버리시고 이스라엘을 완전히 정화하실 것이다(미카5,9~14). 

우리는 보통 구세주 예수님을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정의(의덕)의 태양, 구원의 태양이라고

비유한다. 그러면 성모님은 무엇으로 비유할까? 

영원으로부터 성부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한 여인을 통해 구원자이신 성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계획하셨기에 초자연과 자연의 만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여인 중에 간택된 여인이신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성자 예수님을 이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시길 원하셨기에 성모님의 탄생은 구세사에서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여인, 하와의 교만과 불순명과 자유 남용으로 원죄가 들어왔고, 원죄로 말미암아 본죄와 고통과 죽음이 들어오고 인류는 첫 사람 안에서 멸망과 저주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는데, 이 멸망의 인간사(세속사)를 구원의 역사로 바꾸기 위해 선택된 둘째 여인,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탄생은 참으로 구세사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기에 성모님을 동쪽 하늘에 태양이 나타나기 전에 나타나는 여명, 서광, 먼동, 동쪽 하늘에 나타나는 첫번째 별인 샛별 등등으로 비유하여 표현한다. 레지오 마리애 까데나에 인용된 아가서 6장 10절은 먼동을 새벽빛으로 번역했다. 먼동이 있고, 새벽빛이 있고, 샛별이 있는 날은 반드시 태양이 뜬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에겐 성모님의 어머니이신 안나에게서의 수태, 그리고 성모님의 탄생 자체가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왜냐하면, 성모님을 통해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때문이다.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인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구세주의 어머니, 천주의 모친 탄생 축일에 우리가 자녀로서 무엇을 기쁨과 감사의 선물로 봉헌할 것인가? 

어머니께서 기뻐하실 선물이 무엇일까? 

우리 마음과 삶의 한복판에, 예수님을 참 주인으로, 주님으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로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임금(왕; 주인; 주님)으로서의 예수님의 권위와 자리를 찾아드리는 것이 어머니의 기쁨과 소명이 아니겠는가? 

회개의 생활개선과 악습고치기, 성체 조배와 말씀 묵상, 그리고 묵주의 기도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은총의 하루가 되도록 하자. 

오늘 하루만이라도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릴때 예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 중재하시는 성모님의 전구에 귀를 기울여 응답하실 것이다.


            

히브리서는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몸을 마련해 주셨고, 인간의 육을 취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몸을 바치셨음을 선포한다. 율법에 따른 번제와 속죄를 대체하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히브리 10,5-10)
형제 여러분, 5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제2독서).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5~7) 

 히브리서 10장 5~7절까지는 시편 40장 7~9절을 인용한 것이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로 번역된 '튀시안 카이 프로스포란 우크 에텔레사스'(thysian kai prosphoran uk ethellesas; sacrifice and offering you did not desire)에서 서술어 '에텔레사스'(ethellesas; you desired)라는 2인칭 단수 부정(不定) 과거'우크'(uk; not)가 붙었다.

구약 성경에는 본문과 유사한 표현들이 있다. 호세아 예언자의 입을 빌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호세6,6)라고 말씀하셨다. 

사무엘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임의로 제사를 드린 사울 왕에게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1사무15,20) 라고 지적하였다. 

제사 제도를 제정하고 허락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었다. 그 제사 행위를 통해 당신 백성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범죄하지 않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다. 

무수한 제사를 드리면서도 죄에서 떠나지 않았던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이사1,11~13)라는 충격적인 책망을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제사 자체를 목적으로 착각하고 죄에서 떠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제사드리는 데에만 전념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히브리서 서간의 수신자들 역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의 믿음을 버리고, 구약의 제사 제도로 회귀하려는 유혹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라고 번역된 '소마 데 카테르티소 모이'(soma de katertiso moi; but a body you prepared for me)히브리어 맛소라 본문과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오즈나임 카리타 리'(oznaim karitha li)로 표기되어 있고, 새 성경 시편 40장 7절에는 '오히려 저의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로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귀를 열어 주셨습니다'라는 표현은 본래 '순종하도록 했다'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는 히브리인들의 관습에서 나왔다. 유대인들은 종을 부릴 때 6년 동안만 일하게 하고, 일곱째 해에는 자유로이 놓아주어야 했다(신명15,12). 그러나 종이 주인을 평생토록 떠나지 않겠다는 자유의지를 밝히게 되면, 주인은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어 평생 종이 되게 할 수 있었다(신명15,16.17). 

따라서 종이 자발적으로 자기 귀를 뚫도록 주인에게 맡기는 것은 그가 평생 기쁨으로 주인의 뜻을 받들어 섬기겠다는 표시였다. 이런 측면에서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뚫으셨습니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 다음으로 히브리서 저자가 인용한 70인역(LXX)의 경우를 살펴보면,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라는 표현이 '주님의 뜻을 기꺼이 복종하겠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며, 이런 측면에서 이 말이 '귀를 열어 주셨다'라는 표현과 같다는 견해를 가진다. 

이러한 뉘앙스를 살려 본문을 설명하면, '내가 주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고 순종하도록 주님께서 그 수단으로써 한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가 될 것이다. 

한편, '마련해 주셨습니다'에 해당하는 '카테르티소'(katertiso)2인칭 단수 동사로서 그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하느님'이시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뜻을 순종하여 속죄의 제물을 드리도록 새 계약의 제물, 곧 '몸'을 준비하신 분은 구속 사업의 경륜을 주관하시는 성부 하느님이신 것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번제물'에 해당하는 '홀로카우토마타'(hollokautomata)'전부'를 뜻하는 '홀로스'(holls)'불사름'을 뜻하는 '카우토스'(kautos)의 합성어인 '홀로카우토마'(hollokautoma)의 복수형으로서 '모두 태워 드리는 번제물'을 의미한다. 이 제사에 대한 규정은 레위기 1장 8절, 9절, 12절, 13절 등에 잘 나와 있다. 

또한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로 번역된 '우크 유도케사스'(uk eudokesas; you were not pleased)'만족하지 아니하신다' 또는 '동의하지 아니하신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구약의 제사 제도에 대해 나타내시는 반응이다. 구약의 제사는 모두 동물을 제물삼아 드린 제사였다. 이 제사들로는 인간의 죄를 제거할 수 없었다. 종교 혹은 예배의 본질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는 것인데, 구약의 제사들은 한 사람도 하느님께 인도하지 못했던 것이다(히브10,1). 

사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제정하신 분은 하느님이신데, 바로 그 하느님께서 제사 제도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제사를 미워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약 제사로서는 하느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제사의 한계성을 밝히는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을 완전하게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구약 제사와 다른 그 무엇요구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그 구속 성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이다. 이것만이 완전한 구원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엄중한 죄의 결과를 경계하며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측면에서, 그리고 장차 올 새 계약(신약)에 대한 일시적인 예표를 삼고자 하는 측면에서 제사 제도 명한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구약의 제사 자체보다는 그 이면에 담긴 순종을 원하셨고 (1사무15,22.23; 시편51,18.19), 백성들이 그 제사 제도를 통해 죄에서 떠나는 것(이사1,11~17; 호세6,6)과 장차 올 온전한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두루마리에' 

'두루마리'로 번역된 '엔 케팔리디 비블리우'(en kephallidi bibliu; in the volume of the book; in the scroll; the roll of book)'두루마리 책'을 가리킨다. 본절에 언급된 두루마리 책은 임금이 지켜야 할 규정을 기록한 신명기 17장 14~20절, 또는 순종에 대해 기록한 신명기 28~30장을 지칭한다는 견해들이 있다.

이 견해를 포함하여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이 모든 성경의 중심이라고 말씀하신 점에 비추어 볼때(요한5,39), 이것은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사실 몇몇 성경 구절들만이 아니라 구약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께로 집중되어 있다.  

성경의 어떤 책, 어떤 장이든지 그것을 해석할 때에 그리스도를 배제하고서는 구원사를 전개해 가시는 하느님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가 없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내용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셨다(필리2,8).

따라서 '이루러'로 번역된 '포이에사이'(poiesai; to do)'포이에오'(poieo)부정사이다. '이루다','행하다', '만들다'를 뜻하는 '포이에오'(poieo) 동사는 모든 활동을 포괄하여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측면에서 하느님의 '뜻'에 해당하는 '텔레마' (thellema; will)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께서 아버지와 갖는 관계의 일면 본다. 그분께서는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기꺼이 순종하고자 하셨다. 특히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번민에 싸여 기도하신 내용 가운데도 그분의 이러한 마음이 잘 드러난다(마태26,39).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찾아가신다. 엘리사벳은 태중의 요한과 함께 성모님을 맞이하며, 성모님을 주님의 어머니라 부른다.(루카 1,39-45)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복음).      

오늘의 묵상

마리아는 유다 산골 동네에 살고 있는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은 태중에 잉태된 메시아와 그 선구자와의 첫 번째 만남이기도 합니다. 엘리사벳과 그의 태중의 선구자 요한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반면, 마리아와 그분 태중에 잉태된 아기 예수님은 사람들 사이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대표합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복되고 위대하심을 찬양하였고, 태중의 요한은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엘리사벳의 감사에 넘친 감탄은, 주님의 탄생이 인류가 오랫동안 고대하던 기다림의 결실이며 그 탄생으로 평화와 구원의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고백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취하시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시는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께서 장차 겪으실 것이 무엇인지,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탄이 즐거운 분위기라면 파스카 성삼일은 장엄하고 진지하지요. 부활의 기쁨도 성탄의 기쁨과는 종류가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제2독서는 예수님께서 몸을 지니고 태어나신 것이 제물로 바쳐지시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예수님의 몸은 우리를 위해 제물로 마련된 몸이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시려고 이 세상에 탄생하시기에 육화의 목적과 결과는 여기까지 이릅니다.

성탄은 아이들 생일을 축하하듯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하루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 모든 결과를 감수하시며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마우신 왕진주님!! 대림 제4주일을 마음 다해서 축하드려요...**

<마리아의 믿음과 기쁨> 송영진 모세 신부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루카 1,39)."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난 것은 엘리사벳이 요한을 잉태한지 여섯째 달 어느 날이었습니다(루카 1,26). 그리고 천사가 예수님 탄생을 예고하고 마리아가 응답하면서 마리아는 바로 예수님을 잉태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의 잉태 사실을 알려 주었기 때문에(루카 1,36), 마리아는 그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에 대해서, 예수님을 잉태하게 된 마리아가 두려움과 고민과 혼란스러움 등을 호소하려고, 그래서 위로를 받으려고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생각은 전혀 근거 없는 억측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두려워했거나 고민했다고 생각할 만한 내용은 없고, 마리아의 믿음과 기쁨만 보입니다.('서둘러' 라는 말은 마리아의 기쁨을 나타냅니다.)


또 천사의 말을 직접 확인해 보려고 엘리사벳에게 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생각도 근거 없는 억측입니다. 만일에 확인해 보려고 갔다면, 믿음이 온전하지 않았다는 뜻이 되고, 그렇다면 마리아는 불완전한 믿음 속에서 불완전한 응답을 한 것이 됩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확신했고, 엘리사벳에게 일어난 일도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확신했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마리아는 왜 엘리사벳을 방문했을까? 엘리사벳의 잉태를 축하하기 위해서, 또 엘리사벳을 도와주기 위해서 방문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의 잉태를 알리고 축하를 받으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 말씀에는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마리아는 어떤 인사말을 사용했을까? "평화를 빕니다." 라는 이스라엘식 인사말이었을까? 아니면, "기뻐하십시오." 라는 그리스식 인사말이었을까?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기뻐하여라." 라고 인사했습니다. 마리아도 엘리사벳에게 "기뻐하십시오." 라고 인사했을 것입니다. 단순히 관습적인 인사말이 아닌, '하느님의 기쁨'을 전해 주기 위한 인사...그리고 이 인사말에는 자기 자신의 기쁨도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출산을 도와주기 위해서, 그리고 엘리사벳의 믿음을 도와주기 위해서 갔을 것입니다. 출산을 도와주기 위해서 간 것은 사촌 동생으로서 간 것이고, 이것은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믿음을 도와주기 위해서 갔다는 것은 신앙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세례자 요한의 사명을 모르고 있었습니다(루카 1,25). 즈카르야가 천사의 말을 전해 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즈카르야는 자기가 믿지 못하는 것을 아내에게 말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말을 못하게 되어서 전해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래서 엘리사벳은 자기가 아기를 낳게 되었다는 것만 기뻐하고 있었는데, 마리아를 만나고 나서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낳게 될 아기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것이고, 마리아가 낳게 될 아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마리아는 엘리사벳뿐만 아니라 즈카르야의 믿음도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천사의 말을 믿지 못했던 즈카르야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당시 상황에서는 마리아 외에는 없었습니다. (마리아 외에는 누가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즈카르야는 마리아 덕분에 믿게 되었을 것이고, 믿음 속에서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즈카르야가 계속 못 믿고 있다가 아기 탄생을 보고 믿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즈카르야의 노래'를 보면, 그는 천사가 말하지 않은 메시아의 사명에 대해서도 찬미하고 있습니다(루카 1,68-79). 아마도 마리아는 천사가 말해 준 것을(루카 1,30-33) 즈카르야에게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가 구약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이스라엘의 희망을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마리아가 전해 준 대로 말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사람들 모르게 은밀하게 만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두 어머니의 만남과 대화를 공개적인 증언과 고백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두 어머니는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서로에게 말하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믿음'은 혼자서 믿는 것으로 그쳐도 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일이고, 널리 확산시켜야 하는 일입니다(미태 10,26-27). 믿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믿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뻐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성탄절은 믿는 사람들의 축제이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축제입니다.
지금 성탄절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믿음과 기쁨이 있는가? 혹시라도 성탄절을, 해마다 찾아오는 연례행사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대림 제4주일l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 1,45)

여러분은 행복하신가요?
아니면 불행하신가요?

왜 행복하고 왜 불행하다고 느낄까요?
행복하다 느낄 때가 있고 나는 참 불행하다 느낄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이 때에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
참된 행복은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데서 비롯된다는 진술을 듣습니다.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것은 결국 잠시 지나가는 것일 뿐이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 하느님 말씀에 대한 믿음
그분이 하신 약속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살 때
참으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네요.

여러분은 하느님을 믿으시지요?
그분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다는 것도 믿으시지요?
그분을 믿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도 믿으시지요?

그러니 여러분은 참으로 복되십니다.
성모님도 그렇게 믿으셨기에 정녕 복되신 분이셨으니까요.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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