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일] 전교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마태 28,16-20)
2015.10,18: 오늘은 ‘전교 주일’이다. 교회는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고자 1926년부터 해마다 시월 마지막 주일의 앞 주일을 ‘전교 주일’로 정하여, 신자들에게 교회 본연의 사명인 선교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오늘의 특별 헌금은 교황청 전교회로 보내져 전 세계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는 데 쓰인다.
이사야는 종말에 이루어질 일을 내다본다. 모든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찾아와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게 될 때, 세상에는 전쟁이 사라지고 민족들 사이에 평화가 깃들게 될 것이다.(이사 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시편 98(97),1.2-3ㄱㄴ.3ㄷㄹ-4.5-6(◎ 2 참조 또는 3ㄷㄹ)
◎ 주님은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주님의 이름을 받드는 모든 이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 믿음은 복음을 듣는 데에서 온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 없다면 듣고 믿을 수 없을 것이다.(로마10,9-1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라고 명하신다.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할 때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마태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언젠가 오늘의 제2독서 말씀을 묵상하다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아름답다는 구절이 눈에 크게 들어왔습니다. 통상적으로 복음은 ‘말과 입’으로 전한다고 생각하는데, 바오로 사도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려고 발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로마 신자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을 때는 이미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경험한 다음이었지요. 요즘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었기에, 어쩌면 그는 사람들을 만나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보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여행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수고는 아름다웠는데, 더욱이 복음을 위한 수고였기 때문이지요.
초창기 우리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던 분들은 대부분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이었는데, 이 회에서는, 이 구절을 생각하며 선교지로 떠나는 이들의 발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고 합니다. 박해가 한창인 선교지를 향하여,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선교사들의 발에 입을 맞추던 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발들이 복음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발들에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시다.
아울러 인류 구원 역사는 파견의 역사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파견하셨고,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께서는 성령을 이 세상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하여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당신 제자들과 우리를 오늘 파견하십니다. 전해 받은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우리의 ‘발’도 아름답게 수고하기를 빕니다.
<선교활동> 송영진 모세 신부
1) 선교활동을 왜 해야 하는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형제이고 가족입니다. 형제에게 복음을 전해서 함께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가족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에 안 믿는 사람들이 '적'이라면, 그들이 멸망당하기를 바라는 것이 더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적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을 받은 베드로 사도는 첫 설교를 할 때, '안 믿는 사람들'을 '형제 여러분'이라고 불렀습니다(사도 2,29). 이것은 의례적으로 사용한 호칭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형제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한 호칭입니다.
자기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것은 부모들의 자연스러운 심정입니다. 선교활동은 바로 그런 심정으로 하는 일입니다. 가족에게 가장 좋은 것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선교활동을 합니다. 사람들을 형제로서 사랑하니까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2)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쁨'을 나누는 마음으로, 그래서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사막에서 갈증에 시달리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했을 때, 가족들을 불러 모아서 물을 함께 마시려고 하는 것처럼...
좋은 예가 안드레아 사도입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요한 1,40-42)." 안드레아는 메시아를 만난 기쁨을 자기 형과 나누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선교활동입니다.
만일에 '구원의 복음'을 자기 혼자서만 독점하려고 한다면,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감추고 있다면?(혼자서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그런 경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 4,21-25)." 등불 구실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불은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복음의 은총을 나누지 않고 가지고만 있다면 그 은총을 잃게 될 것입니다.
3) 언제 해야 하는가? 지금, 그리고 항상 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2티모 4,2)." 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선교활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지금입니다.) 선교활동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복음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도 있고, 반대로 박해를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박해'도 '기회'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루카 21,13)." 이 말씀을 "박해를 기회로 삼아라." 라는 가르침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안 믿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복음을 믿고 받아들여야 할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각 개인의 수명이 한정되어 있고, 임종의 날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죽기 전에, 바로 지금,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종말이, 즉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시간이 무한정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4) 어디에서 해야 하는가? 지금 자기가 있는 '이곳'에서부터 해야 합니다. 어디 멀리 떨어져 있는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선교활동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일도 분명 필요하고, 해야 하지만, 가장 먼저 자기 옆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5) 누가 하는가? 선교활동은 선교사로 임명된 사람들만 하는 일이 아니라,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누가 하는가?" 라는 질문의 답은 "바로 나"입니다. 또 선교활동은 내가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도와주시는 일이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내가 도와드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결국 예수님과 내가 함께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명령만 하시고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라는 예수님의 약속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일하겠다." 라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6)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입니다. 각 개인의 입장에서는 죽을 때까지입니다. 신앙인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계속 신앙을 증언하고,고백하고,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7)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모든 사람의 구원이 최종 목표인데, 그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때까지 기다려 주실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 마감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로마 10,15)
여러분들의 발을 한번 보세요.
이쁘게 잘 생겼나요?
못 생겼나요?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보셨나요?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을 보셨나요?
참 못 생겼지요.
그러나 정말 아름다운 발 아니던가요.
예쁜 발
못 생긴 발이 아니라 아름다운 발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아름다운 발을 만드는 방법은
기쁜 소식을 열심히 전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복음(福音)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죄인에게 죄사함 받았다고 하는 것이 기쁜 소식이고
병자에게 병이 나았다고 하는 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가난한 이가 배부르게 되고
눈 먼 이가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뛰게 되고
감옥에 갇힌 이가 풀려나게 되고
억울한 이들이 한을 풀게 되고
죽은 이들이 살아난다는 것이 기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바로 그런 기쁜 소식을 전하셨고
사도들이 그런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하라 하셨습니다.
전교주일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쁜 소식(good news)을 열심히 전하는 일입니다.
슬픈 소식, 나쁜 소식(bad news)을 퍼다 나르지 마십시오.
기쁜 소식을 전하는 곳마다 기쁨과 행복이 번져가고
나쁜 소식을 전하는 곳마다 어둠과 불행이 번져갑니다.
그래서 세상 끝까지 기쁜 소식을 전해야만 합니다.
오늘 기쁜 소식 많이 많이 전하시길 축원합니다.

연중 제29주일 복음 (마태28,16-20)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18ㄴ~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에 해당하는 '파사 엑수시아 엔 우라노 카이 에피 테스 게스' (pasa eksousia en ourano kai epi tes ges;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에서 '하늘과 땅의'로 번역된 '엔 우라노 카이 에피 테스 게스'(en ourano kai tes ges)는 '하늘 안에 그리고 땅 위에'로 직역되는데,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모든 영역'을 말한다.
그리고 '권한'에 해당하는 '엑수시아'(eksousia)는 신약에서 '권세', '권능', '권리','힘', '자유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중보자(중재자)로서의 권한'이 강조된다.
또한 '나는 ~받았다'에 해당하는 '에도테 모이'(edothe moi; was given to me)에서 '에도테'(edothe)는 '주다'는 뜻을 지닌 '디도미'(didomi) 동사의 직설법 부정과거 수동태 3인칭 단수로서 '그것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 동사가 수동태로 쓰인 것은 성부 하느님에 의해 주어진 것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동사가 부정(不定) 과거형으로 쓰인 것은 예수님께서 받은 권한이 단번에 받은 것임을 나타낸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화(강생) 이전에도 성자로서 성부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구원과 심판의 권한을 가지셨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자를 고치시며, 자연계와 영계를 제어하는 권한을 나타내보이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 권한은 신성(神性)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근본적으로 지니셨던 권한에 비하면 제한적이셨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십자가상 구속(대속) 사업을 완수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잠시 성부 하느님께 맡겨 드렸던 본래의 권한을 다시 받아 회복하신 것이다.
그래서 구속 사업과 부활 이후에는 성부 하느님께서 오직 구속 사업을 완수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과 심판의 권한을 행사하기로 하셨다(요한5,20~22.30).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주어진 그 권한을 가지고, 마태오 복음 28장 19절에서 제자들에게 선교 명령을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영역인 하느님의 나라는 선교를 통하지 않고서는 확장되고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너희는 가서'로 번역된 '포류텐테스'(poreuthentes; go)는 복수 2인칭 명령 분사이며, '너희'는 직접적으로 승천 직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을 지칭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 (사도1,8참조).
그리고 제자로 삼아야 할 대상은 '모든 민족'이다. 여기서 '민족'으로 번역된 '에트네'(ethne)는 '에트노스'(ethnos; nations)의 목적격 복수로서 제자를 삼는 대상이다.
또한 '제자로 삼아'에 해당하는 '마테튜사테'(matheteusate; make disciples; teach)는 '마테튜오'(matheteuo)의 복수 2인칭 명령형 동사이다. 이 동사는 '너희는 가서'에 해당하는 '포류텐테스'(poreuthentes), '세례를 주고'에 해당하는 '밥티존테스'(baptizontes), '가르쳐'에 해당하는 '디다스콘테스'(didaskontes)의 세 개의 분사에 둘러싸여 있다.
원문의 뜻은 '제자로 삼는 일'이 '가는 것'과 '세례를 주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지상 명령의 궁극적인 핵심을 보여 주는데, '제자로 삼는 일'이 가장 중요한 중심 주제이며, 나머지는 이에 수반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세례를 주고'에 해당하는 '밥티존테스'(baptizontes; baptizing)는 현재 분사인데, 현재형이라는 점에서 세례가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데, 세례가 바로 제자로 삼는 수단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밥티존테스'(baptizontes)의 기본형인 '밥티조'(baptizo)는 본래 '담그다'는 뜻을 지닌 '밥토'(bapto)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동사가 '세례를 받다'(사도1,5)는 세례 의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일 때에는 '담그다'와 '씻다'(루카11,38참조)는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가 있다.
먼저 이 동사를 '담그다'는 의미로 볼 때, '세례'는 몸을 물에 담그는 의식을 나타내며, 영적으로 믿는 이들이 세례 성사를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하심에 함께 참여한다는 뜻이 강조된다(루카12,50; 로마6,3). 또한 이 동사를 '씻다'는 뜻으로 보면, '세례'는 '죄의 씻음', '죄의 용서'라는 의미가 강조된다고 볼 수 있다(사도2,38; 22,16).
실제로 세례 성사는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뜻과 더불어 죄사함의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함이 분명하게 계시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삼위일체 하느님 가운데 한 분이심을 명확하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