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군인)주일]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 (마르 10,2-16)

2015. 10. 4. 오전 6:4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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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군인)주일]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 (마르 10,2-16)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는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도 만들어 주신다. 남녀는 서로에게 가장 알맞은 협력자가 되며, 둘이 결합하여 한 몸이 된다.(창세 2,18-24)
18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19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20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21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22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2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2010년 10월 3일 일요일 [(녹)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시편 128(127),1-2.3.4-5.6(◎ 5 참조)
◎ 주님은 한평생 모든 날에 복을 내리시리라.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
○ 네 아들의 아들들을 보리라. 이스라엘에 평화가 있기를! ◎      

[전례] 10월 3일(녹)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인간이 되시고 죽음을 겪으시고, 부활하시어 영광스럽게 되신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영광으로 이끄시고 거룩하게 해 주신다.(히브 2,9-11)
형제 여러분, 9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10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2014년 10월 5일 주일 연중 제27주일 (군인 주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근거로 예수님께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되는지 묻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부부를 한 몸으로 맺어 주셨으니 사람이 그 결합을 갈라놓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창조 때의 하느님 계획이다.(마르10,2-16)

그때에 2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주일복음(다해) 10-10-03] - 연중 제27주일 / 군인주일(루카 17,5-10)

 오늘 전례 말씀은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에 대하여 가르침을 줍니다. 혼인은 남녀 간의 사랑의 계약만이 아니라 인간 생활의 기본 질서로서, 하나의 제도이며 신약에 와서는 칠성사 가운데 하나의 성사입니다. 혼인 안에서 남녀는 서로를 보호하고 상대방의 약점과 한계를 보완함으로써 더욱 성숙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뒤 그에게 온갖 짐승과 새를 데려다 주셨지만, 사람은 알맞은 협력자, 적합한 짝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은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처럼 남녀는 서로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배우자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입니다.
남녀 구별 없이 인간은 똑같은 근원에서 나온 한 혈육이요, 그에 따른 공동 운명이기에 서로 사랑하고 아껴 주어야 한다고 제2독서도 강조합니다. 이 연대 의식, 공동체성을 생각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됩니다. 참으로 인간에게 알맞은 협력자, 짝은 인간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더구나 혈연관계도 아닌 부부가 평생 사랑하는 것은 자녀나 형제나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고 더 큰 희생을 요구하지요. 그래서 요즈음 누군가에게 정을 주면서 상처를 입기보다는 차라리 반려동물을 기르거나 화초 등을 키우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께서도 인간을 사랑하시기가 결코 쉽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하느님께서 다른 어떤 동물이 아니라 오직 인간 때문에 당신의 창조 사업을 후회하셨지만,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셨듯이, 우리가 “알맞은 협력자”인 배우자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의 존귀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배우자를 포함하여 인간에 대한 인격적인 사랑과 신의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면 우리의 나날과 미래는 위안이 되고 희망적일 것입니다.      

한 몸 공동체....(군인주일)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 송영진 모세 신부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마르 10,13-16).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안수'를 해 달라고 청합니다.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은 것은 아마도 예수님을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중이었다면 가르침을 방해하지 말라고 그랬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쉬시는 중이었다면 휴식을 방해하지 말라고 그랬을 것입니다.

(아니면,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것 자체를 싫어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이 모여 있는 곳에 왜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가?" 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언짢아하시며'는 원문대로 번역하면 '화를 내시며'입니다.)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것은 제자들이 크게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무슨 의도로 그랬든지 간에 그들의 행동은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를 막은 일이 되었고,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고, 그래서 모든 사람을 만나시는 분입니다. 사람들 쪽에서 생각하면,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누구나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은 더욱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여기서 '어린이'는 작고 가난하고 힘없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즉 소외 계층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 당시에 실제로 어린이들은 그런 취급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지금 이 상황을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셨을 때의 상황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세리들도 당시에는 소외 계층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셨을 때, 바리사이들은 "왜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가?" 라고 비난했습니다.(마르 2,15-16).
바리사이들의 비난은 예수님께서 소외 계층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가로막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을 만나셔야 한다는 뜻인데,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은 특별히 더 만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어린이들을 막은 제자들의 행동은 세리들과 어울린다고 예수님을 비난한 바리사이들의 행동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화를 내셨을 것입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차별 대우를 하면 안 되고, 어떤 이유로든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막으면 안 됩니다. 만일에 소외 계층 사람들이 차별 대우를 받거나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막힌다면, 그런 곳을 예수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그런 곳을 떠나버리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라는 말씀과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뜻이 같습니다. 이 말씀들의 뜻은,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누구든지 회개하여 어린이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어린이' 라는 말은 하느님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앞에서는 '어린이'가 작고 가난하고 힘없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말했는데,
아무래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또 이 세상에서는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에 더욱더 하느님만 믿고 의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힘없는 사람들과 예수님 사이를 막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힘이 있고 가진 것이 많아서, 자기의 힘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만 믿는 사람들은 그 교만 때문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실제로는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리기 싫어서 하느님 나라에 스스로 안 들어가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혼인과 이혼'에 관한 가르침을 어린이에 관한 가르침에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혼하면 안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원칙인데, 그래도 이미 이혼을 해서(이혼을 당해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은(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도 예수님의 위로와 보호가 필요한 '예수님의 양들'입니다.
(많은 경우에 그들은 힘없는 어린이 같은 사람들의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교회는(사제들은) 사람들에게 이혼하면 안 된다는 상투적인 말만, 또는 혼인성사 교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2015년 제48회 군인주일 담화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 2012-10-7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르 10,9)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노사연의 만남 잘 아시죠?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의 만남들을 돌이켜보면
그 하나하나가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 어떤 만남도 인위적으로 떼어놓아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셨으니
떼어놓는 것도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느님의 몫입니다.
하느님의 계획과 축복을
감히 어떻게 방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 안에 부모를 만나고 형제들을 만납니다.
그분의 계획안에
이런 사람을 만나고 저런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습니다.
그 인연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라고
오늘 말씀은 재촉하시네요.

오늘 우리 각자의 소중한 만남을 돌아봅시다.
그 인연들에 감사하고
축하하는 날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모든 프란치스칸들과
프란치스코 이름을 지닌 이들에게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축일:10월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St. FRANCIS of Assisi
Sankta Francisko
Solemnity of Saint Francis of Assisi
San Francesco d'Assisi Patrono d'Italia
(Assisi, 1182 - Assisi, la sera del 3 ottobre 1226 )
Born:1181 at Assisi, Umbria, Italy as Francis Bernardone
Died :4 October 1226 at Portiuncula, Italy
Canonized :16 July 1228 by Pope Gregory IX
Francesco = libero, dall'antico tedesco

 

 

첼라노는 성 프란치스코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중병으로 쇠잔하여 모진 고통을 당하며 죽음에까지 다다르자, 그는 자신을 알몸으로 맨땅에 눕히게 하였다...

그렇게 땅바닥에 뉘어진 채 그는 거칠은 옷을 벗고

습관대로 얼굴을 하늘로 향하였다. 그의 온 신경을 하늘의 영광에 쏟으며,

그는 오른쪽 옆구리의 상처를 왼손으로 감싸서 보이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가 할 일을 마쳤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이 할 일을 가르쳐 주시기를 빕니다.’”

(첼라노 제 2생애 216항).

“형제들이 오열하였고, 위로할 길 없는 신음에 빠져 있는 동안에,

거룩하신 사부님은 그에게 빵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가 강복을 하고 빵을 떼어 작은 조각들을 각 형제들에게 먹으라고 나누어 주었다.

복음서도 가지고 오게 하여 요한복음을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부터 읽으라고 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는 주께서 그의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으로 거행하신 지극히 거룩한 만찬을 경건히 되새기며

자기 형제들에게 지니고 있던 깊은 사랑을 보였다.

그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며칠 동안을,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동료들에게

자기와 함께 그리스도를 찬미하자고 가르치며 찬미로 보냈다.

 

그가 온 힘을 다하여 다음 시편을 노래하였다:

‘목소리 높히어 주께 부르짖나이다. 소리소리 지르며 주께 비옵나이다.’

그는 모든 피조물에게 권유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였고,

전에 그가 지은 노래를 빌어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그들을 열심히 일깨웠다.

 

그는 누구에게나 소름끼치는 일이고 저주스럽기만한 일인 죽음 그것을 찬미하도록 하였고,

죽음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하여 자기 안에 죽음이 머물도록 초대하였다:

‘나의 자매 죽음이여, 어서 오십시오.’”(첼라노 제 2생애 217항).

 

 

"주님이 다른 사람을 통하여 말씀해 주시고 이루어 주시는 선보다

자기를 통하여 말씀해 주시고 이루어 주시는 선을

더 많이 자랑하지 않는 그런 종은 복됩니다."(권고17)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유언(1-5)

 

1) 주님이 나 프란치스꼬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

내가 죄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2)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3)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4) 그리고 주님이 성당에 대한 크나큰 신앙심을 주셨기에, 다음과 같은 말로 단순하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5)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써 세상을 구속하셨사오니,

우리는 여기와 전 세계에 있는 당신의 모든 성당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

 

 

 

 

              THE SAN DAMIANO CROSS

 

가난하시고 겸손하시며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프란치스꼬의 시대는 교황권이 절대적인 경지에 오른 시기였고 따라서 교회의 입장에서는 황금기인 시대였다.

지상의 왕권은 교황권에 예속되어 있었다.

이 시대를 풍미한 그리스도관은 부활,승천하셔서 전능하신 하느님 오른 편에 앉아계시면서

지상의 대리자를 통해 통치하시고, 영광중에 재림하시어 심판하실 왕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세상을 통치하고,

세속의 권세는 영적인 권세인 교황권에 굴복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란치스꼬가 복음서를 통해서 발견한 그리스도는 그와 정반대되는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가난하시고 겸손하시며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 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란치스꼬와 그의 제자들이 따르게 될 그리스도는 영광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가난하게 사셨고 겸손하게 사셨으며

결국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벌거벗은 채로 못박히셨던 그 그리스도인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관은 교회와 모든 크리스챤에게 회개를 거듭 요청하게 된다.

 

 

성 프란치스코를 청빈과 겸손으로 그리스도와 같아지게 하신 하느님,

저희도 그의 길을 따라 성자를 닮으며 진정한 사랑으로 당신과 결합되게 하소서.

 

 

 

 

하느님의 인간의 사랑에 대한 크나큰 사랑에 감동되어 우시는 성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신 그분의 사랑을 한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첼라노 제 2생애 196항).

첼라노는 또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 그리스도와 수난을 큰 소리로 외치고 슬퍼하며 울음을 그칠 날이 없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상처를 기억하느라 길거리를 한 숨으로 채웠고, 어떤 위로도 마다하였다.

절친한 친구 하나를 만나 그에게 자기가 슬퍼하는 이유를 알리자,

이내 그의 친구도 비참한 마음이 들어 눈을 글썽였다.”(첼라노 2생애 11항).

이 그림은 그렉치오 성당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곧 우리의 연약함이며,

매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권고5)

 

 

작음과 형제애의 영성

 

프란치스꼬회의 공식명칭은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이다.

이 명칭은 바로 프란치스칸 영성을 요약해 주고 있다.

작음(minoritas)과 형제애(fraternitas)를 바탕으로해서 복음적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이 작음의 정신은 그 안에 가난과 겸손이라는 덕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작은형제들은 가난하시고 겸손하신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의 삶을 본질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가난한 자가 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하나가 되며

그들로부터 복음화되고 복음화시키는 것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인식한다.

또한 가난한 자들처럼 일과 노동을 통해 땀흘려 일하고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며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처럼 하느님께 신뢰하며 복음적 불안정의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일과 노동은 생계유지의 제일차적인 수단이며 나머지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존하며

그분이 보내주시는 은인들의 애긍을 통해서 살아가게 된다.

 

형제애의 정신은 사랑과 순종을 전제로 한다.

프란치스꼬는 수도회 개념보다는 형제회 개념을 더 중시하였다.

우리 모두는 맏형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들이라는 것이다.

이 형제애는 "어머니가 자식을 기르고 돌보는 이상으로 형제들 상호간에 기르고 돌보는 정신"이다.

이러한 형제애는 가난 안에서도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를 가능케 한다.

형제 상호간의 사랑과 애정어린 순종은 기쁨의 영성을 프란치스칸 영성의 특징적인 요소로 부각시켜 준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체험되는 형제애는 신분계급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로 확장된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크리스챤이든 이교도이든 원수이든 강도이든 성한 사람이든 병자들이든 모든 이가

한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로서 받아들이도록 해 준다.

더 나아가 프란치스꼬가 그랬듯이 이 형제애는 자연과 우주 만물에 대한 사랑으로 더욱더 확장된다.

바로 우주적인 형제애, 만인의 형제가 되는 것이 프란치스칸 형제애의 본질이다.

 

작은형제회홈에서 www.ofm.or.kr

 

 

Stigmatization of St Francis - GIOTTO di Bondone

1300.Tempera on wood, 314 x 162 cm.Musee du Louvre, Paris

 

1224년 9월 프란치스꼬는 라 베르나 산에서 오상(五傷)을 받았다.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상(像)이 된 그는,

몸이 몹시 불편했지만 여전히 이탈리아 중부 지방을 두루 돌아다녔으며,

가는 곳마다 공경과 성인으로 칭송을 받았다.

1226년 봄 그가 시에나에 있을 때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마지막 바람의 간곡한 당부를 받아쓰게 했다.

그는 모든 형제들이 그들 가운데서는 사랑을, 가난 부인에게는 충실을,

교회의 고위 장상들과 성직자들에게는 존경과 순종을 실천하라고 역설하며 그들을 축복했다.

 

성인의 원의에 따라 형제들이 프란치스꼬를 형제회의 요람이라 할 뽀르찌운꿀라로 모셔갔다.

바로 여기에서 프란치스꼬는 그가 내용을 보충한 마지막 유언을 받아쓰게 했고,

그 본문은 타인의 문학적 수정 없이 프란치스꼬의 언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이 유언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회개와 복음적 소명에 대해 주님께 드리는 뜨거운 감사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이 친히 홀로 형제회를 창설하셨다는 확인이었다.

그는 초창기의 완전한 가난, 단순, 겸손을 회상하며 특히 육체 노동에 대한 기쁨을 회상하였고,

모든 형제들이 어떤 일에든 종사하고 일할 줄 모르는 형제는 일을 배우기를 원하였다.

애긍은 일이 충분한 보수를 받지 못할 때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죽음에 임박하여 간곡하고 전에 없이 엄하게 당부들을 하였지만

그는 자신이 또 하나의 회칙을 추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끝맺고 있다.

Madonna with St Francis and St John the Evangelist - LORENZETTI, Pietro
1320-25 Fresco Low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하고 싶은 말을 마치고 그는 요한 복음의 수난기를 읽어 달라 하여 들은 뒤,

천사들의 인도로 형제들을 떠나 주님께로 옮겨갔다.

프란치스꼬는 1226년 10월 3일 저녁에 뽀르찌운꿀라에서 임종했다.

2년 뒤 1228년 7월 16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프란치스꼬의 유해는 성 지오르지오(Giorgio) 성당에 잠시 묻혔다가,

1230년에 지금의 프란치스꼬 대성당으로 이장되었다.

 

성 프란치스꼬의 거룩한 상흔 축일:9월17일(게시판1369)

San Francesco d’Assisi, Impressione delle Stimmate

https://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St Francis in Ecstasy-BELLINI, Giovanni

1480-85.Oil on panel, 120 x 137 cm.Frick Collection, New York

 

10월 4일

우리 사부 세라핌적 성 프란치스코,부제, 세 수도회의 창설자, 대축일

 

1181(l182?)년 아씨시에서 태어났다. 성인은 청년 시절의 가벼운 생활에서 마음을 돌이켜

재산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상속권을 박탈당했다.

가난을 포옹하고 복음적 생활을 영위하면서 만민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설파했다.

뜻을 같이 하는 형제들이 모여와 작은형제회가 시작되었다.

클라라 관상 수녀회와 재속회를 세우고 이교인들 가운데 복음을 전했다.

성인으로부터 새로이 발견된 복음적 생활양식은 교회 안에서 새로운 수도 공동체로 발전되었다.

 

성인이 시작한 수도생활의 이 새로운 형태는

신앙적 기초 위에서 세상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교회에 가져왔고,

당시 교회의 교계제도를 거부하면서가지 성행하던 청빈운동에 바른길을 제시하였다.

1224년 라베르나 산에서 관상하던 중 주님의 거룩한 오상을 받아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육신적으로 그리스도 처럼되었다.

1226년 10월 3일 아씨시에서 세상을 떠났다.

2 년 후인 1228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유해는 성 프란치스코.대성전에 있다.

작은형제회홈에서 www.ofm.or.kr

 

 


Madonna Enthroned with the Child, St Francis and four Angels-CIMABUE

1278-80.Fresco, 320 x 340 cm.Low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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