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일] “에파타!” (마르 7,31-37)

2015. 9. 5. 오전 10: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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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에파타!”   (마르 7,31-37)


이사야서는 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질 날을 예고한다. 그날에는 마음이 불안한 이들과 온갖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기뻐 환호하게 될 것이다.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의 여정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 기적을 체험하였듯이, 구원의 때에는 사막에 냇물이 흐를 것이다.(이사야 35,4-7ㄴ)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7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리라.


야고보서는 하느님께서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어 하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음을 강조하고, 주님을 믿으면서 가난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다.(야고보 2,1-5)
1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2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3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 4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5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비신자 선발예식-열려라(에파타 예식)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이 이미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 주신다. (마르 7,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에파타” (마르 7,34)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습니다. 유아 세례 예식 중에 신앙의 귀, 마음의 귀를 열어 주는 ‘열려라(에파타)’ 예식이 있는데, 이때 사제는 엄지손가락으로 세례 받는 아기의 귀와 입을 만지며 “주 예수님,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셨으니, 이 아기도 오래지 아니하여, 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혀가 풀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거나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신앙의 귀머거리나 말 못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을 동시에 만났을 때, 매끈하게 차려입은 사람 쪽으로 눈길이 쏠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야고보서는 세례성사로 새롭게 태어난 참신앙인은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우하지 않는다고 충고합니다. 사람 차별, 이것이야말로 일부러 들으려고 하지 않고 일부러 보려고 하지 않는 태도이며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행동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인 우리가, 교회가 하늘 나라의 씨앗이요 누룩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우리 안에서도 예수님께서 하신 ‘훌륭한’ 일들이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귀먹은 이를 듣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기는 어렵겠지만, 금가락지 낀 이들보다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더 갖고 먼저 마음을 기울인다면, 우리도 이 땅에서 예수님을 도와 그분께서 선포하신 하늘 나라 실현을 앞당기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의 눈과 귀를 활짝 열어 주시어 우리의 삶이 주님을 찬미하며 행복한 나날이 될 수 있도록 그분의 귀에 살짝 대고 간청해 봅시다! 


에파타(열려라) - 신상옥 작사,곡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치신 예수(마르7,31-37)

 -유광수 신부-


말은 인간과 짐승과를 구분시킨다. 인간은 어떤 일정한 것에 속해있지 않고 그가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 그렇게 결정된다. 

 사실 인간은 존재하는 그대로 있는 존재가 아니고 되어 가는 존재이다. 그가 무슨 말을 듣느냐에 따라 거기에 응답한다.

하느님은 말씀이시고 전달자이시고 자신을 주시는 분이시다. 인간은 무엇보다 귀를 갖고 듣는 존재이고 그 다음은 혀로 말하는 존재이다. 들음으로써 거기에 맞는 대답을 드리게 된다.

하느님과 대화가 시작되고 하느님의 파트너가 되고  하느님과 일치되고 하느님을 닮게 된다.

우리의 믿음은 말씀을 들으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귀먹은 반벙어리는 제일 나쁜 악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과 만나 유다인의 전통에 대해 논쟁을 하신 다음 이방인 지역인 띠로와 시돈, 데카폴리스 지방을 거쳐 갈릴래아로 돌아 오셨다. 전통에 얽매여 사는 유다인 지역과 우상과 여러 잡신들을 믿는 이방인 지역을 오가시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높은 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허물어버리고 모두 하나 되도록 노력하신다.


 바오로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여러분에게 가까이 있던 유다인들에게나 다 같이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에페 2, 14- 17) 라고 적었다.    
 예수님은 오랫동안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을 다니시면서 그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보시고 경험하셨다. 이방인들과 함께 머물면서 타락과 부패, 무질서와 비윤리적인 이방인들의 생활을 보실 수 있었다. 이들이야 말로 복음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다.

 특히 마르코 복음서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서이기 때문에 마르코는 이런 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하느님에 대해서 말할 줄 모르는 벙어리이며 기도할 줄도 모르는 벙어리이고 말씀을 들을 줄도 모르는 귀머거리인 것이다. 

 오늘 복음은 이런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쳐 주심으로써 예수님이 왜 이방인들에게 가셨는지 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자 했는 지를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은 당신께 반항하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한테도 복음을 전하셨고 또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방인들의 지역인 여러 지방을 다니시면서도 복음을 전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은 그 누구와도 아무런 벽도 없고 또 적도 없다. 모두가 당신의 양들이며 돌보아 주어야 할 양이다.

 우리들이 지방색을 따지고 서로 원수가 되고 적이 되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모두 인간의 욕심 때문이며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우리도 서로간에 쌓인 벽을 허물고 서로를 받아 들여야 한다. 지방색을 허물고 자기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귀먹은 반벙어리는 어떤 사람인가?

첫째 신체적인 귀먹은 반벙어리가 있다. 이 사람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신체적인 결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즉 듣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다. 귀를 갖고 있지만 듣지를 못하고, 입이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말을 하고 싶어도 말하지를 못하고 듣고 싶어도 듣지를 못하는 사람이다.  들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이 자기를 흉보지나 않는가 아니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불안해 한다.

두 번째 심리적으로 귀먹은 반벙어리도 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자신 안으로 움추려 드는 사람이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려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기회가 없고 말할 상대가 없다.

 함께 어울리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사람들을 만나면 두렵고 용기가 없어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도 못하고 듣지를 못하는 사람이다. 이로 인해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자기 뜻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또 상대방의 뜻을 들을 수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피하게 되고 점점 폐쇄적인 사람이 된다.  서로 대화가 없을 때 오해가 생기게 된다.

셋째, 영적으로 귀먹은 반벙어리가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듣지 못하니까 하느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그래서 하느님에 대해서 말을 하라고 하면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 모든 사람들은 다 병자이다.

 귀먹은 반벙어리를 희랍어로 Moghilalos(모길라로스)라고 한다. 뜻은 둔한, 바보, 저능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좀 모자라는 사람, 바보같이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 때 우리는 전혀 엉뚱한 말을 한다. 즉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말을 하게 된다. 속에서만 끙끙 거리고 밖으로 속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좀 모자라는 것 같은 사람이다.  

 삶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이다. 듣지를 못하니까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소문이 그렇게 자자하지만 전혀 예수님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오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데리고 와야 예수님께 올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처럼 귀머거리는 치료를 받을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도움 없이는 자신의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께 데리고 온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문제 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고 또 예수님께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고 하였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오늘 복음에서 귀먹은 반벙어리를 사람들이 데리고 왔듯이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야 한다.

 귀먹었다는 것은 들을 귀가 없다는 뜻이다. 귀가 있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귀먹은 사람이다. 입은 말을 하는데 사용된다. 입이 있어도 하느님에 대해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안는다는 것은 벙어리이다.

 귀먹은 반벙어리는 하느님도 모르고 기도할 줄도 모르는 이방인의 상징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구원의 신비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이방인을 찾아 이 지방 저 지방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시는 것이다. 그들의 입이 열리고 귀가 열리게 하시기 위해서 그래서 그들도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말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입이 열리어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고 귀가 열리어 하느님의 기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 나아가 손을 얹어 고쳐달라고 청해보자
 귀머거리는 열 두 제자들이기도 하다. 예수님을 빵의 기적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도 마음이 무디어져서 알아 듣지 못하였고 예수님을 보고도 유령이라고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바로 열 두 사도들이다.

 또한 귀먹은 반벙어리를 가리켜 바보, 저능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느냐? 그렇게도 생각이 둔하냐?"(마르8, 13)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그들은 분명히 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에파타!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르 7,34)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말귀를 잘 알아듣는 편인가요?
하느님의 말씀은 어떠한가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설득력 있게 잘 표현하나요?
아니면 조리있게 잘 하고 싶은데
늘 횡실수설하나요?

주님께서는 오늘
귀먹고 말더듬는이를 고쳐주시네요.
아주 정성스럽게 의사처럼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고 "에파타!" "열려라!" 하시며
귀와 입을 열어 주시네요.

오늘 나도 그렇게 해봅시다.
다른 사람의 말귀를 더 잘 알아듣고
하느님의 말씀을 더 잘 알아듣기 위해
"에파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더 잘 전달하는 입을 위해
"에파타!"

특히
신부님들과 말씀을 전하는 이들에게
"에파타!"

[출처] 2015.09.06.|작성자 알타반



'09.09.06 축복의 음성, 에파타(마르 7,31-37)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다.>  송영진 모세 신부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마르 7,32-35)."

이 이야기를 하나의 '상징'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게 되었다." 라는 뜻이 됩니다.

이 이야기와 이사야 예언서의 한 장면이 비슷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어느 날 주님을 뵙고 이렇게 말합니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이사 6,5)." 이 말은,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하지도 않았음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때 천사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집어 들고 이사야에게 가서, 그것을 그의 입에 대고 이렇게 말합니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이사 6,6-7)." 이 말은 복음 말씀에 있는,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라는 말과 뜻이 같습니다. 말을 제대로 하게 된 이사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임무를 맡겠다고 자원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

복음 말씀에 나오는 장애자가 누구인지, 그 뒤에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라고 되어 있으니 아마도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하느님의 말씀을(복음을) 제대로 알아듣고, 그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 듣지 못한 사람은 귀먹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것은 자기 탓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과 복음을 들려주어도 듣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귀를 막은 사람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에파타(열려라)' 라는 말씀을 생각하면, 이 말씀은 자기 탓이 아닌 이유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귀와 입을 열어주시는 말씀이 되고, 자기 스스로 귀를 막고 입을 막아서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열어라." 라는 명령이 됩니다.

("열어라." 라는 말에서 바로 언론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전해야 할 소식을 전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언론, 제대로 된 소식을 전하지 않고 왜곡된 소식을 전하는 언론, 비판은 하지 않고 아부만 하는 언론... 스스로 귀를 막고 입을 막은 모습...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일부 언론이 그런 것이지만...)

일부러 귀를 막지 않더라도 믿음이 없다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믿음 없는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서 자주 시비를 걸고, 예수님과 논쟁을 벌인 일들이 좋은 예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열어라." 라는 명령은 "믿어라." 라는 뜻이 됩니다. 또 믿더라도 박해를 두려워하면 '말씀'을 전하지 못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열어라." 라는 명령은 "용기를 내라." 라는 격려가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제대로 전하려면 믿음과 용기가 필요한데, 없었던 것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니, 믿으려고 노력하고 용기를 내려고 노력하는 우리 자신의 '의지'가 중요하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1코린 2,2-4)."

바오로 사도 같은 위대한 사도도 낯선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보통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잘 아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일은 항상 인간적으로는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도와주신다고 해도 그 도움은 능동적으로 청해서 받으려고 하는 사람만 받을 수 있습니다. 도움 받기를 바라지도 않고, 도와달라고 청하지도 않는 사람은 성령께서 도와주셔도 그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안 주셔서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안 받아서 못 받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두렵고 떨릴 때 무엇을 어떻게 해서 그것을 극복했을까? 도움을 청하는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복음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를 고쳐 달라고 청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러면 그 자신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는 것일까? 일반적인 방법으로 의사 표현을 못한 것일 뿐, 그 사람 자신이 '정말로 가장 간절하게' 제대로 듣고 말하기를 원했을 것이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굿유스 / 귀먹은 반벙어리 치유 >에파타-열려라)<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치신 예수(7,31-37)



배경


31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을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


33예수님께서는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그러자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사람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이 기적 이야기는 : 전형적인 치유 이적사화.

     ①상황 묘사(31-32절), ②기적적 치유(33-34절),

     ③치유 실증(35절), ④목격자들의 반응(37절) 順.

*그 뒤 예수께서는 띠로 지방 → 시돈 → 데카폴리스 지방을 거쳐

                         →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 오셨다.

*33예수께서는 …손가락을 그의 귓속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시고 34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

           "에파타"하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

                      당시의 관습적인 치유행위.

은 : 우리나라에서도 현재까지 민간요법에 쓰이고 있고,

             물, 피, 술, 기름과 더불어 액체 약품에 속한다.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 하늘의 기운(神力)을 얻으려는 것이고,

    “한 숨을 쉬는” 것은 : 그 기운으로 병마를 물리치려는 것이다.


*그 뒤 "에파타"(즉 “열려라”)라고 말씀하자

           즉시 놀라운 기적(말을 하게 되다)이 일어나고,

            귀먹은 반벙어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

    ⇒ 세례성사 때 행하는 "열려라"예식은 이런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께서 :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치시자 사람들이 경탄(37절).

            이 반응은 이사야서 35,5-6절의 말씀 인용,

= 즉 메시아 시대에 이루어질 일들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짐을,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약속된 구원이

       예수님을 통하여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귀먹은 반벙어리는 어떤 사람인가? :

귀먹고 말 더듬는 이그리스어로 'Moghilalos'(모길라로스),

그 뜻은 ‘둔한, 바보, 저능’.

귀먹은 반벙어리에는 세 종류로 구분.

①신체적으로 귀먹은 반벙어리 : 신체적인 결함을 갖고 있는 사람.

②심리적으로 〃 :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사람.

③영적으로 〃 :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θ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θ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

⇒많은 신자들이 세속적 이야기는 많이 하면서

          θ의 말씀 앞에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럴까? : 대강 요약해 보면

①오랜 전통과 이방인으로 살았던 우리의 관습 때문.

②θ의 말씀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 때문.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 (신앙 따로 생활 따로).

우리를 귀먹은 반벙어리로 만들지 않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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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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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루가9,23-26)15.09.19조회 97[9월13일 연중 제24주일]하느님의 일 (마르 8,27-35)15.09.12조회 111[연중 제23주일] “에파타!” (마르 7,31-37)15.09.05조회 430[연중 제22주일]조상들의 전통 (마르 7,1-8.14-15.21-23)15.08.30조회 280[연중 제21주일 2015. 8. 23.] 생명의 말씀(요한 6,60-69)15.08.22조회 395[2015년 8월 16일연중 제20주일] 생명의 빵 (요한 6,51-58)15.08.15조회 354[ 8.15광복70주년]성모 승천 대축일((루카 1,39-56)15.08.14조회 455[연중 제19주일]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 6,41-51)15.08.09조회 455[연중 18주일]생명의 빵 (요한6,24-35)15.08.02조회 320[연중 제17주일]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요한 6,1-15)15.07.25조회 553[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외딴곳 (마르 6,30-34)15.07.19조회 399[나해연중 제15주일]12제자 파견 (마르 6,7-13)15.07.12조회 332[ 7월 5일 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15.07.05조회 292연중 제13주일>“탈리타 쿰!” (마르 5,21-43)15.06.28조회 57[연중 제12주일]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마태18,19ㄴ-22)15.06.21조회 55<연중 제11주일>겨자씨 비유 (마르 4,26-34)15.06.13조회 58[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2015. 6. 7.)(마르 14,12-16.22-26)15.06.06조회 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