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일]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요한 6,1-15)

2015. 7. 25. 오후 9: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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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일]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요한 6,1-15)

[7월26일]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 없음

엘리사 예언자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여러 기적들을 일으켜 “하느님의 사람”이라 불렸다. 어느 날 그는 빵 스무 개로 백 명을 먹였는데, 이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었다.(왕하 4,42-44)

그 무렵 42 어떤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왔다. 그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자루에 담아,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져왔다.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하고 일렀다. 43 그러나 그의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44 그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놓으니,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시편 145(144),10-11.15-16.17-18(◎ 16 참조)
◎ 주님, 당신 손을 펼치시어 저희를 은혜로 채워 주소서.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 당신은 손을 펼치시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은혜로 채워 주시나이다. ◎
○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


에페소서에서는 신자들에게 성령 안에서 일치를 보존하라고 권고한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하느님도 한 분이시며 믿음도 하나이다.(에페 4,1-6)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몰몬교-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을 우리의 삶에 적용시킴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배우는 점

예수님께서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어, 당신께서 이스라엘이 기다려 온 종말의 예언자이심을 드러내신다. 요한 복음 6장에서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은 성체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요한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사순절 열네번째날 : 오천명을 먹이심(2014년 3월20일 목요일)

일반적으로 음식을 준비할 때 대부분의 주부들은 양을 조절하여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실수로 음식의 양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정확히 계산하여 준비하는 것이 주부의 마음일 것입니다. 혹시라도 음식이 모자라면 덜 먹으면 되겠지요. 그런데 적지 않은 주부는 이와는 달리 생각합니다. 음식은 남아야지 부족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명절이나 잔치 음식은 많이 장만하여, 찾아오는 이들에게 싸 주기까지 하는 것이 넉넉한 인심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지지하시는 듯합니다.
제1독서에서 엘리사도 보리 빵 스무 개로 백 명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과연 빵은 남았습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전하는데, 먹고 남은 조각만 해도 열두 광주리입니다. 열두 광주리, 충만한 양을 뜻합니다. 남은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그 빵을 먹은 이들이 배고픔만 간신히 해결한 것이 아니라 가득 채워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표징을 본 이들은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합니다. 그분을 통하여 인간의 기다림이 남김없이 충족되는 순간입니다.
오늘 복음 다음에 이어지는 요한 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빵을 먹는 이들에게, 당신께서는 배를 채울 빵만이 아니라 생명의 빵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분명 빵의 기적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성체성사의 기적은 더 위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 영육 생명의 근원이시고, 또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신 몸을 우리에게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를 당신과 결합시키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 그분께서는 우리를 넘치도록 가득 채워 주십니다. “당신은 손을 펼치시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은혜로 채워 주시나이다”(화답송 참조). 
    


오병이어의 기적

<오천 명을 먹이시다.>   송영진 모세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요한 6,5-6)."

공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르치시다가 식사 시간이 지났고, 그래서 제자들이 걱정하면서 사람들을 돌려보내자고 예수님께 말씀드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마태 14,15; 마르 6,36; 루카 9,12).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군중이 이제 막 예수님께 오는 상황이고, 예수님께서 먼저 군중을 먹일 빵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똑같은 기적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기록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빵의 기적'을 굶주린 사람들에게 빵을 주신 기적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기록했지만,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기적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식사 시간이 지났다는 말도 없고, 군중이 '배고픈 사람들'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뭔가를 가르치시려고 의도적으로 질문하셨다는 뜻입니다. 왜 '필립보'에게 물으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질문은 사실상 제자들 모두에게 하신 질문으로 생각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라는 말은, '빵의 기적'은 군중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신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려고 의도적으로 행하신 기적이었음을 나타냅니다.

필립보는 예수님께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요한 6,7)." 라고 대답했고, 안드레아는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요한 6,9)" 라고 말했는데, 필립보와 안드레아의 말은 모세가 했던 말과 비슷합니다.

"저를 둘러싼 백성은 걸어서 행진하는 사람만 육십만 명입니다. 당신께서는 '내가 그들에게 고기를 주어 한 달 내내 먹게 하겠다.' 하시지만, 양 떼와 소 떼를 다 잡는다 한들 그들에게 넉넉하겠습니까? 바다의 고기를 모조리 모아들인다 한들 그들에게 넉넉하겠습니까?(민수 11,21-22)" 그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손이 너무 짧기라도 하단 말이냐? 이제 너는 내 말이 들어맞는지, 맞지 않는지 보게 될 것이다(민수 11,23)."

여기서 한 가지, 어떤 아이가 내놓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아이가 자기의 빵과 물고기를 내놓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빵의 기적'이 가능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 아이의 사랑 실천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 틀린 말입니다. 하느님(예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입니다. 뭔가가 있어야만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면 '전능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없었어도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고, 기적을 일으키셨을 것입니다. 또 그 아이의 사랑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가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빵과 물고기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때 '능동적으로' 응답하고, 예수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다는 점에서 좋은 모범이 됩니다. 필립보와 안드레아의 말을 간단하게 줄이면, "저 많은 군중을 모두 먹이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입니다. 이 말을 좋은 뜻으로 해석하면, 이 말에는 "주님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필립보와 안드레아가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니 아예 생각하지도 맙시다." 라는 뜻이 될 것이고...)

요한복음서가 전하는 '빵의 기적'의 핵심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이 말씀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또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없는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기적의 빵을 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다는 이야기와(요한 6,15), 사도들만 예수님 곁에 남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떠나버렸다는 이야기가(요한 6,66) 그것입니다. 그래서 결과만 놓고 보면, '빵의 기적'은 '실패'입니다.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을 통해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기는커녕 세속적인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고, 그랬다가 결국 다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실패하실 일을 왜 하셨을까?"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떠나버리는 상황에서도 사도들은 왜 남았을까?" 라고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군중 전체를 보면 '빵의 기적'은 실패한 계시처럼 보이지만, 사도들만 놓고 보면 성공한 계시입니다. 그래서 최종적인 결과를 다시 보면, 예수님의 계시는 당신의 제자들(사도들)과 믿는 사람들을 위한 계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놀라운 기적과 표징을 보고 체험해도 안 믿지만,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그런 기적과 표징을 통해서 '예수님'이라는 분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더욱 깊은 믿음을 갖게 됩니다.



빵의 기적 성당(The Church of the Multipliation)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에페 4,1)

여러분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하세요?
왜 미국땅이 아니라
한국땅에서 태어났고
왜 이런저런 보잘것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왜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왜 지금의 짝을 만나서
살게 되었고
왜 이런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되었을까요?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내 뜻과는 상괸없이
주어진 것이지요.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나를
그렇게 불러주셨다고 믿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지요.

오늘은
내가 어떤 삶을 살도록
하느님께서 불러주셨는지
그리고 어떤 소명을 주신 것인지
되새겨 보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요?

나는 잘 모르지만
분명 하느님께서는 뜻한 바가 있어
나를 이런 모습으로
불러주셨을 겁니다.
그걸 찾아야
내 인생은 참으로 의미있는 인생이 됩니다.

[출처] 2015.07.26.|작성자 알타반



090117 오병이어의 기적 그리고 한 아이  오병이어의 기적(요한복음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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