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 6,41-51)
카르멜 산 위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예언자들을 물리친 엘리야는 이제벨의 복수가 두려워서 도주해야 했다. 절망에 빠져 잠이 든 그에게 하느님께서는 빵과 물을 먹게 하신다. 그는 그 음식으로 힘을 얻어 하느님의 산까지 간다 (열상 19,4-8)
그 무렵 엘리야는 4 하룻길을 걸어 광야로 나갔다. 그는 싸리나무 아래로 들어가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5 그러고 나서 엘리야는 싸리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에 천사가 나타나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하고 말하였다. 6 엘리야가 깨어 보니,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누웠다. 7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하고 말하였다. 8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시편 34(33),2-3.4-5.6-7.8-9(◎ 9ㄱ)
◎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
에페소서는 속량의 날이 올 때까지 하느님을 본받기에 힘쓰라고 우리에게 권고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다.(에페 4,30─5,2)
형제 여러분, 30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빵의 기적을 보고 당신을 따라온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빵을 먹는 이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요한 6,41-51)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42 그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들과 대결하여 그들을 전멸시켰지만, 자기를 잡아 죽이고야 말겠다는 이제벨의 복수가 두려워 도망칩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그가 바라는 것은 그저 목숨을 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루 만에 지쳐 주저앉았습니다. 더 이상 살 힘도, 의욕도 없이 그저 싸리나무 아래 누워 주님께서 목숨을 거두어 가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아직도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까지 가야 합니다. 호렙은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하느님을 만난 산입니다. 엘리야도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계신 곳에 이르기까지, 가는 길이 어찌 이리 험난하기만 할까요? 엘리야 같은 인물도 자신의 못남을 탓하면서 죽고 싶을 지경에 이르렀다면, 우리가 어찌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하느님 계신 곳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요?
열왕기는 그 힘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 엘리야는 싸워 이겼지만 결국 그의 힘은 바닥났습니다. 그가 자신의 힘으로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음을 알았을 때, 대단한 싸움을 치른 그가 자기도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는 초라한 인간임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그에게 빵을 내려 주시어 밤낮 사십 일을 걷고 당신을 찾을 힘을 주십니다. 그가 이렇게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한 이후에는, 낙담하여 이제벨을 피해 줄행랑을 치던 그의 ‘도주로’가, 이제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한 ‘순례 여정’으로 바뀝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오늘 우리를 당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끌어 주시고 당신 앞에 불러 주신 주님, 신앙의 여정을 계속 걸어가도록 생명의 빵으로 우리를 길러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요한 6,51)
뭐든지 오랜기간 숙성된 것은 보약이 되나봅니다.
그래서 위스키도 32년산이면 엄청난 고가에 팔립니다.
간장도 수십년 된 것은
특별한 맛을 내는 보약처럼 여겨집니다.
산삼도 오래 묵은 것일수록 명약이 됩니다.
현대인들은
잘 먹고 잘 사는데도
암이며 질병들에 취약합니다.
명약이 필요하고 보약이 필요합니다.
육신의 병은 물론
영혼의 병까지 치료할 수 있는 그런 명약이 어디 없나요?
있답니다!
바로 성체입니다.
2천년이상 된 명약이고 보약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빵입니다.
하늘이 내려주신 최고의 명약입니다.
영혼과 육신의 병을 모두 치유시켜주는 만병통치약입니다.
오늘 그 약을
받아모시지 않겠습니까?
그 약이 참으로 효험이 있기 위해서는
영혼의 의사에게
나의 병 증세를 정확하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겸손하고 성실하게
그 명약을 받아모실 수 있게 해 주십사 청해야 합니다.
오늘 이 명약을 받아모시는
여러분은 복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출처] 2015.08.09.|작성자 알타반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너희끼리 투덜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을 주도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보살피신다. 하느님은 알파요, 오메가이시다. 즉 시작이요, 마침이시다.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느님한테 끝나는 것이다.
영성생활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 나의 모든 삶을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따라 가도록 노력하는 생활이다. 즉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은 나의 머리카락까지 모든 것을 낱낱이 섭리하시는 분이시며 보살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이끌어 주시는 대로 따라가는 생활이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단 한발작도 나아갈 수 없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단 한 순간도 숨을 계속해서 쉴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한계이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 그것이 피조물의 한계이다.
하느님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이끌어 주셨고 거룩한 사람을 살도록 이끌어 주신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오도록 이끌어 주신다. 따라서 우리는 이끌어 주시는 대로 따라 가는 존재이지 내가 앞장서서 하느님을 이끌어 가는 창조주가 아니다.
하느님은 오늘도 나를 당신께로 이끌어 주신다.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신다. 영성생활을 하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런 원리를 깨닫는 것이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나를 이끌어 주시는 분이 아버지이시라면 이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어떤 자세로 나를 이끌어 주시는 분을 따라 가야 하는가? .
신앙생활은 무엇인가? 영성 생활은 무엇인가? 나를 이끌어 주시는 분을 따라 가는 생활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너라"고 부르셨다.
성 바오로 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 가야 합니다."(갈라 5,25)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4)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과 우리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것이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요한 10, 14-15. 27-28)
그럼 어떻게 따라 가야 하는가? 오늘 복음에서 요한 이 그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다. 오늘 복음을 잘 살펴보면 단계적으로 제시해준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들을 찾아 보면 "나에게 오는 사람...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 믿는 사람...먹는 사람"이라는 말씀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를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첫 번째 자세는 아버지께 가는 자세요, 두 번째 자세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자세요, 세 번째 자세는 듣고 배운 것을 믿는 자세요, 네 번째 자세는 듣고 배운 것을 먹는 자세이다.
우리가 아버지께 가기 위한 첫 번째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아 나서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아 나서듯이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만이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세를 취한다. 아버지께 나아간다고 하더라도 주리고 목마름이 없다면 적극적이지 못하고 매우 소극적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마태 5, 6)이라고 하셨다. 나에게는 아버지께 가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가? 아버지께 가야 한다는 주리고 목마름이 있는가?
두 번째 자세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자세이다. 이것 또한 아버지의 말씀에 대한 주리고 목마름이 없다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우리가 아버지의 말씀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림과 목마름이 없기 때문이다. 배고프지 않은 사람에게 음식이 반갑지 않고 목마름이 없는 사람에게 물의 필요성을 못 느끼듯이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름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버지의 말씀을 들어도 그 고마움을 느낄 수 없으리라. 맛을 못 느끼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아버지의 말씀은 진 꿀보다 더 달도다." 라는 그 말을 이해하겠는가?
아버지의 말씀을 배우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 배우지 않는데 어떻게 알고 아버지께 나아가겠는가? 배움이 없이는 절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영성 생활을 발전시킬 수 없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은 아버지께 나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세 번째는 배운 것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없는 배움은 지식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아버지께 가는 것과는 무관하다. 성서를 공부한 학자들이라고 해서 또 신학자들이라고 해서 다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학문적으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영적이지 못하다.
배움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는 배움이어야 한다. 어떤 배움이든 우리를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잘 따라 가게 하는 믿음을 갖게 해주는 배움이어야 한다. 우리가 이것 저것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 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켜주는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네 번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빵인 아버지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내가 먹지 않으면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될 수 없다. 먹어야 산다. 먹어야 영양가를 공급받는다. 먹어야 힘이 나고 우리는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주는 빵인 말씀을 먹는 사람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
이것이 나를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께 나아가는 방법이요, 단계이다. 나를 이끌어 주시는 분을 따른다는 것은 추상적인 것도 아니며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다. 애매한 일도 아니다. 그 길은 분명하다.
영성생활은 항상 수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즉 내가 주도하는 생활이 아니라 나를 이 끌어 주시는 분에게 나를 의탁하는 삶이다. 그렇다고 피상적인 자세는 아니다. 수동적이지만 적극적인 수동자세이어야 한다. 좋은 자세가 마리아의 자세이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씀을 듣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자세는 수동적인 자세이다. 그러나 수동적이지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지도록 마리아는 혼신의 삶을 사셨다. 한번도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으셨고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이라도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라도 말씀 하신 대로 이루어 지도록 그 말씀에 충실하셨다. 이것이 영성생활을 하는 수동적인 자세이다.
수동적이지만 적극적인 자세요,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지는 생활을 하기 위해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자세요, 실천하는 삶이다.
나를 아버지께로 이끌어 주시는 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는데, 그리고 그분의 소리를 듣는데, 그분의 손길을 잡는데 모든 관심을 두어야 한다.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유광수 신부 -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반영억 라파엘
저의 어린 시절 신앙생활은 신부님께서 상주하지 않으시는 공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지만 주일이면 성당에 가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때로는 가기 싫었지만 꾸중을 듣지 않기 위해서 갔고, 밭에 나가서 풀을 뽑는다든지 집안일을 도와야 하는 때가 되면 그것이 하기 싫어서 성당에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는 본이 아니게 열심한 사람처럼 보여 졌습니다. 이제는 잘 보이려고 정말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공소회장님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었지만 저는 지금 신부가 되었습니다. 함께 어울리며 지내던 회장님 아들도 신부가 되었고 한 자매는 수녀님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은 시골 공소였지만 결코 작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웃을 통하여 저를 신앙에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결국 하느님께 이끌리는 것은 선물입니다. 믿음은 나도 모르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응답의 책임이 주어지지만 하느님은 한 순간, 순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우리를 믿음에로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6,44).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불러주셨기에 응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름을 주님의 초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야말로 은총입니다. 일상의 평범한 삶 안에서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선물을 통하여 생명의 빵으로 다가 오시는 아들 예수님을 새롭게 영접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6,47)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빵이다…..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6,48,5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빵으로 오신 이유는 우리에 대한 ‘눈높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드러내는 참 하느님이시고 이 땅에 살과 뼈를 지니신 채 사셨던 분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성체성사를 통하여 영적 양식을 제공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당신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선포하시며 우리를 부르셔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비로소 효과 있는 은총으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은 하늘이 되었고 하늘은 이미 여기서 열렸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총리 토마스 모어는 매일 미사참례를 하였고 영성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수많은 국정의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습니다. 하느님을 거스르게 될 기회들도 많지만 나는 매일 예수님께로부터 힘을 얻어서 그 악의 기회들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매우 어려운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빛과 지혜가 필요한데 매일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과 그것을 상의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위대한 스승이십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주님을 모심으로써 그 안에서 빛과 지혜를 얻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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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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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군인이었던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감옥에서 |
† 찬미 예수님! 흠~~ 오늘이 나의 축일이구먼. 김종업로마노 축일 축하해.
성인의 굳은 믿음을 따라 곧게 갈수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