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일 2015. 8. 23.] 생명의 말씀(요한 6,60-69)

2015. 8. 22. 오후 6:28:39

글자

 


[연중 제21주일 2015. 8. 23.] 생명의 말씀(요한 6,60-69)



가나안 정복을 끝낸 다음,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모두 스켐에 모여 집회를 갖고, 자기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그 주님만을 하느님으로 섬기겠다고 약속한다.(여호 24,1-2ㄱ.15-17.18ㄴㄷ)
그 무렵 1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느님 앞에 나와 섰다. 2 그러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15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16 그러자 백성이 대답하였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17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몽골]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 - 돈드고비교회(생명의말씀선교회 - 선교발자취)

시편 34(33),2-3.16-17.18-19.20-21.22-23(◎ 9ㄱ)
◎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 부르짖음 들으신다.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
○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
○ 의인이 몹시 불행할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불행에서 구하시리라. 그의 뼈를 고스란히 지켜 주시니, 뼈마디 하나도 꺾이지 않으리라. ◎
○ 악인은 악행으로 죽음을 맞고, 의인을 미워하는 자 죗값을 받으리라. 주님이 당신 종들의 목숨 건져 주시니, 그분께 피신하는 이 모두 죗값을 벗으리라. ◎


[한주를 시작하는 생명의 말씀]성경구절 영어문장과 해석[시편 136편 1절]

에페소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유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셨다.( 에페 5,21-32)
형제 여러분, 21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22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3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 24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5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26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7 그리고 교회를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며,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8 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9 아무도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시는 것처럼 오히려 자기 몸을 가꾸고 보살핍니다. 30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31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32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오늘의 복음 + 주여 생명의 말씀이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을 마치시자 많은 이가 예수님을 떠나간다. 그분의 말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두 제자는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다. 그분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지니신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요한 6,60-69)
그때에 60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다른 신이 아닌 주님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다음 장면에서 여호수아는 거룩하신 하느님, 우상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그들이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으리라고 단언하는데, 그래도 이스라엘은 그분을 섬기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너희가 주님을 선택하고 그분을 섬기겠다고 한 그 말에 대한 증인은 바로 너희 자신이다.”(여호 24,22) 하고 다짐합니다.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많은 이가 이미 예수님을 떠나간 다음의 말씀인데, 떠나려면 일찌감치 떠나라는 분위기의 어조입니다. 만약 그때 베드로도 자리를 박차고 떠나가서 다시 갈릴래아의 어부가 되었더라면 그의 삶은 평탄했겠지요.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일까요? 아주 가끔은, 지금보다 인생을 좀 더 쉽고 안락하게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곧 제자리로 돌아오고 맙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진리를 포기하고 다른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더 자구적으로 번역하면 “누구를 향하여 떠나가겠습니까?”입니다. 베드로는 달리 갈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자기 자신과 타협하고 하느님 아닌 것과 타협할 때, 결국은 하느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다섯 주 동안 주일마다 생명의 빵에 관한 요한 복음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동안 요한 복음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앗아 가는 죽음을 어떻게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바로 ‘생명, 생명의 빛, 생명의 빵’이시기에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그분과 연결되어 있으면 참생명을 얻게 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훗날, 죽은 다음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분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며, 이렇게 시작된 생명은 죽음의 문을 넘어서고 종말에 가서 완성될 것입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송영진 모세 신부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떠나버렸고, 그 말씀을 받아들인 제자들만 예수님 곁에 남았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요한 6,66)."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라는 말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끊었다는 뜻인데, 또 이 말은 예수님을 믿으려는 마음을(희망을) 버렸다는 뜻이 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하게 된 것은 예수님 탓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그들이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고 말하는 '말씀'은, 넓게 생각하면,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 전체이고(요한 6,22-59), 좁게 생각하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 6,54-55)." 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내 살을 먹어라. 내 피를 마셔라." 라는 말씀이 듣기 편한 말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곁에 남은 제자들은 이 말씀이 거북하지가 않아서 남았던 것일까?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7-69)"

여기서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너희도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또 이 말씀에는, "듣기 거북한 말을 듣기 편한 말로 바꿔서 표현할 생각은 없다." 라는 뜻도 들어 있고, "듣기 거북하더라도 믿고 받아들여라."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은, "저희는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가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듣기 거북하더라도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주시는 분 곁에 남겠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께는"이라는 말에는 "주님만이"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주님 말고는 다른 어느 누구도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갈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이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라고 믿는 이유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즉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곧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듣기 거북하더라도...

따라서 '떠난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의 차이는 '믿음의 차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떠나거나 남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떠났고 믿는 사람들은 남았다는 것입니다. '떠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못 믿은 것이라고 반박하겠지만, 그 반박은 글자 그대로 핑계이고 변명입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경우를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어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예수님의 탄생 장면에도 같은 말이 나옵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7-19)."

베드로 2서의 저자는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 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바오로 형제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지혜에 따라 여러분에게 써 보낸 바와 같습니다. 사실 그는 모든 편지에서 이러한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더러 알아듣기 어려운 것들이 있는데, 무식하고 믿음이 확고하지 못한 자들은 다른 성경 구절들을 곡해하듯이 그것들도 곡해하여 스스로 멸망을 불러옵니다(2베드 3,15-16)."

하느님(예수님)의 말씀들 가운데에는 (사도들이 한 말들 가운데에도) 알아듣기 어려운 말씀들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 말씀들을 제대로 알아듣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적인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입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13)."

'성령의 도움'을 제대로 받으려면 우선 먼저 믿음이 확고해야 합니다.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예수님)의 말씀들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곡해'하기만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눈으로 성경을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아주 많이 보일 것입니다.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공격할 재료를 찾으려고 성경을 연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사람들과 성경 말씀을 놓고 논쟁하는 것은,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아는 사람과 일부만 만져보고 곡해하는 사람이 논쟁하는 것처럼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리석은 논쟁을 피하고 족보를 캐거나 말다툼을 하거나 율법을 가지고 싸우거나 하는 일을 멀리하시오. 이와 같은 일은 헛된 일이며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티토 3,9. 공동번역)."


신앙의 결단 /  허규 신부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생명의 빵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듣습니다. 지난 4주간 동안 들었던 긴 이야기의 마지막 결론격인 단락이지만 그렇게 희망적으로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조차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은 예수님 당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빵을 먹고 예수님 안에 머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거북했던 많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납니다. 믿음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어렵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사람들은 흔히 성경에, 복음에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들 만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꽤 많은 부분은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 있는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위로를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도 합니다. 나태한 모습을 버리라고, 더 열정을 가지고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지 말고 어려운 이들에게 손을 내밀라고 요구합니다. 여전히 이런 말씀들은 우리에게도 불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우리에게 결단을 내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의 곁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만 합니다.

에페소서는 예수님과 머물러 있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낯설지 않게 사용되었던 것처럼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남편과 아내의 비유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의 백성이나 교회는 여인의 표상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시각으로보면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여성을 폄하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믿는 이들과의 관계입니다.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보여주신 것처럼 그들에게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머리이시고 믿는 이들은, 그들이 모인 교회는 그분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기의 말씀 역시 가나안 정복 후에 다진 결의를 보여줍니다. 지난 시간 동안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이들을 되새기며 그분만이 하느님이심을, 그리고 그분을 따르겠다는 다짐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신앙의 결단’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길과 세상의 길에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선택해야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아주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서 인생의 향방을 결정하는 일까지 우리 앞에는 항상 선택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하나를 선택한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 많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갑니다. 지나간 시간은 이런 선택들로 이루어진 나의 역사입니다.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금 당장은 알기 어렵지만, 그 선택이 믿음에 근거한 것이기를, 생명을 향한 것이기를,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있는 것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허규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요한 6,60)

가끔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이나 글을 접하면
멋지고 달콤하게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가 있고,
듣기가 아주 거북하고 짜증스럽고 화가 치미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전자의 경우를 좋아하고
후자의 경우는 무시하거나
거들떠 보지도 않으려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나에게 달콤하고 감동적인 것이
좋기는 한데 내 삶을 변화시킬 정도의 힘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소위 유명강사들의 강의가 그렇습니다.
반짝 재미는 있고 달콤하긴 한데
그때 뿐이고 오래가지 않습니다.

정작 나를 변화시키는 말씀은
처음엔 거북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메시지일 수도 있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그 말씀은 나를 회개시키고 큰 깨달음으로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오늘 나에게 거북하게
들려오는 말씀이 있다면
너무 섣불리 판단하여 무시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출처] 2015.08.23.|작성자 알타반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예전에 읽은 글입니다. 사람들이 말 위에 십자가를 올려놓았습니다. 말이 십자가를 등에 지고 행렬을 하는데 사람들이 모두 경배를 하는 것입니다. 분명 말이 지고 가는 십자가를 향해서 경배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은 자신을 향해서 사람들이 경배를 하는 줄 알고, 기분이 좋아서 앞발을 크게 들었고, 몸을 흔들었습니다. 급기야 말 등에 있던 십자가는 떨어지고, 사람들은 더 이상 말에게 중요한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말은 이제 무거운 짐을 지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말은 왜 사람들이 경배를 하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혼인을 합니다. 저도 9월에 혼배주례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습니다. 많은 부부들이 함께 살면서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급기야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헤어지고 맙니다. 이것은 사랑이 식어서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친정아버지처럼 해 주기를 바라면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엄마처럼 해 주기를 바라면 역시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발을 한쪽씩 묶고서 달리는 23각 경기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뛰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호흡을 맞추어서 목적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서로의 발을 묶는 것은 결코 편하고, 쉬운 것이 아닙니다. 분명 불편하고, 빨리 달릴 수 없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내는 남편을 사랑해야 하고, 남편은 아내를 잘 돌보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둘이지만 혼인을 통해서 한 몸이 되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셔서 죽기까지 교회를 돌보았다고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삶을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나를 떠나겠느냐!” 그러자 제자들은 이야기 합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제 1 독서에서 여호수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나와 내 가족은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러자 온 백성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다니 될 법이나 한 말입니까?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 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분이 바로 주님이신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죄를 사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였습니다. 그 선택은 소중한 것이고, 그 선택은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선택한 우리들 신앙의 집을 아름답게 꾸며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다른 많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고, 예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나의 신앙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신앙인지 돌아보고, 주님을 충실하게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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